기억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동북아시아
지금 동북아는 기억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해결되지 않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중미 패권 갈등 속에서 소환된 중국의 항미원조 기억과 냉전 시기와 다름없는 전쟁관을 담은 항미원조 영화 등은 동북아에 고통을 안긴 침략과 상처의 기억이 각국의 정치적 필요에 맞게 탈역사화 혹은 과잉역사화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에 동북아의 평화공생을 위한 문화적 서사로서 우즈니우(吳子牛) 감독의 1995년 영화 <난징1937(南京1937)>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영화는 중일전쟁 초기인 1937년 12월,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대량학살인 '난징대학살(南京大屠殺)'을 소재로 하여, 일본군의 만행과 중국 인민이 겪은 상처를 다루고 있다.
단 6주간 최소 26만 명에서 최대 35만 명의 군민이 희생된 난징대학살은 중국인에게 중일전쟁에서의 대표적인 민족 비극으로 기억된다. 중국에서는 개혁개방 이후인 1980년대 후반부터 난징대학살 소재의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군의 잔악함에 초점을 맞춰 중국 인민의 비극을 재현하는 기존 방식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영화 <난징1937>부터다.
민족 경계에 선 인간과 제노사이드, 영화 <난징1937>
1937년 상하이가 일본군에 점령되자 주인공 청시엔은 임신한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고향인 난징으로 피신하지만, 이곳도 상황은 비슷하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거처를 구하고, 의사인 그는 환자를 돌보고 아이는 학교에 가는 등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도 일상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결국 난징이 함락되고, 일본군의 만행에 위협을 느낀 청시엔 가족은 국제 안전구로 향한다.
민족의 우언처럼 한 가족이 겪은 고난을 통해 비극적인 민족 역사를 그려내는 것은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난징1937>의 청시엔 가족은 중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이 만든 다문화가정이자, 일본인 딸과 중국인 아들이 함께하는 재혼가정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청시엔은 가족의 안위만큼 전장에서 실려 온 병사들을 살리는 데 여념이 없는 중국인 의사지만 일본인 아내의 남편이기도 하다. 아내(理惠子)는 침략국인 일본인이지만 중국인 남편과 아들이 있다. 자녀들 또한 국적은 다르지만, 전쟁 위협에 노출된 피해자이다.
또한 영화에는 대만 출신의 일본군이 출현하는데, 일본군에 끌려와 고생하는 청시엔을 풀어주면서 중국어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대만인입니다. 대만은 일본의 점령지로, 대만인은 모두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죠."
영화는 이렇듯 민족 정체성이 단일하지 않은 등장인물 설정을 통해, 민족전쟁 속 가해자 민족과 피해자 민족이라는 익숙한 프레임에서 빗겨나 있다. 그것이 영화 자본과 시장을 고려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난징1937>에는 중일전쟁 기억에서 잊힌 국민당 군대, 일본제국주의의 대만인 징병 역사를 소환했고, 무엇보다도 제노사이드 상황 속 민족 경계에 선 인간 존재라는 새로운 문제를 돌출시킨다. 영화 속으로 더 들어가 보자.
전세가 일본 쪽으로 기울어진 난징시는 극도로 어수선하다. 청시엔은 일본 스파이를 잡겠다며 우르르 몰려가는 성난 중국인들을 보고 아내와 딸이 걱정되어 집에만 있으라고 당부한다. 아내는 답답한 마음에 "그래요, 나와 하루코는 일본인이에요. 하지만 당신도 일본어를 좀 하니까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청시엔은 이에 "나는 중국인이야!"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아내는 임신한 배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럼 이 배 속의 아이는 어느 나라 사람인데요? 요즘 태동이 예사롭지 않은데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들어봐요, 중국어인지 일본어인지" 그러자 청시엔의 굳은 표정이 금세 누그러지며 행복한 미소를 띤다.
그러나 난징이 함락되고 일본군은 집집마다 쳐들어가 잔인하게 양민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일본군을 피해 수많은 사람이 국제 안전구로 몰려들지만, 청시엔 가족은 일본인인 아내와 딸 때문에 선뜻 그곳으로 갈 수도 없다.
상황이 악화되자 청시엔 가족도 어쩔 수 없이 짐을 싸 국제 안전구로 향하지만, 불행하게도 일본군을 마주치게 된다. 앞서 아내가 일본인인 덕분에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이번에는 청시엔과 아들의 국적이 발각되어 청시엔은 심한 구타를 당한 후 일본군에 끌려가게 된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국제 안전구로 달려가 남편을 살려달라고 외국인에게 울면서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일본어를 듣고 안전구에 있던 수많은 중국인이 몰려와 그녀를 에워싸며 그간의 울분을 쏟아낸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교사 슈친은 그녀가 내 학생의 학부모이고 밖에 있는 살인마 같은 일본 놈들과는 다르다며 피난민들을 설득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일본인"이라며 끓어오르는 중국인의 분노는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렇듯 민족 정체성이 단일하지 않은 등장인물을 배치하여 민족전쟁 속 가해국과 피해국이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조금은 낯선 구도로 전개된다. '국민, 인종, 민족, 종교 따위의 차이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라는 제노사이드의 사전적 의미를 떠올리며 청시엔 가족의 수난과 그들을 향한 일본군, 중국인의 시선에 주목해보면, 집단학살의 상황 속에서 한 민족의 경계 혹은 경계 밖에 있는 존재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가해자와 피해자 민족의 이분법적 기준으로 한 인간의 존재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준다.
반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돈독한 청시엔의 가족애는 추상적이고 허구적인 민족 정체성과 선명하게 대비되며 영화의 주제 의식은 더욱 강렬하게 전달된다.
청시엔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늦은 밤 일본군이 국제 안전구를 쳐들어와 피난민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강간한다. 슈친은 아이들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고, 청시엔의 아내도 딸을 구하려다 배를 걷어차여 생사의 경계에서 가까스로 아이를 낳는다. 뒤늦게 도착한 슈친의 남자친구는 그녀가 지켜낸 아이들, 청시엔 가족의 세 아이와 함께 무사히 난징을 빠져나오며, 영화는 비극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을 남긴다.
동북아 평화공생을 위한 전쟁 서사의 지향점
민족전쟁을 소재로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 이 영화는 자국 관객의 호응과 지지를 얻기 어려웠다. 우즈니우에게는 늘 "중일전쟁의 역사를 왜곡했다", "베트남이나 일본에 가서 상을 받아야 한다"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민족 정체성을 강력하게 소환해 내는 전쟁 속에 인간 존재에 관한 본원적 탐구를 선보인 그의 영화는 중국 문화사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공생을 위해 집단기억을 형성하고 재생산하는 문화적 서사가 어떤 지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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