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을 시작으로 국민건강보험은 현재까지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로써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21년 건강보험 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건강보험 전체 보장률은 그리 높지 않은 64.5%에 불과하지만 4대 중증질환인 암질환,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보장률은 84%에 이른다. 고액진료비가 발생하는 상위 30개 질환의 보장률은 80% 이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보장률 수준(80%)을 유지해 보장성이 괜찮은 편이다.
초고령사회와 파편적인 간병 체계
그런데 초고령 저출산사회라는 심각한 인구불균형으로 인해 최근 한국에서는 돌봄 관련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돌봄 중에서도 특히 간병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둘 정도로 노년층이 늘어났고, 그에 따른 노화로 인한 다양한 만성질환자 증가로 간병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간병은 그동안 주로 가족들이 담당해 온 역할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의 감소와 부양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및 맞벌이 사회생활 등으로 인해 가족보다는 사적 간병인을 채용하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개인이 지출하는 의료비 전체를 파악해 보면 간병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다. 급증하는 간병비는 가계 경제가 파산할 정도의 엄청난 부담을 우리 사회에 주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간병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커뮤니티케어 등의 정책을 나름대로 진행하고 있으나 수혜자 입장에서 어느 하나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이 없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2013년 포괄간호서비스로 시범사업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전체 환자 수 대비 중증환자 비율이 15~20% 수준이면 간호인력을 배치해야 하나, 대부분의 병원들이 경증환자 위주로 병동을 운영하여 정작 이 서비스가 가장 필요한 중증환자들은 간호를 받지 못한다. 그 결과 중증환자들은 개별 간병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노인성질환을 가진 자는 장기요양등급 판정에 따라 시설급여와 재가급여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2021년 전체노인 대비 14.4%가 장기요양서비스를 신청하였고, 신청자 중 74.4%가 등급판정을 받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 95만 명을 인정 등급별로 보면 1등급 4만7800명, 2등급 9만2461명, 3등급 26만1047명, 4등급 42만3595명, 5등급 10만6107명, 인지지원등급 2만2501명이었다. 이 중 요양시설 입소 서비스를 이용하는 환자는 전체의 28%, 방문요양서비스는 57%, 가족요양보호사제도를 이용하는 수급자는 15%로 나타났다. 이 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문요양서비스로 하루 최대 받을 수 있는 이용시간이 1~2등급은 4시간, 3~5등급은 3시간이다. 나머지 시간은 개별 간병을 해야 한다.
커뮤니티케어는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돌봄 대상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아직까지는 시범모델로서 한정적인 지역의 저소득 주민을 대상으로 서비스가 시행된다. 전국적으로 보편화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커뮤니티케어를 받더라도 서비스 제공 시간 외에는 개인이나 가족이 간병을 책임져야 한다. 이처럼 간병을 위한 다양한 돌봄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 대상의 보편성과 돌봄 시간의 충분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현재 우리나라 간병 수요를 한국의료패널에서 확인한 결과, 2008년에서 2018년까지 입원 환자의 사적 간병률은 입원환자의 절반 이상인 61.2%~70.1%다. 이에 종사하는 간병인은 7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사적 간병 이용으로 인해 지출된 간병비 규모를 보면 2014년 5조 원~6조8000억 원 수준에서 2018년 6조9000억 원~8조 원이다. 개별 가정의 경제적 부담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인들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존엄한 보호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가족들은 간병 스트레스와 가족 간의 갈등, 경제적 부담 등으로 간병 파산, 간병 살인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현재 공적간병 지원 시스템의 부재가 원인일 것이다.
공적간병 시스템의 부재가 낳은 문제와 대안
공적간병 지원 시스템 부재로 인해 간병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점을 파악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환자가 급성기 중증 질환 또는 중증 노인성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다면 의료 처치 모든 과정은 병원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간병만큼은 개인의 책임이다. 환자 입원 시 간병을 보호자가 하거나 사적 간병인을 고용해야 한다. 이로 인해 가족이 직장이나 생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2. 병원은 보통 병원과 연계된 간병업체를 통해 사적 간병인을 고용한다. 연계된 간병업체가 사실상 독과점이기에 일방적으로 간병인 알선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간병인의 자질과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는다. 간병인 교체 등 불만사항 개선을 요구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3. 간병비는 보통 24시간 기준 13~15만 원으로 월 400만 원 정도에 달한다.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이 매우 크다. 하지만 간병인 입장에서는 24시간 근무 기준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도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일부 간병인은 간병을 볼모로 추가 금액 등의 인센티브를 요구하여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4. 간병인은 업체를 통해 알선되지만 고용형태가 가사사용인, 특수형태근로자로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다양한 위험 상황이 발생해도 간병인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5. 병원은 전문인이 아닌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는 것을 방치해 감염 및 안전문제 발생 우려가 크다. 간호의 질 관리에 문제점이 있다.
공적 간병에 대한 법적인 관련 제도가 미비해 위와 같이 간병 관련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공적 간병 체계를 제안한다.
1. 급성기 중증 질환자 등의 간병서비스는 의료 서비스의 필수사항이므로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 수가를 확정하여 지원해야 한다. 모든 중증환자에게 간병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여야 한다.
2. 간병인의 실제 역할은 환자의 단순한 신체청결, 식사준비, 배설 등 환자의 일상적인 활동으로부터 맥박측정, 체온측정, 관장, 침상목욕, 전인간호, 위장관영양 주입 등 전문적인 간호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활동까지 폭넓다. 관련 교육 과정을 체계화해 전문간병인 과정을 제도화하여야 한다.
3.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병인도 노동자로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정비해야 한다.
이제 더는 간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정부나 건강보험공단이 책임을 갖고 조속히 공적 간병 체계 마련을 조치해야 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