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돈봉투 배포 의혹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나름 단호하게 거리두기에 나섰다. 사건의 전말이야 앞으로 더 드러나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는 송영길 대표가 책임에서 자유롭긴 어려워 보인다. 당 대표 당선에 신경 쓰느라 캠프 관리를 못 한 정치적 책임이냐, 직접 개입한 증거가 나와 형사적 책임까지 지게 되느냐 정도가 변수로 보인다. 정치적 책임까지는 송영길 대표 스스로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런 상황인데도 586 정치인들의 송영길 감싸기는 재채기마냥 참지 못하고 계속된다는 것이다.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던데, 이건 사랑일까. 아무튼 '이게 우정이라면 나는 친구가 없다'는 마음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게 된다.
우상호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민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액수는 '밥값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돈봉투 사태 초기에 몇몇 국회의원들이 소액임을 강조했다가 큰 비판을 받고, 민주당 당 차원에서 일단 납작 엎드리기로 결정한 다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직 민주당 의원인 김의겸 의원은 송영길 대표 언론 대응을 맡겠다고 했다가, 현직 민주당 의원이 대응을 할 거면 송영길 대표는 왜 탈당한 거냐는 비판에 금세 철회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에 나선 사람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다. 김민석은 핵심 당직은 맡고 있음에도 탈당한 송영길을 옹호해 더 큰 비판을 받았다. 김민석이 송영길을 옹호하는 가장 큰 논리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는 '저와 마찬가지로 아직 집이 없는 동세대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관련기사: "김민석 "송영길 나처럼 집도 없어…물욕 적은 사람임은 보증한다")
그런데 이 논리는 매우 이상하다. 일단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돈봉투 사건은 송영길이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권력욕 때문에 돈을 뿌렸다는 의혹이다. 그렇기에 물욕이 없다는 건 아무런 변명도 되지 않고, 오히려 송영길이 돈보다 다른 가치를 중시한다는 설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물욕이 없다'가 '돈봉투를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로 이어지는 감춰진 논리가 설명되어야 한다.
586 정치인들이 '전세살이'를 강조하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가령 우상호 의원은 스스로 '찐 서민'이라고 주장한다. 2021년 2월 1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토론회에서 우상호 의원은 "나경원, 안철수, 오세훈 후보 모두 부자를 대변하는 보수 후보입니다. 민주당 후보가 이들과 차별화하려면 친서민 정책으로 차별화해야 합니다. 저 우상호는 4억(보증금)에 50(월세), 반전세 사는 '찐서민'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또 송영길도 스스로 여러 차례 본인이 전세로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2년 서울시장 후보로서 인터뷰하며 "지금도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고, 땅을 한 번도 소유해 본 적이 없다. 위장전입을 해본 적도 없다"며 '내로남불'에서 자유로운 후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우상호 의원처럼 보증금 4억쯤 있는 사람을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4선 국회의원으로 긴 시간 억대 연봉을 받으신 분이 스스로를 찐 서민이라고 하시면, 최저임금 받으며 사는 서민들은 졸지에 서민도 못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또 국민들이 5선 국회의원을 하고 인천광역시장까지 한 송영길 전 대표가 집을 구입하지 않고 전세 사는 걸, 청렴하고 서민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수십억을 기부한 명확한 용처가 있지 않은 이상, 오히려 경제 관념이 이상하고 의뭉스럽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정치 엘리트로서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모은 봉급만으로도 충분히 주택을 구입할 수 있을 만큼 벌어놓고, 왜 그토록 집이 없다는 걸 자랑으로 여길까? 왜 586들은 전세살이를 중요한 정치적 자랑거리로 여길까?
586이 '전세살이'를 자랑거리로 여기는 이유
이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는 40년 세월을 거슬러 '품성론'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품성론은 말 그대로 품성이 좋아야 한다는 것인데 198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인 김영환의 <강철서신>에서 처음 주창된 후 학생운동에서 급속도로 받아들여졌다. 품성론은 민중의 선진대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86들이 만들어 낸 '모범에 의한 정치(politics of exmaple)'다. 품성론은 민중과 운동가가 서로에게 모범이 되는 구조다. 여기서 민중은 역사의 주체로서 순결하고 욕심이 없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존재로 전제된다. 운동가는 이런 가상의 민중의 모습을 닮아야 하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또 이런 운동가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좋은 품성을 갖추기 위해 실천한다는 건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실제로 극도로 실망스러운 몇몇 인사들 때문에 색이 바라서 그렇지, 많은 586들은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고자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품성론을 민주주의적 대표관에 적용하면 몇 가지 치명적 문제가 생긴다.
우선 개인의 도덕이 정치적 목표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품성론은 개인의 도덕적 실천을 강조하지만 그 최종적 목표가 해탈이나 천국 같은 종교적 이상이 아니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실천하는 도덕을 우리는 흔히 위선이라고 부른다. 정치적 목적과 맞지 않는 도덕은 불필요한 일이 되고, 각자의 성찰에 기반한 윤리와 정치적 위선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586들이 학생운동을 시작할 때의 정치적 목표인 '남북한 민중이 하나 된 사회주의 조국' 건설은 종교적 이상만큼이나 이루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원경에서 병원과 감옥이 같아 보이듯 당장의 정치적 목적이 도덕적 실천의 내용을 위협할 위험이 적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점차 권력에 가까워지고, 정치적 목적이 선거 승리 등 가시적인 문제가 될수록 문제는 까다로워진다. 정치적 목적이 그때그때 필요한 도덕적 실천을 재규정할 위험이 커진다.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 옳다고 믿는 한, 그것을 위한 실천 자체를 도덕적 행위라고 믿게 될 위험성도 커진다.
여기서 품성론의 두 번째 문제가 두드러진다. 정말로 도덕적인 행위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고대로부터의 모든 철학의 주제였지만 인류는 도덕적 행위를 판단하는 단일한 기준을 찾지 못했다. 이 역시 86들이 권력을 갖고 그들이 원하는 정치적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어려운 문제가 된다.
가령 보수 정권이 사유화한 검찰 권력으로 무리하지만 합법적 방법으로 586 정치인들을 수사 한다면 어떤 선택이 도덕적인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과 제도가 정한 합법적 절차를 회피해야 하는가? 아니면 악법도 법이니 일단 그 법에 따라야 하는가? 만약 극도로 과장되었지만 우리 세력에게도 일말의 범죄 혐의가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윤리적인가? 우리가 여당으로 공권력을 지휘할 수 있을 때, 무리해서라도 적폐를 때려잡아야 하는가? 윤리적 실천이 무엇인지는 늘 논쟁적이고 성찰적이고 유동적이다. 정치적 목적의 절박함은 윤리적 판단의 어려움을 너무 쉽게 이긴다.
세 번째 문제는 정당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나는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한 내가 이루려는 정치적 목적은 정당하다는 순환논리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판단은 물론 도덕적 판단도 독점할 수 있는 '나'만 남을 뿐이다. 품성론은 상시적으로 자기반성을 하라는 지침이지만, 역설적으로 외부적 요인을 통한 반성이 들어갈 틈이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 굴레 속에서 우리는 우리 진영 사람의 어떤 행위도 도덕적으로 단죄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진다. 특히 가진 것은 열정뿐인 대학생이던 그들이 점차 사회적,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갈수록 문제는 커진다. 그들도 때로는 타인의 권리를 빼앗고 부당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종종 사회적 민폐가 되기 때문이다.
586들의 품성론적 사고방식 아래에서 정치적 정당성은 국민을 얼마나 잘 위임하고 있는지보다는, 국민에게 얼마나 모범이 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역으로 말하면, 민중다움을 상실하는 순간 그들의 정치적 정당성은 상실된다. 586이 돈봉투를 주고받고,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르고, 입시 비리에 연루될수록 그들에겐 자신들이 아직도 '민중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가시적 표식이 중요하다. 이 표식마저 상실하면 그들은 '민중'을 대표해 '역사적 과제'를 실천하는 선도적 존재임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재산이 얼마인지와 무관하게 '집을 구매하지 않음'은 그들이 가장 뚜렷하고 쉬운 방법이 된다.
집을 몇 채 소유했느냐가 정치적 덕목으로 부각된 건 특히 문재인 정권에서 부동산 폭등 사태로 정권의 위기를 겪으면서다. 민주당에서도 특히 586들은 부동산 소유와 도덕성의 문제를 엮으려 했다. 2019년 12월 19일, 이인영 당시 원내대표는 집을 한 채만 갖기를 국민운동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노노 아베'운동처럼'노노2주택'국민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며"청와대와 정부에서 시작된'1가구1주택 선언'이 우리당을 거쳐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민주당 정치인, '모범적 민중' 될 수 없다는 사실만 드러내
돈을 벌 수 있는데 돈을 벌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 게 어떻게 국민운동이 될 수 있는지는 일단 접어두자. 여기서 '2주택'을 거부하는 것은 일본의 역사 왜곡을 거부하는 것과 같이 '국민 됨'의 문제와 연관된다. 정부·여당의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은 국민으로서의 모범이 되는, 혹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된다. 이는 86식 품성론의 확장이다.
그러나 1가구 1주택 강요는 현재의 민주당 정치인들이 '모범적인 민중'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사실만 드러냈다. 다수 국회의원의 다주택 소유 여부가 새삼 주목받게 되었고, 그들은 빠른 시일 내에 팔겠다고 서약을 했으나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일부는 자녀에게 증여하거나, 주택이 아닌 시설로 용도변경을 하는 방식으로 억지로 1가구 1주택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부모 등 다른 가족이 사는 실거주 주택까지 팔아야 한다는 비합리적인 요구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설사 집을 한 채만 갖고 있다고 한들, 아니 그나마도 팔고 신라호텔에 살거나 풍찬노숙을 한 들 현재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이 평범한 서민일 수가 있는가?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주식을 사면 모범적인 민중이 될 수 있나? '노노 2주택'이 지나간 후 정치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정치인은 역설적이게도 대통령 참모들에게 다주택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본인의 지역구인 청주의 집을 팔고 투자가치가 높은 서울 강남의 집을 보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형식적으로 1주택 소유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억지로 끼워맞춘다 한들 '서민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정치'라는 본질에 문제에는 가닿지 못한 것이다.
다시 송영길 얘기로 돌아가보자. 송영길을 위한 변명으로 '집 없음'이 등장 그가 민중적 품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는 민중이며, 그가 민중을 위해 민중을 일을 하는 한 죄가 있을 수 없다는 삼단 논법이 함축된 것이다. 송영길은 프랑스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22일, 돈봉투 의혹이 제기되고 처음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정계 은퇴에 대해 묻자, "저는 정치를 직업이나 생계로 하지 않았다. 제가 정치를 한 이유는, 학생운동 때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이라는 사명을 갖고 있다는 말씀만 드리겠다"고 대답한다.
정치인이 민족과 민중과 일체되어 있을 때 정당성을 갖는다는 품성론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인 스스로의 티끌 같은 민중성을 찾아내기만 하면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변명으로 전락한다. 그렇기에 이 국면에서 송영길의 민중성을 지키는 너무도 허약지만 마지막 잎새인 '전세살이'가 중요해진다. 아니 이미 떨어진 마지막 잎새를 대신해 그려진 잎사귀 벽화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돈봉투 사태로 586 세력의 도덕성이 위기에 처했다고들 한다. 혹자는 송영길 전 대표와 캠프에 속했던 일부의 문제일 뿐 세대 전체와 엮는 것은 부당하고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직은 송영길 계의 문제지 이걸 세대 전체의 문제로 엮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민중과 민족과 어찌되었든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는 586이기에 단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 문제는 586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586식 민주주의관을 뛰어넘지 못하는 더불어민주당 전체의 문제가 될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좀 찜찜하고 방향이 틀린 것 같은데, 이걸 고치자니 회사의 기둥뿌리부터 뽑아내야 하기에 차마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기둥 뿌리까지야 높은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하고, 찜찜함 위에서 10년 넘게 실무자 노릇을 했다. 하지만 갈수록 붕괴 위험이 높아지는 이 거대한 건물에서는 열심히 뛰어다닐수록 망나니 춤이 되었다. 그래서 집권세력일때는 너무 바빠서 묻어뒀던 기둥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씩 꺼내보려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