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해 구산동 지석묘, 대규모 묘역식 제단인 듯"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해 구산동 지석묘, 대규모 묘역식 제단인 듯"

이동희 인제대 교수 "수장(首長) 무덤 추정하기보다는 제단식 지석묘로 파악해야"

"가락국은 철기문화를 가진 김수로왕에 의해 건국되었지만 김수로왕을 추대한 구간(九干)은 청동기문화를 가진 토착의 지석묘 축조 세력이다."

이동희 김해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장이 28일 국립김해박물관 대강당 가야사학술회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소장은 "김수로왕을 추대한 구간 세력과 김수로왕 세력은 각기 지석묘와 목관묘 문화로 대표된다"며 "김해 구산동 지석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조사된 최대형의 상석(上石)과 묘역(墓域)을 갖춘 특별한 존재이다"고 말했다.

▲이동희 김해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장. ⓒ프레시안(조민규)

그러면서 "거대 묘역식 제단이 있는 김해 구산동 지석묘를 수장(首長)의 무덤으로 추정하기보다는 제단식 지석묘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소장은 "구산동 지석묘 축조 마지막 단계에 이렇게 큰 상석과 묘역을 만들면서도 매장주체부와 유물은 매우 빈약하다"면서 "지석묘를 토착 수장묘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외형적인 규모와 매장주체부·유물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단식 지석묘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지석묘 매장주체부의 조성 시기에 대한 논란이 있다"며 "구산동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의 전환기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영남지방에서 대형 제단식 지석묘가 가장 활발하게 축조되는 시기는 점토대토기(세형동검)문화 단계이며 창원·김해·경주 등 동남부권에 집중한다"면서 "세형동검문화가 한반도 서남부지방보다 늦게 나타난 영남 동남부지역 일대는 기념물적 성격의 지석묘 축조가 늦은 시기까지 지속된다"고 밝혔다.

지석묘 같은 거대 종교적 기념물을 만든 시점은 세형동검문화 유입시기 이후이다는 뜻이다.

이동희 소장은 "지석묘를 축조했던 집단은 새로운 이질적인 문화 요소(세형동검문화·철기문화)와 만나게 된다"며 "토착 우두머리들은 개인의 능력과 사적 소유를 강조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기보다는 종래 사회구조를 지탱했던 공동체 유형을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하면서 제단 기능을 갖는 대규모 묘역식 지석묘를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조민규

경남취재본부 조민규 기자입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