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집권여당, 제1야당의 현재의 상황은 과연 정치가 지속가능하겠는가 하는 근원적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원리인 대표성과 책임성은 물론이고, 반응성조차 작동하지 않는 최악의 정치구조들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27%까지 추락했다.(11~13일 한국갤럽 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권의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에서조차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섰다. 박근혜 탄핵 때의 지지율이 25% 정도임을 감안하면 지금의 대통령 지지율은 임기말이 아니라는 시기적 요인만 제외한다면 사실상의 레임덕 수준이다. 이러한 지지율로는 국정을 밀고 나갈 동력 자체를 얻을 수 없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여권은 사실상 국정을 운영할 내적 에너지와 인식 등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취임 초에 대통령실 이전이라는 소모적 이슈로 정치력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정쟁을 야기했다. 이후 이준석 전 대표 배제로 여권의 자중지란을 자초했고 곧 이어 터진 이태원 참사에서 사건과 관련된 고위공직자 어느 누구도 최소한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강제동원 해법으로 제시한 '제3자 변제' 방안은 일본 측의 상응하는 호응의 부족으로 후폭풍과 비판 여론에 직면하면서 저자세 외교 논란을 불러왔다.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의혹에도 주권국가로서의 당당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집권여당은 최고위원들의 시대착오적 퇴행적 발언으로 실언 파문에 휩싸이고 전광훈 목사가 보수진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한 발언 등은 여당이 강성보수에 휘둘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으로 비추어 볼 때 여권의 국정 능력을 원점부터 재검토 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입법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사건'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송영길 전 대표의 측근들이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보도들과 녹취 파일의 존재로 미루어 볼 때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조차 어렵다.
당의 전현직 대표가 모두 사법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은 지금의 야당 역시 정상적인 정당 활동을 하기에 도덕적 권위 자체를 상실했다. 대안정당과 수권정당의 존재감은커녕 과연 지금의 야당이 정통 민주당의 맥을 잇는 정당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돈봉투 사건'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표를 돈으로 사는 행위로써 민주주의 운영의 기본 매커니즘인 선거를 형해화시키고 정당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매표(買票) 정치가 아닐 수 없다. 표심을 왜곡하고 민심을 교란하는 매표행위는 공공의 적일 뿐 아니라 대의제 자체를 부정하는 최악의 사건으로서 당내 선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치는 이미 감내할 정도의 수준을 넘어섰다. 여야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상대 정당의 실축을 토대로 당의 생명을 연명하는 형국이다. 전형적인 '공생'의 정치이지만 이 공생은 상호 존중과 절제의 바탕 위에 성립되는 공존이 아니다. 갈등을 조정하기커녕 갈등의 생산자로 기능하고, 가치를 배분하기보다 눈앞의 실리와 이익의 탐닉에 몰두하는 현재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정치권의 공식은 뻔하다. 선거가 임박하면 여야 정당 모두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또 표를 구걸할 것이다. 여야 정당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지만 이 상태로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양당이 비대위를 꾸린다고 정치판이 바뀔 수는 없다.
유권자의 아래로부터의 압박이 필요할 때다. 제3세력의 공간 등이 넓어져야 한다는 명제도 구태하기 마찬가지다. 제3정당의 존재는 1995년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2016년의 국민의당이 있었으나 이는 당시 김종필과 안철수의 대선주자급 인물과 충청 및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으로 가능했다. 제3세력의 존재가 정치판을 바꾸지는 못했다. 다양성으로 양대 거대 정당의 갈등을 완화한다는 사전적 의미만 있을 뿐 정치혁파와는 거리가 있다. 제3지대가 출현한들 지금의 비리와 모순 덩어리의 정치판을 개혁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의 특권 등을 과감히 폐지하고 각종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고 공천에서의 과감한 개혁 등을 누가 주도할 것인가. 이러한 제도적 개선 역시 입법을 통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유권자의 압도적 압력에 의해서 바꿀 수밖에 없다.
2016년 12월 9일의 박근혜 탄핵은 국민의 압박에 국회의원들이 굴복한 사례다. 이러한 정치적 에너지가 발현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쓰이면 나라에 목숨을 바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들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이 충무공 전서) 이러한 결기와 당당함이 왜 우리 정치인들에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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