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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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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공적자금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의 딜레마  

지난 3월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 스위스의 크레디스위스 은행과 같은 몇몇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빠지자 이 금융기관들의 주주, 채권자, 고액 예금자, 그리고 영향력 있는 금융시장 분석가들은 즉각적인 국가개입을 요청했다. 실제로 정부들은 빠른 속도로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 지원에 나섰다. 정부들은 법으로 정해진 예금보호 한도와 상관없이 예금 전액을 보호해 주겠다고 선언했고, 어려운 금융기관을 지원할 대규모의 긴급 장기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또한 정부들은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들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금융기관들에 대해서까지 지원을 늘리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파산한 금융기관들은 금융당국 주도로 다른 금융기관에 싼값으로 넘겨졌는데, 그 손실분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우게 될 터이다.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에 대한 이러한 국가 개입은 새삼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또다시 납세자의 세금으로 금융기관을 구제해야 한다는 사실이 논란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러 나라들은 금융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정했다. 예컨대 미국은 2010년에 다양한 금융규제 내용을 담은 도드-프랭크 법안을 제정했는데, 무려 16개 장과 541개의 조문으로 이뤄진 2,300여 페이지 분량이었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덩치가 큰 금융기관이기 때문에 구제해 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대마불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앞으로 금융기관 구제에 납세자의 세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세금으로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은 금융안정위원회(FSB)와 같은 국제협력 기구를 통해서도 이뤄졌다. 금융안정위원회는 2011년에 대마불사 문제 해소를 위해 각국이 따라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 처리 과정은 여전히 납세자의 세금이 부실 금융기관 구제에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은행의 2022년 대차대조표를 보면 돈이 들어온 쪽은 예금이 1,731억 달러, 차입금 224억 달러, 자기자본 163억 달러로 나타난다. 돈이 운용되는 쪽은 대출이 740억 달러, 유가증권 1,201억 달러, 기타자산 177억 달러로 합계 2,118억 달러이다. 미국의 연방예금보험공사는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의 자산을 인수하여 그 가운데 시장에서 쉽게 팔 수 있는 자산 720억 달러를 다른 은행에 넘겼는데 이때 165억 달러가량의 손실이 생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나머지 자산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정상적인 청산 절차를 따라 실리콘밸리은행을 처리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은행의 장부상 자산 2,118억 달러의 예상 처분 가치가 1,718억 달러라면(곧, 40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면) 이 돈으로 먼저 예금보호 대상 예금(전체의 5% 미만으로 알려짐)을 지급하고 나머지로 고액 예금과 차입금을 지급할 것이다. 그런데 자산을 처분해도 고액 예금과 차입금을 다 지급할 수 없으므로 고액 예금자들과 채권자들은 보유 금액에 비례해서 손실을 떠맡게 될 것이다. 대체적인 추산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은행의 고액 예금자들이 실제로 떠안아야 하는 손실 금액은 최소 2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가 고액 예금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으므로 결국 이 손실 금액은 공적자금으로 메워야 한다.

공적자금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를 두고 벌이는 좀 더 본질적인 논란은 그것이 이른바 시장원칙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생긴다. 영업에 실패하여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진 사적 기업을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시장원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자기책임 원칙에 어긋난다. 기업 이익이 나면 주주와 채권자가 챙기고 손실이 나면 사회가 떠맡는 구조를 두고서 시장원칙을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공적자금을 통한 금융기관 지원으로 이익을 얻는 대상은 고액 예금자, 주주, 채권자와 같은 사회의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는 영업에 실패한 금융기관을 납세자의 세금으로 구제하는 것을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라고까지 했던 것이다.

공적 자금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가 이른바 시장논리에 어긋난다는 점과 또 이를 누구든 쉽게 알아챌 수 있어서 정치적인 이슈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당국은 그것이 구제금융이라는 모습을 띠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납세자의 세금이 들어가는 명백한 금융기관 구제에 대해서도 그것이 구제금융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은행의 고액 예금 보호를 두고도 그것이 구제금융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나아가 금융당국은 구제금융이라는 용어 사용 자체를 꺼린다. 구제금융이라는 용어 대신에 구제 프로그램을 나타내는 영어 대문자의 여러 명칭(TALF, BTFP와 같은)이 생겨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실 일시적인 자금 부족에 빠진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 논리는 금융산업의 특성에서 나온다. 어떤 금융기관의 파산은 금융업무의 특성상 쉽게 산업 전체의 위기로 퍼져나갈 수 있고, 나아가 금융 부문의 혼란은 실물 부분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공적으로 그러한 금융기관을 지원할 필요성이 생기는데, 거기에서 발전한 것이 중앙은행의 최후 대출자 기능이다. 중앙은행은 위기에 빠진 은행에 대해 수익성 악화 때문에 생긴 지급 불능 상태가 아닌 한 우량 증권을 담보로 벌칙 금리를 부과하여 충분히 자금을 제공해준다(이른바 배젓트 원리).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금융기관 지원을 위한 논리는 시스템 위기론에 바탕을 둔 대마불사론, 또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 구제론이다. 이는 부실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위해 좀 더 세련된 형태로 다듬은 논리라 할 수 있다. 이 논리의 핵심은 덩치가 큰 금융기관일 경우 그것의 청산이 미칠 파급력의 크기를 고려하여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다시 말해서 자기자본이 전혀 없는 금융기관에 대해서까지 지원 대상을 확장하자는 데에 있다. 이러한 지원은 중앙은행 최종 대출자 기능을 통한 지원과는 성격과 방식이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금융기관의 청산이 시스템 위기를 부를지 그렇지 않을지, 또는 시스템 위기가 나타난다면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를 사전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실 사전적으로는 이를 알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통해 금융기관을 구제할 때 금융당국은 위기의 가능성과 예상 피해 규모를 크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후적으로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 때 보험회사인 AIG에 대해 1,680억 달러를 지원했던 사실을 두고 당시 재무부장관이었던 폴슨은 "만약 AIG가 파산했다면 금융시스템은 완전히 붕괴했을 것이고 실업률은 어렵지 않게 대공황 시기의 25% 수준까지 올라갔을 것"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공적자금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는 시장 원칙에서 벗어나지만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금융자산의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딜레마이다. 엄밀히 얘기하면 금융자산가나 금융당국의 선택이 시장원칙 쪽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익 쪽으로 이미 기울어 있다는 면에서 이것은 딜레마랄 것도 없다. 금융자산가 계층은 위기가 닥칠 때는 항상 예금자 전액 보호와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국가 개입을 요구할 것이고 현재의 신자유주의 이념 지형에 큰 변화가 없는 한 금융당국은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실리콘밸리 은행(SVB) 파산으로 다시금 납세자의 세금이 공적자금으로 쓰일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돈을 벌 때는 시장의 자유를, 어려울 때는 정부의 개입을 요구한다. ⓒ연합=Reuters

덩치 큰 금융기관은 살려주어야 한다는 논리의 기원

공적자금을 통한 금융기관 구제 논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대마불사론이다. 이 논리의 요점은 금융기관의 부실 정도가 아니라 규모를 따져서 구제 여부를 판단한다는 데에 있다. 덩치가 큰 금융기관의 파산은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부실이 크더라도 구제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마불사론은 금융사산의 가격을 떠받치기 위한, 곧, 금융 세력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논리들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여러 금융 논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기원을 둔 대마불사론은 금융자산이 급속하게 팽창을 시작하던 무렵에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 구조조정을 한 바 있는데, 이때 적용한 논리도 바로 이 대마불사론이었다.)

1980년대 들어서 미국과 영국 주도로 펼쳐진 금융자유화와 금융규제완화를 계기로 전세계의 금융자산이 본격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한다. 1980년의 전세계 총생산(GDP)은 11억 달러였는데,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시기 전세계 금융자산(주식, 채권, 펀드증권, 대출채권의 합계)은 12억 달러였다. 이때는 금융자산의 규모와 총생산의 규모가 엇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에 이르면 전세계의 총생산은 63억 달러, 금융자산은 219억 달러로 늘어난다. 30년 사이에 총생산은 5배가량, 그리고 금융자산은 18배가량 증가했다. 이리하여 금융자산 규모는 총생산의 4배에 이르렀다.

이자나 배당의 청구권에 지나지 않는 금융자산의 가격은 가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 이유는 그것의 가격이 미래의 현금흐름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계산해낸 가상적인 수치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금융자산의 가격 계산에 현금흐름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는 탓에 거기에 불확실성이 끼어든다. 따라서 금융자산의 가격 변동성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이러한 변동성은 투기 거래의 밑받침이 된다. 그렇지만 금융자산의 가격도 결국은 실물 부문의 이자와 배당금 지급 능력에 의존하는 한 그것의 과도한 팽창은 언젠가는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1980년대 들어 금융자산이 팽창하면서 금융기관들의 파산도 함께 늘어난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1980년까지는 큰 은행의 파산이 드문 현상이었고 따라서 대마불사론이 불거질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금융자유화와 규제완화를 거치면서 주요 나라들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금융기관 파산이 잦아진다. 금융자산가 계층은 자연스럽게 금융기관 파산에 대해 자기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나아가 그 손실을 사회의 자원으로 메우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노력의 과정을 통해서 개발된 논리의 하나가 대마불사론인 셈이다. 이 대마불사론은 구체적인 정책으로도 이어진다.

파산은행의 처리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예금자 보험금을 지급한 다음 아예 청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다음 계약이전(P&A)을 통해 다른 금융기관에 넘겨서 영업을 계속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청산 방식은 금융기관 주주, 채권자, 고액 예금자들이 금융기관 운영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거기에서 별다른 논란거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 방식은 금융기관 부실 책임자와 부실에 따른 손실 부담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거기에서 논란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미국이 주로 사용한 파산은행 처리 방식은 후자였다.

그렇다면 자본잠식 상태인 은행에 대해서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처음 제시된 근거는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은행이라는 개념이었다. 경영 실패로 자본 잠식에 빠진 은행은 주주, 채권자, 고액 예금자가 손실을 분담한 다음 청산할 수 있다. 청산하지 않고 그 은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주주나 새로운 주주가 자본을 추가로 집어 넣어야 한다. 주주가 아닌 공적 부문이 추가 출자를 할 수 있게 하는 논리 근거가 바로 지역 사회에 꼭 필요한 은행이라는 개념이다. 자본잠식 상태인 은행을 공적 부문이 지원하는 것은 시장 원칙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지역사회가 그 은행을 꼭 필요로 한다면 공적 부문은 지역민의 편의를 위해서 자본 잠식 은행일지라도 자본을 출자하여 그 은행의 영업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제시된 논리는 대마불사론이다. 미국에서 대마불사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1984년 자산규모 미국 8위인 콘티넨털일리노이 은행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이다.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는 당시 10만 달러였던 예금보호 한도를 없애서 고액 예금자를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채권보유자에 대해서도 전액 지급을 약속했다. 은행의 고액 예금자와 채권자의 보호는 결국 은행 주식 가격의 유지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은행을 청산할 경우 은행 주식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금보호 직후 열린 청문회에서 청문위원이었던 맥키니(Stewart Mckinney) 의원이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청문회에서 통화감독청 청장은 미국의 11개 대형 은행들이 파산을 당하더라도 콘티넨털일리노이와 비슷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이는 대마불사 논리를 이 은행들에게도 적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함의한다.

이후 대마불사 논리가 적용될 대상은 점차 확대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간다. 처음에는 11개 대형은행에 한정되었던 대마불사론 적용 은행이 나중에는 그보다 더 작은 규모의 은행들로 확대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 대상이 은행뿐만 아니라 투자은행, 보험회사, 펀드 등 거의 모든 금융기관으로 확대된다. 금융안정위원회는 국제적으로 적용될 대마불사 금융기관을 지정해 놓았고 각국의 금융당국도 국내에서 적용될 대마불사 금융기관을 정해 놓았다. 그러나 그러한 지정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번 실리콘밸리은행 처리 과정에서 보듯 대마불사 금융기관이라고 지정해 놓은 것보다 규모가 더 작은 은행이 파산 위기에 빠지더라도 실제로는 구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예금자 보호도 더 두텁게 하는 쪽으로 점차 나아갔다. 예금보험 한도액는 1984년 당시 10만 달러에서 나중에는 25만 달러 수준으로 조정된다. 그러나 이 예금보호 한도액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파산 은행이 실제로 생겨서 위기가 닥치면 그 한도는 대부분 폐지되기 때문이다. 대형 금융기관을 구제한다는 대마불사론은 사실상 대마불사론이 아닌 것이다.

▲스위스 크레딧 스위스 은행의 파산은 유럽은 물론, 세계 금융계를 불안의 늪에 빠뜨렸다. 지난 4일(현지시간) 스위스 바젤의 CS 은행 앞 사거리의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연합=AFP

공적자금을 통한 금융기관 구제의 나쁜 효과

어떤 금융기관의 파산이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아 국가가 공적자금을 통한 구제금융에 나서면 그에 따른 여러 효과들이 발생한다. 그러한 구제금융이 실제로 금융 시스템 위기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것이 국민 일반의 부담과 지역금융, 서민금융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나쁜 효과가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금융기관 대형화가 촉진될 수 있다. 금융기관 대형화가 촉진되는 형태는 다양하다. 예컨대 금융시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작은 금융기관의 예금은 파산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큰 금융기관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번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 때도 예외 없이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금융당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한 파산 금융기관의 자산을 보통 다른 금융기관에 넘기는데 그 결과 그 자산을 인수한 금융기관의 대형화가 촉진된다. 대마불사론에 따라 금융기관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은행들 사이의 인수합병에 대한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대형화를 촉진한다. 더욱이 대마불사 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 시장 평균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때문에 얻는 경쟁상의 우위도 금융기관 대형화를 촉진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이 대자본으로 재분배되는 과정은 하나의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대형화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실물 부문의 성장에 대응하여 금융 부문의 규모가 커가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그러나 공적자금을 투입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와 그에 따른 대형화는 서민, 지역 금융기관의 위축을 부를 수 있다. 우리나라 외환위기 이후에 지역은행이나 서민 금융기관의 영업이 위축된 중요한 이유가 부실의 정도가 아니라 덩치의 크고 작음에 따라 구조조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금융자산 불평등이 커질 수 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것은 그 금융기관의 주주, 채권자, 예금자를 보호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예금자 보호 한도를 없애서 고액 예금자의 예금을 보장하면 그 자체가 국민 세금을 고액 예금자에게 이전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더욱이 위기가 퍼져나가는 국면에서 고액 예금자를 보호하면 그들은 정상적인 때보다 더 높은 금리의 이자를 받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위기 국면에서 값이 떨어진 유가증권, 부동산 등의 매입에 나설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산 불평등이 심해지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또한 출연이나 부실자산 매입 등의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에는 부실은행의 주가를 떠받치는 결과가 될 텐데, 이러한 과정도 마찬가지로 자산 불평등을 키울 것이다.

셋째, 납세자 돈으로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다. 이는 대마 불사론에 따른 이른바 도덕적 해이의 결과이다. 미쉬킨은 대마불사론에 따른 부실 금융기관 구제가 반복되면 대형 금융기관들은 안정성보다 큰 위험을 동반하는 높은 수익성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또 다른 금융기관 파산 가능성을 높인다고 얘기한다. 부실 금융기관 구제가 또 다른 부실 금융기관 구제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마불사 논리는 덩치가 큰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한 근거이다. 금융당국은 대마불사 논리에 따라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파산 위기에 빠진 대형 금융기관들을 구제한다. 그렇지만 그 결과 일반 납세자들의 미래 부담은 늘고 자산 불평등은 증가한다. 이런 면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정책의 성격은 비교적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구제금융을 모두 반대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먼저 금융기관 구제와 그 금융기관의 고액 예금자, 채권자, 주주의 구제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은연중에 두 가지를 섞어서 쓰지만 전자와 후자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공적자금으로 고액 예금자, 채권자, 주주를 구제하는 것은 이른바 시장 원칙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자산 불평등을 키우고 금융 세력에게 힘을 보태주는 강력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고액 예금자 보호의 경우 위기가 다가올 때 통상 그 한도의 철폐를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이지만 정말 그러한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금융기관 자체의 구제는 이와 다른 형태이다. 부실 금융기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사회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언제든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의 저명한 여러 학자들은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을 아예 공공은행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한다. 그들은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을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대중에게 책임을 지는 공공은행으로 전환함으로써 은행 산업의 본질을 회복하고 나아가 소상공인, 서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제안은 대형 은행들의 공공성이 사라지고 서민금융과 지역금융이 무너진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시사점을 준다.

다음으로 공적자금 투입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보통 납세자의 부담을 통한 고액 예금 보호, 부실자산 매입, 출자, 출연 등의 방식을 사용해서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생긴 혜택의 대부분은 주주, 채권자, 고액 예금자에게 돌아간다. 이와 다른 공적자금 투입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기관들의 신용불량자에 대한 채권을 평균 회수율에 준하여 평가된 가격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인수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이러한 방식의 공적자금 투입은 저소득층의 부채 고통을 줄이면서도 금융기관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이 아니라 대출을 받은 이용자들에게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금융기관을 지원해주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적자금 투입인가 하는 문제이다.

도움을 받은 자료

정신동, <도드프랭크 금융규제 개혁과 그 이후>, 애플북스, 2008.

高田太久吉, <マルクス經濟學と金融化論>, 新日本評論社, 2015.

Frederic S. Mishkin, 이명훈 외 옮김, <미쉬킨의 화폐금융론>, 2021.

Gari A. Dymski, "Genie out of Bottle: The Evolution of Too Big To Fail Policy and Banking Strategy in the US", 2011.

George G. Kaufman, "Too Big To Fail in Banking: What Does It Mean?", 2013.

Joseph E. Stiglitz, "America's socialism for the rich: Corporate welfarism", The Jakarta Post, June 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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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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