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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가 남긴 문자 메시지… "아빠, 나 콜수 못채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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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가 남긴 문자 메시지… "아빠, 나 콜수 못채웠어"

[존엄이 사라진 일터와 남은 사람들] ① 다음 소희, 고 홍수연 씨를 기억하다 (上)

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 날을 앞두고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산재사건기록모임에서는 산재사건기록을 연재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고 있지만 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사고·질병 포함) 2080명(산업재해현황분석’ 자료)입니다. 여전히 일하러 갔다 매일 5.69명이 산재로 숨지는 사회는 바뀌어야 합니다. 산재사망사건의 발생과 동료와 유족들의 투쟁, 정부와 사법부의 대응에 대한 기록을 통해 노동자의 죽음이 일상인 현실의 문제점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매주 하나의 사건을 2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입니다. 편집자

“따님인 거 같은데 오셔서 확인 좀 해주세요.”

경찰의 전화다. 전날 외출한 수연 씨가 집에 오지를 않자 아버지 홍순성 씨는 사방으로 찾아보던 때였다. 경찰은 저수지에서 발견된 사람의 옷에서 딸의 은행카드가 발견됐다고 했다. 카드는 누구든지 훔쳐 갈 수도 있으니 딸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의심은 했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설마 딴 사람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영안실로 들어갔다.

“영안실 문을 여는데 장미 문신이 보이더라고, 수연이 팔에 장미 문신이 하나 있거든. 수연인 거지. (이미 알아버린) 그 상황에서 차마 얼굴은 제대로 못 보겠더라고. 그냥 맞다고 하고 나왔어.”

홍씨가 고지식해서 딸이 하룻밤 집에 안 들어왔다고 딸을 사방으로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수연 씨가 전날 자해를 했기 때문에 걱정이 커져서다. 토요일 새벽녘 딸의 친구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수연이가 자해를 했는데 어쩌면 좋냐고, 홍씨는 손으로 상처를 꼭 누르고 있으라고 일러두고는 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 봉합수술을 했다. 집에 와 이유가 뭔지 수연 씨의 어머니도 물었으나 답이 아니라 신경질적인 반응만이 나왔다. 병원에서 수술하고 나온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친구를 만난다며 점심 무렵 나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에 안 들어오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술 좋아하는 수연이가 친구네에서 자는 것이기를 바라며 기다렸다.

다음날인 월요일 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는 딸을 찾으려 오전 회사로 찾아갔다. 출근을 안 했단다. 친구들에게도 연락했지만 같이 없다고 했다. 낮 1시 무렵,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안 것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다.

장례 후에 시작된 시민사회의 대응

어렴풋하게 수연 씨의 죽음의 원인을 짐작하게 된 것은 장례식장에 온 딸의 친구들의 말 때문이었다. 수연씨는 LGU+ 고객센터(LB휴넷) 전주센터 해지방어부서(세이브팀)에서 일하는 현장실습생이었다. 한 달만 더 있으면 고등학교도 졸업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이 와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수연이가 회사 때문에 그런 거 같다고.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욕도 들었고 인자 그것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한번 조사해보라고.”

홍씨는 그 이야기를 듣고 산업재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혼자서 노무사도 알아보며 산재 신청을 준비하던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민주노총에서 일한다는 강문식 씨가 연락해서 딸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당시 민주노총 전북본부 교육선전부장이었던 강문식 씨가 사고를 처음 접한 건 신문의 한 여성이 저수지에 투신했다는 단신 보도였다. 그냥 지나쳤을 사건보도가 그를 끌어잡은 것은 후속보도였다. 고인이 콜센터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학생이었다는 내용을 보고 그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전북 지역에서도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들이 있어서 관심도 있었어요. 그리고 사망자가 생긴 LGU+ 고객센터(LB휴넷) 전주센터는 그전부터 일종의 감시 대상이었어요. 2014년에 한 분이 거기서 먼저 돌아가셨거든요. 영화<다음 소희>(정주리 감독, 2023)에도 나오잖아요. 2014년 당시에 희망연대노조가 통신사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 조직 사업하면서 이 사건에 대응했거든요. 뭔가 내용이 있겠구나 싶었죠. 앞선 사건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몰라요.”

강씨는 희망연대 노조와 함께 사건 파악을 시작했다. 국회의원실을 통해서 자료도 확보하고, 수연 씨 친구도 만나고 조합원을 통해 수연 씨가 했던 업무가 무엇인지도 파악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재직자들과 퇴직자들을 수소문해서 대체 전주고객센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확인하느라 한 달 정도가 걸렸다. 만약 교육청이나 노동부가 사건 조사를 했다면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유가족들을 만나서 최종적으로 말씀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였죠. 수연씨는 제때 퇴근해 본 적이 없었어요. 유가족은 이미 노무법인에 착수금을 줘 산재 의뢰를 맡긴 상황이고요.우리는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어떤 약속을 요구할 거다. 보상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장례가 끝난 후라 회사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할 테니까 우리와 함께 대응하겠냐고 물었죠. 흔쾌히 승낙하셨어요. 이대로는 (사건을) 못 덮겠다고 하셨어요.”

그 후 2017년 3월 7일 <LG유플러스고객센터(LB휴넷)현장실습생사망사건진상규명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이하 전북공대위)가 출범했다. 전북공대위는 우선 시민분향소를 대우빌딩 앞에 설치했다. 전주고객센터 앞에서 출근선전전도 하고 추모대회도 여섯 차례나 했다. 전주시장도 찾아가 면담을 하고 노동부 전주지청장과 전북 교육감 면담도 하며 이 문제가 노동권과 교육권의 문제임을 알렸다.

대책위가 출범하자 회사는 기자회견을 했다. 수연씨의 죽게 된 원인은 ‘가정형편’ 즉 개인적 사유라고 밝혔다. 산재사고가 터질 때마다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을 이번에도 반복한 것이다. 회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가 지나쳤다. 수연씨의 자해 경과나 과거 회사 성원들과의 갈등을 들먹이며 사생활을 공개했다. 문자까지 직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명백한 2차 가해였다. 강씨는 이때 정말 화가 났다고 했다.

“회사가 수연씨의 사생활에 대해 나쁜 소문을 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기자들을 불러놓고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했다니 너무 화가 났어요. 물론 대책위를 만들기 전인 1월 말 교육청을 찾아갔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서 이미 화가 난 적이 있었고요. 학교와 장학사는 수연 씨가 학생들과 싸운 적도 있고, 자해 시도가 있어 단순 자살로만 보고했다는 거에요. 당시 교육감이 소위 진보교육감이었는데도 교육청의 인식이 이 정도구나 싶었죠.”

강씨는 수연씨 사망사건에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생제도, 콜센터노동자의 감정노동, 하청노동자의 인권 등 세 가지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했다.

▲3월 7일 LG유플러스고객센터(LB휴넷)현장실습생사망사건진상규명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 출범기자회견 ⓒ전북공대위

속속 밝혀지는 진실들

전북공대위는 이러한 회사의 입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여러 차례 해야 했다. 회사는 해지방어부서는 실적률을 가지고 관리했고 상품 판매를 시킨 적은 있으나 현장실습생에게 요구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수연씨에 대한 실적 평가도 있었다. 게다가 실적이 낮다고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거짓말도 했다. 그러나 전북공대위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SAVE 팀 실적급 평가기준’을 보면, 실적에 따라 실적 급여을 차등지급하도록 되어 있고 수습기간인 노동자도 포함됐다. 실적이 낮은 사람들은 남아서 실적이 좋은 사람들의 대응 요령을 공부해야 했다. 이것이 불이익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심지어 수연씨에게 현장실습생이는 이유로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도 부인했다.

9월 2일 LG유플러스고객센터와 학교와 맺은 현장실습표준협약에는 회사가 하루 7시간 기준 160만원 정도의 월급을 지급한다고 써 있었다. 실제 받은 월급은 적었다. 첫 달은 870,000원, 둘째 달은 1,210,000원, 셋째 달 1,273,000원을 받았다. 현장실습계약서에 적힌 임금을 주지 않았으니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하 직촉법) 위반이다. 그런데 현장실습을 시작하는 날인 9월 8일 하루 8시간 근무에 월 1,135,000원 기본급을 지급한다는 근로계약서를 주었다고 한다. 일종의 이면계약을 한 것이다.

거짓해명은 또 있었다. 현장실습생들에게 연장근로를 시킨 적이 없다고 했다. 청소년에게는 법상 연장근로를 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현장실습생의 근로시간은 7시간이다. 문제는 연장근로를 하고도 연장근로로 인정하지 않는 관행 때문에 기록에는 아무도 연장근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는 현장실습생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직원이 무료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버지 홍순성 씨와 주고받았던 sns 내용. 늦게까지 근무했던 상황을 알 수 있다. ⓒ전북공대위

“사실 내가 날이 추워진 11월말부터 수연이가 그렇게 될 때까지 매일 출퇴근을 시켜줬거든. 그런데 대부분 저녁 7시가 넘어야 회사에서 나왔어. 6시에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어.”

딸에 대한 애정이 많은 홍씨는 날이 추워진 겨울부터 수연씨를 차로 출퇴근시켰다. 저녁에는 끝나는 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갔다. 실적이 좋지 않을 때 수연씨는 퇴근 시간인 6시 이후에도 실적 좋은 상담사의 녹음파일을 들으며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다. 때로는 정해진 상담전화량 (콜수)를 퇴근 후에 채워야 했다. 때로는 정해진 상담전화량 (콜수)를 퇴근 후에 채운 것으로 파악됐다. 수연씨 사건을 대중적으로 알린 문자, “아빠, 나 콜수 못채웠어”라는 문자도 퇴근 마중을 오는 아빠에게 보내게 된 것이다.

마중을 오는 아빠에게 보내는 “아빠, 나 콜수 못채웠어”라는 문자에서 노동강도와 연장근로를 알 수 있다. 이 문자는 이후 수연씨 사건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메시지가 되었다.

▲홍수연 씨가 다니던 특성화고 입구 전경. 현재는 실습 나갔다가 돌아온 학생들에 대한 벌칙은 사라졌다고 한다. ⓒ명숙

좋은 곳에 취업하는 줄 알았지

딸이 일한 회사가 문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될수록 홍씨는 괴로웠다. 특성화고인 ㅈ생명과학고에 다니던 딸이 3학년 2학기가 되어 현장실습계약서를 가지고 왔을 때 대기업이라 좋은 업체인 것으로 알았던 것이 후회됐다. 수연씨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아빠의 의견을 물었기 때문이다. 애완동물학과에 가게 된 것도 아빠의 권유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 배구부였던 수연씨는 운동부 내의 괴롭힘으로 운동을 관뒀야 했다. 운동을 하다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홍씨는 딸을 믿었다. 언제나 뚝심이 있는 딸은 자립심도 강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앞장섰다. 그러다 보니 싸움도 많고 학교에 불려가는 일도 많았다. 키가 크고 골격도 있는 딸이기에 보기에도 듬직했으니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LGU+라면 대기업이니 법도 잘 지키고 학생들에게 잘할 것이라 생각했다. 흔쾌히 부모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나는 이제 LG라는 타이틀이 있으니까 그니까 믿고 이제 이렇게 조금 계약서 읽어보고 근로 계약서 읽어보고 이제 도장을 찍어준 거지 이제 처음에는 정말로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게 왜 그러냐하면 이제 실적에 따라서 인자 돈이 올라가는가 보더라고. 난 해지방어팀인지는 몰랐지.”

해지방어팀은 소위 욕받이 부서다.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에게 통신을 계속 사용하도록 권유하는 부서다. 그렇다보니 고객들의 항의도 많고 유지를 위한 아이디어나 상품설명도 유창해야 한다. 신입이 그것도 현장실습생에게 해지방어팀을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감정노동과 실적평가에 대한 부담이 심해서 재직자들도 기피할 정도로 심각한 부서에 현장실습생을 넣다니.

게다가 통신사들이 고객상담센터를 하청 외주업체로 내몰면서 상담사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는 상태였다. 원청이 경쟁을 부추기고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유플러스 고객센터 하청업체가 모두 LG그룹 관계사예요. 부산 쪽에는 다른 자회사 소속의 센터가 또 있었거든요. 그 센터들을 총괄하는 팀이 따로 있어요. 각 센터들을 다 실적을 매일매일 집계해가지고 매일매일 보고가 나와요 순위 매겨가지고 직원들한테도 다 인쇄해서 나눠 줘요. 어저께는 부산에 무슨 팀이 1등 했다. 그 전주에 어느 팀이 1등 했다. 이런 것들이 어디가 꼴등했다. 원청에서 관리하고 하는 게 아니면 불가능하죠. 그건 하청업체들끼리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실제로 각 하청업체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총괄부서가 있어요. 원청 직원들이 그 부서에 상주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구요. 그러나 원청은 하청업체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라고 발뺌했죠.”

원청은 책임을 철저히 부인했다. 원하청구조는 하청노동자들을 쥐어짜기 편한 구조였다.

(下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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