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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 전기는 요금과 기후 둘 다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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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핵발전 전기는 요금과 기후 둘 다 잡을까?

[함께 사는 길] 화석연료가 보낸 경고장 ②

아마도 이 글이 인쇄될 즈음이면 경칩을 지날 테고, 시민들은 난방비 폭등 논란을 금세 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정부 임기 내에 전기 요금과 가스 요금의 추가 인상이 예고되어 있고 뒤늦은 정쟁이 간헐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스 요금 변동은 우크라이나 전쟁 탓이 크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논쟁의 핵심 축은 에너지 요금 인상이 어느 정부의 책임인가, 그리고 특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때문에 에너지 수급 불안이나 전기 요금 폭탄이 초래된 게 아닌가 하는 곳에 형성되어 있다.

먼저 팩트체크부터 하자면 최근의 전기 요금 인상은 핵발전 증감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탈원전을 표방한 문 정부 때에 핵발전 전기가 줄어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고리 1호기 영구정지 행사에서 탈원전을 천명하고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전력 그리드에서 빠진 것은 노후하고 발전량도 많지 않은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뿐이었고, 신고리 5,6호기도 건설이 재개되었다. 문 정부에서 핵발전의 가동량이 줄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핵발전소 설비 자체에서 발생한 문제들 때문이었지 정부의 정책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굳이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전기 요금을 연결할 수 있는 논리가 있다면 신고리 5,6호기(새울 3,4호기로 이름 변경)의 건설이 지연되어 공사비가 1.2조 원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론화 절차 때문에 공사가 중단된 것은 5개월뿐이며, 주 52시간제 도입과 경주 지진으로 인한 내진 설계 강화 때문에 추가로 지연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 핵발전소 건설 지연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모든 핵발전 국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 고리원전 3·4호기 ⓒ함께사는길(이성수)

두 정부 모두 핵발전 비중과 전기 요금은 무관

윤석열 정부 하에서는 핵발전과 전기 요금이 관련이 있을까? 이 역시, 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거의 관련이 없을 것이다. 윤 정부는 지금 가동 중인 25기의 핵발전소를 크게 줄일 생각이 없으며, 원전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해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고 신한울 3,4호기를 신규로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윤 대통령 임기 중에 그리드에 추가로 들어가는 핵발전 전기의 양은 억지로 늘려도 3~4 기가와트, 즉 총 전력 공급의 2~3%를 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당분간 핵발전과 전기 요금은 무관하다고 말해도 좋다. 게다가 핵발전은 난방에 쓰지 못하고 오직 전기만을 생산하기 때문에 탈원전과 전기 요금을 연결하는 주장은 그야말로 주장일뿐이다.

그렇다면 핵발전을 늘려야 한다는 거의 유일한 논거인 경제성과 기후위기 대응 측면의 효과를 잘 따져볼 차례다. 윤 정부는 올해 1월에 확정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2030년까지 핵발전 32.4%, 석탄발전 19.7%, LNG발전 22.9%, 그리고 신재생에너지를 21.6%의 비중으로 확정했다. 핵발전은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줄인다는 문 정부의 정책 방향을 뒤집어서 핵발전을 30% 이상으로 늘리고 재생에너지를 20% 초반으로 하향하도록 목표를 수정한 것이다. 모든 에너지 정책은 큰 비용이 투입되고 긴 시간이 지난 후 영향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 선택은 상당한 기회비용을 수반한다.

핵발전은 기후위기 대안인가?

'드로다운(drawdown)'은 온실가스 배출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2017년 발표된 '플랜 드로다운'은 환경 경제학자 폴 호켄이 주도한 다국적 연구팀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해법들이 갖는 효과를 구체적으로 측정한 것이다. 이들은 이미 존재하고 투입할 수 있는 80가지 해법의 감축 기여량과 비용을 측정했는데 여기서 핵발전은 20위에 올라가 있다. IPCC의 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도 핵발전은 탄소 감축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핵산업계는 쾌재를 부르겠지만, 드로다운의 저자들은 그렇다고 핵발전을 탄소 감축의 대안으로 꼽는 것은 후회막급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의 설명은 핵발전은 사고의 위험성과 폐기물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뿐 아니라, 탄소 감축 수단으로는 너무 느리고 비싸다는 것이다. 1.5도 티핑포인트까지 겨우 1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예상이지만, 핵발전소는 짓는데 평균 12년 이상이 걸린다. 2~3년이면 가능한 풍력발전이나 수개월도 걸리지 않는 태양광에 비하면 핵발전은 너무 느리다. 세계 에너지 시장과 지금도 핵발전을 늘리거나 신설할 의향이 있는 국가들의 계획을 종합해 보아도 추가되는 핵발전소와 노후하여 폐쇄하는 핵발전소의 총합을 나타내는 그래프는 상승 곡선을 그리지 않는다.

또한, 저자들은 핵발전은 다른 모든 발전원과 달리 개발이 시작된 이래 발전량 대비 비용이 점점 늘어나는 유일한 에너지 기술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핵발전소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이를 고려하여 더 두꺼운 격납용기와 높은 방벽, 더 많은 비상 발전기와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만큼 건설 비용이 늘어나고 공기도 지연된다. 이에 비해 과거에 크게 비쌌던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원의 비용은 기술 혁신과 시장 확대에 따라 비약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추가적인 지원금 없이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때를 '그리드 패리티'라고 하는데, 태양광과 풍력 모두 2030년 이전에 이 시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말하자면 에너지 시장에 투자할 민간 사업자조차 더 비싸고 골치 아픈 핵발전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나 차세대 원자로, 핵융합 같은 기술에 기대를 걸지만, 상업적으로 확대하거나 실용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난 20여년 전부터 설계도와 제안서만 오고 가는 기술들이다. 즉 앞으로도 연구 개발 단계를 벗어나기 어려우며, 이미 제작과 시공 경험이 있는 (3세대) 핵발전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때문에 드로다운의 저자들이 더 많은 데이터를 보강하여 도출하여 업데이트한 2021년의 평가에서 핵발전은 시나리오1에서는 51위,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의 역할을 더 많이 가정한 시나리오2에서는 61위로 밀려났다.(오른쪽, 2021년 '드로다운 리뷰'에서 평가한 에너지원 전환과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 그림 참조)

ⓒ함께사는길

프랑스와 중국의 선택이 보여주는 것

핵발전이 전체 주기 평가를 통해 볼 때 태양광이나 풍력과 비슷한 수준으로 저탄소 에너지원인 것은 맞지만, 결국 우리는 기후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핵발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거나 핵발전의 가교 역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핵발전은 그 자체로 재생에너지에 들어갈 투자와 정책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핵발전이 갖는 경직성, 즉 거대한 발전량과 출력 변동의 곤란함은 그리드 운용에서 변동성이 심한 재생에너지와 충돌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중심으로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의 동향은 어떠할까? 전통적으로 핵발전에 우호적인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3년 전기시장 보고서는 재생에너지가 2025년까지 전 세계 전력 수요 증가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며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을 합치면 3년 이내에 세계 최고의 전력 공급원이 되리라 전망한다. 그러나 IEA도 핵발전 증가를 기대하는 부분은 프랑스와 일본의 원자로 재가동과 중국과 인도의 신규 건설 정도다.

세계 원전 최강국 프랑스는 지난해에 심각한 에너지 위기 속에서도 핵발전소 절반이 기술적 문제 등으로 멈춰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의회는 지난 2월 9일 재생에너지 배치를 가속하기 위한 새로운 법안을 채택했는데 2030년까지 100GW의 태양광을 증설하고 육상풍력과 해상풍력 단지를 배치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재생 에너지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프랑스 핵발전의 주역인 전력회사 EDF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대규모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 하나를 인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EDF는 해상풍력 분야에서 이미 10년 이상의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7개의 해상 풍력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전히 핵발전 해외 수출에 매달리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의 행보와는 다르다. 한편 중국의 현실은 더욱 극적이다. 중국에서 핵발전이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총 약 243TWh의 신규 발전량을 추가하는 동안, 풍력 에너지는 매년 약 711TWh를, 태양광은 약 474TWh를 추가했다. 엄청난 격차이며 이런 추세는 계속된다.

간단한 설득 논리보다 풍부한 토론을

핵발전은 폐기물 처리 등 공식 통계에서 잡히지 않는 상당한 숨은 경제적 비용이 있을 뿐 아니라, 주민 갈등과 심리적 피해, 민주주의의 훼손 등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하지만 단지 핵발전이 이렇게 위험하고 비싸다는 것만으로 시민들을 충분히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분명하다. 재생에너지도 어느 정도 환경 피해가 발생하고, 저장 배터리나 양수 발전 같은 백업 전원을 확충하는 데 비용과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방향을 잘못 잡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필요한 변화를 요구하는 한편, 우리는 동료 시민과 어려운 토론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개인에게 맡겨지는 탈원전이 사실상 실패했던 것에서 우리는 아픈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 모두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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