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여 일 동안 진행한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 유해 발굴 현장이 28일 언론에 공개했다.
그동안 유해 발굴을 진행해온 진실화해위원회는 유해 수습을 앞두고 한국전쟁 당시 참혹했던 역사를 국민에게 알리는 차원에서 이날 현장을 공개했다.
유해 발굴 현장은 1950년 10월4일 당시 온양경찰서가 정상화되면서 확인되지 않은 좌익 부역 혐의 관련자와 가족을 집단 학살하고 유기한 곳이다.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향토방위대·태극동맹)가 인민군 점령 당시 부역했다는 혐의자와 가족들을 집단 학살했다.
발견된 40여 구 유해는 대부분 남성으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일 것으로 알려졌다.
학살 후 좁은(폭 3m, 길이 14m) 방공호에 매장돼 대부분 몸이 L자 형태로 구부러진 채 발견됐다.
머리 위에는 파랗게 녹슨 탄피가 박혀있었고 손목에는 군용 전화선인 삐삐선이 감겨있었다.
또 현장에서 학살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A1소총 탄피와 소총 탄두, 카빈 탄피, 99식 소총 탄피 등 다량 발견됐다.
발견된 유해들은 4월 중순까지 수습될 예정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5월, 성재산 방공호 현장 뿐 아니라 배방 수철리 금광굴, 염치리·대동리 일대에서 집단 학살 사건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당시 조사 결과 77명의 신원이 확인됐고 참고인 진술에 따라 희생자를 800 여 명으로 추정했다.
배방면 지역은 9·28 수복 시기 최소 200 여 명, 1·4 후퇴 시기 300 여 명이 희생됐다.
참고인 진술에 따르면 매일 밤 1, 2차례씩 부역 혐의자 40 여 명을 트럭에 실어 성재산과 온양천 변에서 학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
또 1951년 1·4 후퇴 시기에는 도민증을 발급해 준다고 속여 곡물 창고에 모이게 한 뒤 수백 여 명을 집단 학살하기도 했다.
당시 희생자들은 가족 단위로 살해돼 유족이 없는 경우가 많아 유해 수습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사건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 자손들이 마을에 함께 어울려 사는 경우가 많아 유해 발굴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2018년 와서야 아산시가 자체적으로 유해 발굴을 진행해 208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전국 6개 지역 7개소를 선정해 유해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아산 지역은 성재산 방공호에 이어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 2지점에서 유해 발굴이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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