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연 토론회에서, 이른바 'MZ노조' 대표자가 해당 제도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현행 52시간제도 정착되지 않은 판에 노동시간을 추가로 늘리는 것은 노동자들의 바람이 아니라는 취지다. 이런 가운데 정부·여당은 '현행 노동시간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야근을 지시한 사용자(사업주)는 범법자로 전락한다'는 우려를 했다.
유준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장은 16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임이자 의원이 주관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토론회'에서 "(정부안은) 제도 취지의 실현 여부가 불분명하고 우려점이 충분히 해소되지 못해 반대 의견"이라고 밝혔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LG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등 'MZ노조'로 불리는 노동조합들의 협의체다.
유 의장은 정부 노동시간 개편안 취지를 세 가지로 보고 각각에 대한 반론을 폈다. 유 의장은 "52시간을 초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노동자의 주장은 아니다"라며 "IT나 게임업계 종사자도 과도한 근로를 '깨야 할 악습'으로 보고 있고 설령 초과근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노동자가 있다 하더라도 소수인데 예외적 상황을 이유로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입법을 하는 것이므로 우려가 크다"고 반박했다.
유 의장은 또 정부가 노동시간제 개편 근거로 내세운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많은 노동자가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보통 '유연하게 쓴다'는 것은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떠올리지 연장 근로를 유연하게 쓰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주에 44시간 일하고 다음 주에 36시간 일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이번 주에 60시간 일하고 다음 주에 50시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유 의장은 '주 52시간제 때문에 공짜 야근이 생긴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장시간 근로해도 임금을 못받는 '공짜 근로'는 기업의 문제이지 주 52시간제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주 52시간제를 안 지키는 기업이 주 69시간제를 지키라는 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새롭게 주어진 '선택권'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
청년연구단체 '스페셜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유재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도 정부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와 당사자 합의 시에만 주 최대 69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겠다'고 한 데 대해 "새롭게 주어진 '선택권'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라며 "근로시간 개편이 취지와 다르게 (노동자들에게) 손실로 인지되지 않으려면 제도가 잘 작동할 수 있는 노사 문화 구축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유 위원은 "과거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사업주의 준법 자정능력 유인도 필요하고, (특히) 추가 근로수당에 대한 부분이 확실하게 지켜져야 한다.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대책도 빠르게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정부 측을 대표해 나온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그러나 "정부는 근로자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 보장을 위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을 발표했고 입법예고 중"이라고 인식차를 보였다.
권 차관은 특히 "주 단위 상한 규제라는 획일적 경직적 제도를 70년간 유지한 상태에서 주 52시간 상한제가 들어왔다. 이런 방식으로는 현재 수백·수천 명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에서 한 명의 근로자가 한 시간만 추가 근로를 넘어서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게 현실"이라며 "근로자 입장에서도 이번 주에 집안일이나 휴가로 미룬 일을 다음 주에 하려 해도 근로시간 상한제에 묶여서 제대로 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권 차관은 "이렇게 제도의 경직성을 유지한 채로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다 보니 현장에서는 포괄임금이 계속 남용·만연되고 있고 '공짜 야근', 장시간 근로시간 관리를 안 하려 하는 불법부당한 관행이 야기되고 있다"고 '공짜 야근'이 주52시간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개편안 취지는 주 평균 52시간 내에서 업무량 변동에 따라 업무량을 노사 합의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하고 근로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 궁극적으로 실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취지"라고 주장헀다.
이날 토론회 주최자인 임이자 의원도 "연구·개발 근로자가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때가 많다"며 "그러면 사용자는 범법자로 전락한다"고 사용자의 법 위반 가능성을 우려했다. 임 의원이나 권 차관의 말은 정부·여당이 그간 노동조합에 대한 엄격한 '법치'를 강조한 점과 대비됐다.
임 의원 역시 "(노동자가 주 52시간을 넘어 일하면) 사용자는 범법자가 되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컴퓨터를 끄고 퇴근하라'고 명령한다. 그럼에도 근로자가 업무하던 게 있어서 계속 일할 경우 '공짜 노동'이 된다"며 "사용자를 범법자로 만들지 않고 노동자도 초과 근무하지 않게 하자는 취지로 노동부가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에 따른 과로 증가 우려에 대해 임 의원은 "과로사, 과로를 이야기하는데, 산재에서 인정하는 과로는 4주 연속 64시간 근무하면 과로로 인정된다"고 노동부의 과로 인정 기준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이는 탄력근로제 미시행시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한 현행법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기준이다. 실제 법원이나 근로복지공단도 과로 산재 판단 시 고용노동부 기준을 기계적 잣대로 삼지 않고 업무 내용·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민주당 "52시간제만 해도 주5일 내내 야근…69시간? 제정신인가"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안에 대해 비판 강도를 나날이 올리고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주69시간제를 둘러싼 난맥상이 총체적 난국 수준"이라며 "여론 반발에 부딪히자 윤 대통령은 'MZ 세대 의견을 반영하라'며 모두 MZ 세대를 위한 것처럼 하더니 다음날 대통령실은 느닷없이 노동 약자 운운하며 말을 바꿨다. 전날은 여론에 따라 원점에서 검토할 수도 있다더니 이제는 오히려 제도 취지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박 원내대표는 "우왕좌왕할 뿐, 제도의 근본적 문제와 한계는 그대로 둔 채 무조건 밀어붙이려고만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주 69시간 근무제 추진은 '과로사(KWAROSA)'라는 우리말이 그대로 외신에 보도되며 국제적 우려를 낳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소통과 홍보를 강화한들 주 69시간 근무제가 노동자를 과로사로 내모는 살인근무제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나아가 "아직도 정착 단계인 주 52시간제는 5일 내내 9시에 출근해서, 점심·저녁을 먹고 밤 9시에 퇴근한다는 뜻이다. 그러고도 두 시간이 모자라서, 그 중 하루는 밤 11시까지 일하는 것이 주 52시간제의 의미"라며 "그러니 MZ세대들이 '도대체 어떤 MZ세대가 주 69시간에 찬성하는지 정부에 되묻고 싶다'며 비판하는 것"이라고 꼬집고는 "정부는 국민과 정치권이 제도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탓할 게 아니라 현장 노동자의 생생한 여론을 수렴하고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69시간제 도입 문제는 노동 조건에 대한 국제 표준에도 전혀 맞지 않는 퇴행적 조치 "라며 "앞으로 주 4.5일째를 향해서 가야 하는데 오히려 52시간을 넘어서서 69시간으로 가겠다는 것은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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