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달 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3.5% 수준에서 '동결'했다는 소식은 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분명 이날 결정은 다른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일뿐 아니라 위험한 것이지만 국내언론은 예상했다는 듯 담담했다. 그러나 필자는 지난 금통위 결정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두고두고 소환할지 모를 최악의 선택이라 보고 있으며, 이미 그 우려는 현실로 확인 중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은 정치권력에서 '독립'하지 못한 우리 중앙은행의 위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기준금리 동결에 대한 이창용 총재의 변명(?)을 떠나 이번 결정의 핵심에는 주택시세 폭락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공포가 스며있다. 윤석열 정부는 주택가격 폭등으로 권력을 빼앗긴 문재인 정권의 몰락을 지켜보며, 그 보다 훨씬 큰 파장이 예상되는 주택가격 폭락을 모면하는 데 사활을 건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까지 최소한 부동산 자산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선봉에 세운 '영혼을 끌어 모은' 관치금융이 작동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지난 1월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당시 미분양주택 정부 매입을 언급해 여론을 요동치게 만들었고, 이후 비상경제회의를 통해서는 은행 공공재론을 언급하며 노골적인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나선 것이 그 근거다. 한국은행의 엉뚱한 기준금리 동결은 그래서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관치금융으로 부동산 떠받치기에 나선 영끌 정부의 담보가 국민경제라는 냉혹한 현실. 당장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은 곧바로 미연방준비제도의 긴축강화와 엇박자로 맞물리며 환율급등을 야기 중이다.
1. 너무 빠른 확산 : 집권세력 길로틴 된 '미분양'
국토부가 집계한 1월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의 규모는 7만5000가구를 넘었다. 미분양 규모는 올 상반기 중 10만 가구를 돌파할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컨센서스. 역대 최대 규모를 찍었던 이명박 정부 당시 16만호 수준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미분양 주택통계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규모를 압도하는 속도. 지난해 6월 이후 올해 1월까지 전국 월별미분양 주택증가속도는 국토부가 관련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빠른 상황이다. 시쳇말로 대기권을 뚫고 치솟던 주택가격이 물가급등,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긴축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만나 고꾸라지며 쏟아내는 폭발음이 바로 미분양이다. 그런데 이 폭발음은 단순히 주택시세 버블 붕괴의 신호음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경제의 비상 경고등에 가깝다.
2. 무너지는 부채주도성장 신화
이는 부동산 자산가치가 우리 경제시스템과 직결된 뇌관이기 때문이다. 97년 IMF이후 우리 내수 경제는 기본적으로 부채가 가져오는 성장 공식에 의존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 시중에 '빌린 돈'이 넘치면 실물에 사용되고 남는 돈 대부분이 주택 시장으로 유입된다. 부동산 버블이 집값뿐 아니라 소비와 투자, 고용까지 순환하며 '아름다운' 부의 효과를 누리는 부채주도성장이 그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을 간판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 역시, 실제 국민들에게 내놓은 메뉴는 부채주도 성장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시기 주택시세가 전례 없는 과열 국면으로 빠져들자 각종 부동산 규제를 통해 이를 막아보려 시도했지만, 실제 유동성은 전세자금대출 등 모피아가 주도한 엉터리 금융정책 덕분에 부동산 규제 따위를 무시한 채 무차별로 시중에 살포되었으며, 결국 폭등한 주택시세는 국민적 분노로 돌아와 촛불정권을 퇴장시킨 것.
문재인 정부를 퇴장시킨 것이 집 없는 자들의 분노였다면, 윤석열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집 있는 자들의 분노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주택가격규제와 관련한 이전 정부의 주요 조치 대부분을 해제하였고 올 초 특례보금자리론처럼 정부자금까지 주택시장에 쏟아 붓는 '영끌정부'로 거듭났다. 전 정부의 숨통을 끊은 주택시세 폭등이든, 현 정부를 '영끌' 정부로 만든 주택시세 폭락이든 부동산에 전 자산을 '몰빵'하며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주택시세의 급등락은 정권의 운명을 쥔 목줄인 셈이다.
3. 이 와중 등장한 엉터리 '관치도박'
그런데 이 와중에 등장한 가장 심각한 사태가 바로 관치금융이다. 관치금융이란 무엇인가? 금융당국이 자신의 뜻대로 금융을 조작하는 것이다. 관치금융이 문제인 것은 엄연히 스스로의 원리로 작동하는 시장의 기능을 정부의 뜻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자금의 교환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금융시장의 가장 본질적 기능과 존재의미는 위험의 값을 평가해 금리로 반영하는 역할에 있다.
주택시세가 너무 비싸면 주택을 담보로 공급된 자금의 대출이자가 올라야 한다. 높은 대출이자는 주택 수요의 가장 큰 적이다. 주택공급은 이미 과잉인데 주택수요가 실종된 상황을 타게 하기 위해 관치금융이 등장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일 국민은행 본점을 방문해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하는 고금리 시대의 국민경제의 어려움을 함께하기 위한 노력"이라면서 대출금리 인하가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금감원은 동시에 금융기관의 성과급과 관련한 검사활동을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금리 인하 주문과 금감원 검사가 노골적으로 맞물린다.
대통령이 은행의 과점이 문제라며 북을 울리고 후배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장구를 들고 장단을 맞추자 소외된 금융위원회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챌린지뱅크니, 스몰라이센스니 하면서 은행 간 경쟁을 강조한다. 인터넷전문은행법이 억지 통과되며 등장한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4. 관치도박 담보된 국민경제 운명은?
주택시세 폭락이 야기할 민심의 길로틴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윤석열 정부의 관치금융은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 주택시세 버블 과정에서 최근 금융위기 뇌관으로 지목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등장했기 때문. 부동산 PF는 과거 건설사가 담당하던 주택건설자금 공급 기능을 지난 10년 사이 저축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및 캐피탈 등 제2금융권이 대신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부상했다. 담보가 아니라 사업성을 근거로 보증이나 대출을 실행하는 부동산 PF의 금융 방식은 본질적으로 미분양 발생이 가장 큰 리스크다. 특히 미분양 발생은 해당 사업 뿐 아니라 유동화 된 업계 전체의 부동산PF 금리에 영향을 미치며 본PF 앞단에서 진행되는 브릿지 금융까지 마비시키는 부동산 금융기법이다.
그런데 미분양의 급속한 확산만으로도 부동산PF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우리 금융시스템은 내수뿐만 국가경제의 3대 축인 수출과 재정 모두에서 강력한 도전을 받는 중이다. 반도체와 대 중국 수출이 핵심인 무역수지는 반도체의 글로벌 수요 위축과 대중국 무역적자로 건국 이래 최악이라는 12개월 연속 적자의 늪에 빠져있다. 여기에 미국반도체법 논란까지 새롭게 가세하는 형국으로 이 문제가 더 악화된다면 경상수지 흑자 기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재정 분야는 더 충격적이다. 집권과 동시에 '부자감세·재벌감세·건전재정'을 외친 윤석열 정부는 결국 지난 달 30일 기획재정부 발표 2022년 국세수입실적에서 지난 1월 기준 국세수입이 정부예상대비 7조 가까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수입이 예산을 밑돌려 세수부족에 직면한 것. 정부지출이 시중에 돈을 푸는 행위고, 돈이 풀리면 물가를 자극하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확대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현 정부는 사실상 무대책이다.
거기에 작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했다는 소식은 한국 경제의 전망을 낭떠러지로 밀고 있다. 해외기관과 언론들은 이 숫자에 경악하며 한국이 사실상 집단자살을 선택했다고 언급하거나, 청년집단이 출산파업으로 한국사회에 저항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모든 조건들 속에서 발버둥 칠수록 빠져드는 부채 수렁 중심에서 시장원리를 무시한 관치금융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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