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며 '왜 추가적인 진상규명이 필요한지' 직접 설명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시민대책회의(시민위)는 28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가협과 시민위 측이 함께 마련한 특별법안을 공개했다.
원내 모든 여야 정당에 제안될 해당 법안엔 그간 사회적 참사 현장에서 배제돼온 '피해자 권리의 보호'와 함께 '독립적 조사기구의 마련'이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이날 이들은 왜 유가족들이 참사 이후 12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는지, 왜 경찰 및 행정부 등의 기존 기관들이 아닌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한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시민위 소속으로 유가족 법률 대리 등의 활동을 이어온 권영국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독립적 조사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진상규명의 추가 과제는 크게 아홉 가지다.
첫 번째 과제는 '왜 어느 기관도 이태원 인파 운집에 따른 안전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가'에 대한 문제다.
권 변호사는 "누구나 (참사 당일) 이태원에 대규모 인파가 운집할 것임을 예상했거나 할 수 있었음에도 대통령실,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경찰, 소방, 서울시, 용산구는 그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에 대해 안전관리계획과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라며 "그 원인과 배경을 밝혀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에선 △2019~2021년에 작성된 경찰 측 핼러윈데이 생활안전대책에는 '인파운집에 따른 안전사고 예방대책 마련' 내용이 포함돼 있던 점 △참사 발생 전인 지난해 10월 27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112 치안종합 상황실장으로부터 핼러윈데이 관련 대책 보고를 받은 점 등이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조사에선 '왜 2022년에는 인파운집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해명이 나오지 않았다. 김 청장은 당시 해당 의문에 '이전의 대책은 코로나 대책이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관련기사 ☞ '이태원' 인파관리 책임 묻자, 서울청장 "마약 예방이 중요했다")
권 변호사는 인파운집 관련 대책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책임기관의 무능 때문인지 △대통령실 용산 이전, 마약 범죄 단속 강조 등에 따른 업무 편중 때문인지 △정권교체 이후의 국정운영 기조 변화 때문인지 등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과제는 '참사 당일 137명의 경력을 이태원 배치했다'고 밝힌 경찰 측 해명에 대한 의혹이다.
참사 직후인 지난해 10월 30일 서울경찰청은 "이태원 일대에 총 137명의 인력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참사 당일 6시 34분을 기점으로 '압사'를 언급하는 112 신고가 반복되고 있을 무렵, 이태원에 배치된 경찰관들이 인파운집에 따른 위험을 보고했다는 기록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시민위 측은 "(현장에 경력이 배치됐다면) 그들이 왜 위험을 알리지 않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발생한다"라며 "그 이유와 원인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과제는 서울경찰청이 참사 당일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주요 이벤트'로 설정하고 있었음에도 상황관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이태원 국조특위의 현장조사 과정에선 서울경찰청이 당년도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경찰 측 주요 이벤트로 규정했음이 확인됐는데, 이에 따라 서울경찰청은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 제18조1항에 따라 인명 및 재산피해의 최소화 및 방지를 위한 업무 수행 활동을 벌였어야 한다는 게 시민위 측의 지적이다.
권 변호사는 이러한 의혹들을 가리켜 "국정조사를 통해 재난관리책임기관들의 부작위들이 참사의 원인임은 밝혀졌으나, 여전히 그 부작위의 원인과 배경, 부작위가 참사에 끼친 영향, 그리고 참사에 대한 책임소재 등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위는 이어 ④압사 사고 발생 후 구조 등 대응과정에서 상황전파와 보고의 지체가 왜 일어났는지 ⑤참사 발생 후 경찰이 소방의 공동대응 요청에 신속하게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⑥정권교체 후 달라진 국정상황실과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의 업무분장 체계가 이태원 참사의 예방과 대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⑦행정안전부장관의 중대본 가동 지연 및 중수본 미설치가 경찰 및 긴급의료지원단의 파견 등 가용인력 동원 및 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한 그로 인한 구조 및 사망에의 영향은 없었는지 ⑧희생자별 사망 시점과 사망 경위, 이송 경로가 구체적으로 어땠는지 ⑨희생자 수습 및 피해자 지원과정에서의 난맥상이나 인권침해는 없었는지 등을 독립적 조사기구가 밝혀야 할 '남은 과제'로 제시했다.
이들이 제시한 아홉 개 과제 중 '⑥정부 내 업무분장 체계'나 '⑦행정안전부장관이 내린 상황판단의 적절성' 등을 묻는 부분의 경우, 특수본이 조사를 포기한 윗선 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필요로 한다. 유가족들이 경찰 및 행정부 등 기존 기관에 얽메이지 않는 독립적 조사기구를 특별법의 핵심으로 꼽는 이유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종철 유가협 대표는 "특수본 수사는 일선 현장 책임자들 중심의 꼬리자르기 수사로 끝났다"라며 "윗선 수사를 포기한 특수본과 다른,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표는 "현재 참사 당시 아이들의 소지품을 마약검사한 장소인 다목적체육관, 병원응급실 등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등의 증거보존을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된 상태"라며 "모든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 특별법의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조속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유족들이 제안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은 참사의 직간접적 원인과 더불어 △책임소재에 대한 규명 △수습, 복구 과정의 적정성 △사건 은폐 시도 △피해자 권리 침해 △재발방지 정책 수립 등을 조사 범위로 설정한다. 유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아홉 개 의혹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범위다.
또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될 독립적 조사기구는 △조사 대상자 및 참고인 조사권한을 가짐은 물론, 그들에 대한 △청문회 출석시의 동행명령 권한 △자료제출 거부 시의 징계권한 등을 가지게 된다. 시민위는 "조사 대상에 행정부 등 상위기관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출석 및 자료제출 거부에 저항할 수 있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가족들은 해당 특별법안을 원내 여야 모든 정당에 제출해 검토 및 발의를 제안하고 "여야 합의를 통해 특별법을 제정해줄 것"을 국회에 요구할 예정이다.
김덕진 시민위 대외협력팀장은 "유가족은 유가족이 제시하는 안을 발표하는 것이고, 실제 법안 발의는 여야합의를 통해 국회에 이뤄질 것"이라며 "이제 공은 국회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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