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 창건 75주년 행사(2. 8)에서 내외의 집중조명을 받은 것은 핵무기도 김정은 위원장도 아닌 그의 딸이다. 김주애(이름, 나이 미확인)로 알려진 인물로 열병식 주석단에 자신의 어머니보다 높은 최고 상석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나란히 군대의 사열을 받았다.
김주애가 모습을 공개한 것은 작년 11월 '화성-17형'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참관한 사진이 <노동신문>에 실리면서부터다. 이날의 시험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는데 여기에 김주애 사진이 등장하기도 했다.
북한의 특성과 관행에 비춰볼 때 최고지도자 딸의 공개도 파격이지만 데뷔 무대가 군부대 전략무기 시험발사 행사라는 데에서 무성한 추측과 해석들이 뒤따랐다. 정작 북한은 이를 통해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일까?
최근 북한의 선전과 홍보는 파격 이미지와 기법으로 효과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작년 3월 할리우드 영화 <탑 건>(Top Gun)이나 뮤직비디오가 연상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항공점퍼에 선글라스를 쓴 김 위원장이 부하를 좌우에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격납고에서 걸어 나오는 영상인데, 핵무장으로 인한 자신감을 표출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이번 건군절 이벤트 연출의 백미는 김 위원장 부부 사이에 앉은 김주애 뒤로 군 수뇌부가 병풍처럼 도열한 장면의 연회 사진이다. 김주애에 포커스를 두고 후계자 문제를 언급한 해석도 있었지만, 김정은 위원장에 포커스를 둔다면 이제는 북한의 미래를 김정은 위원장과 핵무기가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메시지가 핵심일 것이다.
2020년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북한이 처한 난관을 극복하지 못해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던 김 위원장이 이번에는 자기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연출을 했다. 주민들도 자신처럼 안도하길 바라며 만든 파격 이미지인 것이다.
핵무장과 궁극적 과제
북한의 입장에서 핵무장은 목표를 위한 수단이거나 잘해야 중간 과제일 뿐이다. 본격적 과제는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실정이다.
80년대 이후 체제위기와 만성적 경제난을 겪어온 북한에게 한·미동맹의 무력은 감당이 어려운 수준이 되었고, 사회주의 중국마저 미국 주도의 단일 세계시장에 참여한 현실에서 북한도 경제회생을 위해 여기에 발을 들여야 했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안보와 경제 두 문제 모두 미국과의 담판이 절실히 요구되었으며, 강대국 미국과의 협상카드가 궁했던 북한은 핵카드를 만들었다. 협상은 자주 결렬되며 지지부진하였고 '9.19 합의'(2005년)가 파기된 이후부터 북한의 핵무장 완성 선언(2017년) 사이의 10여 년 동안에는 의미 있는 협상 없이 북한의 핵무장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북한은 핵무장 완성선언으로 핵이 더 이상 협상카드가 아니라고 호기를 부렸지만, 해결 기미가 없는 경제난으로 대미 담판이 여전히 절실했다. 한국의 중재로 열린 2018년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비핵화 복귀 가능성을 열어 핵카드를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북한에게는 핵카드 외에 다른 협상카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7년 핵무기는 더 이상 협상용이 아니라고 선언했던 북한이 2018년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를 다시 한 번 협상장에 올려놓았지만 2019년 북·미 정상회담이 또다시 결렬된 이후에 미국은 대북 협상 지속에 흥미를 잃었고 북한도 대미 담판에의 기대를 접게 되었다. 대미 담판으로 경제회생의 활로를 열겠다는 구상도 수포가 되었다.
당시 북한의 낭패감은 외부 관찰자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으며, 자력갱생 노선으로는 경제회생이 어림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김 위원장이 2020년 당 창건 행사에서 눈물을 보였던 배경이다.
신냉전과 농업개혁, 북한의 활로는 어느 쪽에서 찾아질까
그랬던 김 위원장이 올해 군 창건 행사에서 흐뭇한 웃음을 보였다.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전망이라도 선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국제관계 흐름을 '신냉전과 다극화'로 평가하고 이런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강조(22. 12, 당 전원회의)한 것이 주목된다. 신뢰할 수 없는 한국, 미국보다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활로를 열어 보라는 뜻일 것이다.
최근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러시아를 적극 편들고 있다. 유엔의 러시아 규탄결의안에 반대하고(22. 2), 러시아 점령지 내의 도네츠크공화국을 승인하며(22. 7), 전후 복구 참여 희망을 밝혔다.
미국은 러시아를 돕는 나라로 중국, 이란, 북한 3개국을 지목했고(국무부 부장관, 2. 15) 이들은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돕는 문제 외에 각기 다른 문제로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입각한 규칙기반 질서에 위협이 되어 왔다고 규정했다.(국무부 대변인, 2. 15)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 러시아, 북한 사이에 상호 밀착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국제정세 흐름이 신냉전으로 귀결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전문가 사이에 의견이 다양하다. 미국과 중국경제의 상호의존도가 과거 미국과 소련경제와 달라서 신냉전으로 규정될 만큼의 진영대결 구조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아직은 우세하다.
그러나 북한, 중국, 러시아 사이의 밀착관계가 눈에 띄게 진행되면서 부분적이라도 미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경제협력관계가 형성되고 중국 자본과 러시아 자원이 북한 노동력과 결합하는 협력구조를 이룰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신냉전의 흐름을 새로운 활로의 기회로 보고 싶을 것이다.
북한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활로를 찾는데 고심하는 정황은 농업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의 농업은 1980년대 이후 계속해서 북한경제의 최고 골치거리이자 최우선 해결과제로 주력하고 있는 분야이지만 언제나 개선 요구에 비해 개혁은 미흡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포전담당제를 활성화하고 농업관리나 과학영농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영농의욕을 제약하는 집단농장 체제는 김일성 시대 이래 큰 변화가 없었다.
외자도입에 한계가 있는 후진국이 경제발전에 필요한 초기자본을 축적하려면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영농의 비효율을 제거하려면 영농의욕이 고취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농토와 생산물에 대한 농민의 권리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중국경제 성장도 농촌개혁부터 시작했다. 농민이 인민공사 농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고 계약 초과생산물 처분권을 행사하는 농가생산청부제(1980년)가 출발이었다. 이어서 인민공사의 행정기능을 지방정부에 이관해 영농을 간섭하던 기관을 해체하였고(1982년), 농지의 임대계약 기간을 점차 연장하여 궁극적으로 계약기간 중에 자기의 임대권을 매매나 상속할 수 있게 했다.(1984년) 이를 통해 중국은 개혁초기 농업생산성을 6년 만에 두 배나 올릴 수 있었다.
베트남의 도이모이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성공했다. 북한도 이러한 타국의 경험을 이념이 아니라 실용적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신냉전이라고 해도 과거 중·소의 지원을 받으며 블록경제의 안전망 속에 경제를 의탁했던 상황과는 다르다. 신냉전이 북한 경제를 받쳐주는 해결의 열쇠를 제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글로벌경제 정황을 도외시한 기대에 불과하다.
북한은 작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농업문제를 비중 있게 논의했지만, 불과 두 달 만에 농업 문제만 논의하는 당 전원회의(2월말)를 또 개최한다.
신냉전 구도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북한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의 요행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농업개혁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내부 변수에 기초한 보다 확실한 방식이다. 북한이 어떠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으로 기대했던 성과를 어떻게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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