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는 지난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하고, 3학점 교양 필수과목으로 '세계와 시민'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와 시민'은 매 학기 2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100개의 강좌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주제로 선정해 한 학기 동안 해당 주제를 토론하고 이를 연구해 동료에게 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학생 주도의 공동 프로젝트(Global Citizen Project, GCP)를 수행한다. 수업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성소수자 문제, 동물권, 플랫폼노동, 기후변화 등 오늘날 언론에서도 뜨겁게 다뤄지는 이슈들이다. 해당 주제들을 다루면서 학생들은 글로컬 차원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시민적 삶의 존재 조건을 이해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삶의 자세를 다진다. 청년으로서 첫 걸음을 떼는 학생이 수업의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기록하는 수업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지난해에 진행한 '세계와 시민' 수업 프로젝트 중 10개를 추려 수강생이 직접 작성한 원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작년 8월 집중호우로 인한 강남 일대 침수를 기억하는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우, 폭설, 이상한파, 이상고온 등의 이상기후와 자연재해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현실이 됐다. 이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을 기후행동이라 일컫는다. 기후행동에 있어 가장 시급한 일은 탄소중립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탄소중립은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 및 제거해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net zero) 수준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탄소중립이 중요한 이유는 지구온난화 및 기후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온실가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탄소중립의 아이디어는 간단하지만, 실현이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은 2020년에 2050탄소중립 전략을 발표하며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40%로 감축하고, 2050년에는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배출량이 많고, 지금 당장 감축이 가능한 분야부터 줄여나가면서 감축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분야의 감축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탄소배출 현황을 살펴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출원은 기업 활동과 에너지발전(전력발전)이다. 기업 활동에 의한 탄소배출 역시 큰 사회적 문제이나, 다양한 산업군에서 다양한 메커니즘으로 발생하는 탄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최적화된 제도와 공정상 신기술 도출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대학생 신분에서 다루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에너지발전(전력발전) 분야에서는 감축 여력이 있지만, 정책 및 관련 이해관계 문제로 인해 감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한국의 전체 탄소배출량에 있어서 석탄 화력발전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전히 한국의 화력발전 비중은 탄소중립을 선언한 타 국가(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다. 탄소중립을 선언한 국가가 왜 아직도 높은 화력발전 비중을 유지하는지, 탈석탄을 위한 로드맵은 왜 명확히 안내되어 있지 않은지 납득되지 않았다. 관련한 이해관계와 정책들을 살펴보며 탈원전과 관련된 정치적 논쟁 등에 의해 정작 가장 중요한 탈석탄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고, 사회적 논의를 발생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탈석탄과 관련된 여러 논의 중에서도 금융권의 탈석탄에 주목했다. 이유는 석탄 화력발전소 신규건설이 중단되지 않는데 생각보다 금융권의 투자와 자금공급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국가 정책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국민연금공단의 역할과 책임이 막대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우리는 탈석탄 문제에 대응하는 구체적 행동 목표로 국민연금공단을 중심으로 한 금융권 탈석탄 촉구를 삼았다.
사실 앞서 목표 설정 과정과 그 맥락을 간략하게 이야기했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바로 해결하고자 하는 큰 목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의 행동으로 목표를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조원 모두 평소 기후행동에 관심이 컸지만, 한 학기라는 시간 제약을 고려하며 각자의 학업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의 구체적인 행동 방안을 구상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일의 어려움은 추상적인 생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후행동이라는 큰 주제로부터 범위를 좁히고 좁혀 대학생, 더 나아가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장 오랜 시간 팀원들과 나누었다. 또한 그냥 주제를 세분화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문제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야 했기 때문에 올바른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세우는데 가장 큰 노력을 들였다.
국내 최대규모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와의 인터뷰는 올바른 목표 설정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당시 우리는 인터넷 자료조사만을 통해 세운 우리의 계획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향할지, 초점을 두고 있는 문제가 정말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인지에 대해 고민이 컸던 상황이었다. 이에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민사회에 우리 계획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석탄을 넘어서에 인터뷰 요청을 드렸다. 석탄을 넘어서 측은 감사하게도 흔쾌히 요청에 응해주셨다.
인터뷰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금융권 탈석탄' 개념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사실 인터뷰 이전의 계획에는 자본과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었다. 정부에 대한 명확한 탈석탄 로드맵 수립 요구,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 등 정책적 요구사항들이 주를 이루었었는데, 이 인터뷰를 기점으로 발전소 건설 시 자금조달 역할을 맡는 금융권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금융사들이 있지만, 공적 책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의 명확한 탈석탄 신호가 한국 금융권 전체 탈석탄의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이 인터뷰를 통해 행동 목표를 더욱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수립할 수 있었다.
석탄을 넘어서와의 인터뷰와 그로 인한 목표 재설정 경험은 문제 해결 노력과 목표 설정에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한 경험이었기에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
이러한 프로젝트 과정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역시 때론 올바른 문제의식을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제해결 과정에 있어 열심히 달려가는 것만큼이나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사실은 사회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목표를 위해 죽도록 달리는 것만큼이나 무용한 것은 없으니 목표설정이 중요하다는 교훈이 이 수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조원들 모두 공감하는 가장 아쉬운 점은 더 많은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점, 탄원서나 기고문 등에 대해 유의미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해관계자 모두의 입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공단뿐 아니라 사적 금융사, 건설사, 지자체, 시민사회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국민연금공단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지역언론사에 기고문 등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기대한 유의미한 답변이나 후속활동 등을 전개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조원 전원이 고학년이고 시간적 여유가 없음에도 치열하게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기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기대해조: 경희대 학생 김우현, 김영준, 박예은, 이진우, 이찬우, 이유진 / 기사작성: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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