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우리나라가 대한제국 시절부터 기록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역대 5번째로 춥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이상 기후'가 더이상 '이상' 수준에 그치지 않는 현상은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 여름엔 폭우, 올 겨울엔 강추위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비교적 탄력성이 좋아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변화를 가장 마지막에 느끼게 될 지역에 속한다. '기후 변화'가 '기후 재앙'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은 세계 각국으로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확인된다. 최근 미국에서 혹한과 눈보라가 동반된 '폭탄 사이클론'으로 8개주에서 최소 60명이 사망했다. 반면 새해 첫날 눈으로 유명한 알프스는 낮 최고 기온이 20도까지 치솟아 스키장이 문을 닫았다. 지난 여름은 파키스탄은 홍수가 발생해 17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는 프레시안과 2023년 신년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올 것"이라며 "향후 20~30년 제일 중요한 문제가 식량위기"라고 전망했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인간의 '욕망'에 기반한 시스템의 전환과 관련된 문제인데 현재 한국 사회가 이를 직시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 당시 기후위기를 "사기"라고 주징하면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했던 것처럼 현재를 부정하고 철 지난 경제 성장 신화에 집착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크게 우려를 표명했다. 조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전환의 시대', '변화의 시대'라고 하는 시대 인식 자체가 없다"며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신화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던 과거의 성공에만 집착한 채 샴페인에 취해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개인 텀블러 사용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시민 한명 한명의 각성과 실천도 매우 중요하지만 "기후위기 문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착한 소비자 운동만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어디에다 원자력이나 석탄 발전소 하나 짓는다고 하면 개인은 또다시 무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며 "욕망의 판도가 바뀌고 있는 대전환의 시기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기후위기 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선출하고 이를 요구하는 시민들간의 연대"가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 등 몰려오는 "복합적인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제언이다.
다음은 조 교수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탄력성 좋은 한반도, 기후변화는 마지막에 찾아올 것"
프레시안 : 겨울 추위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일찍부터 추위가 찾아온 느낌이다. 이 역시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나?
조천호 : 우선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한파가 기후변화 때문이냐?'가 아니라 '지구가 가열되고 있는데도 한파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지구 온도가 상승하고 있다', '지구가 가열되고 있다'고 표현하지만, 지구 전체의 온도가 똑같이 올라가는 게 아니다. 바다와 육지 간, 적도를 중심으로 위쪽과 아래쪽 온도 차이가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패턴이 드러나는 것이다.
한반도의 한파 역시 지구가 가열되면서 일어난 불균형으로 시스템이 무너진 결과다. 북극의 제트기류는 공기를 가두어두는 효과가 있는데, 이 효과가 약화하면서 한반도까지 찬 공기가 내려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공기 입장에서는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뜬금없이 생각지도 않았던 충격을 계속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진자운동의 진폭이 커졌다. 충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변동성이 커지게 되고,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진폭이 커지면서 홍수‧가뭄‧폭염‧한파 등 예전의 경험치와는 다른 극단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인간이 지구의 온도를 단 1도(℃) 올렸다. 달리 보면, 1도밖에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변화는 198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변동의 폭이 커진 만큼 극단도 빠르게 증폭하고 있다.
프레시안 : 변동의 폭이 커진 만큼 이상기온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인데, 한반도 역시 지난 여름 유례없는 폭우를 경험했다.
조천호 : 여름은 30도가 넘게 올라가고 겨울은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한반도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는 자연적인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신호를 잡아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적인 변동 폭이 크다는 것은, 탄성력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 같은 서부지역, 호주와 남유럽 등 기온이 항상 일정한 곳 또는 늘 여름인 열대지방처럼 자연적인 변동 폭이 작은 곳에서는 기후변화의 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폭우도 산불도 몇 달씩 이어지지 않나. 자연적인 변동 폭이 작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내가 어렸을 때 경험한 기후가 아니야' '세상에 이런 기후가 있을 수가 있나?' 정도의 변화가 느껴진다면 지구는 멸망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한반도는 탄성력이 좋은 지역이기 때문에 우리가 체감하게 되는 기후변화는 제일 마지막에, 즉 제일 늦게 느끼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올 것"
프레시안 : 한반도는 탄력성이 좋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변화의 신호 없이 정말 큰 재앙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해석해도 되나?
조천호 : 한반도라는 지역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하면,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적인 날씨로 우리나라가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지금도 폭우로 어디가 무너졌다고 해도 일주일 정도면 거의 회복하지 않나.
위험이 없는 세상은 없다. 위험은 늘 발생한다. 다만 회복 가능한, 즉 '허용 가능한 위험이냐? 아니냐?'의 문제다. '통제 가능한 위험인가'의 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위험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안 된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어떤 형태로 올 것인가. 식량위기로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프레시안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위기‧식량위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식량안보'라는 말도 나왔다.
조천호 : 식량위기 문제는 전 세계 인구 증가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식량 생산 감소라는 두 가지 상황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지만, 전문가들은 30년 후 20억 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30년 내에 20억 명을 더 먹여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 셈인데, 현 시스템인 자본주의는 인간의 먹는 욕망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놨다. 늘어난 인구수에 먹는 욕망까지 충족시키려면, 지금 곡물 생산량의 60% 이상을 늘려야 한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50년 지구의 온도는 1도 이상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곡물 생산은 10%가량 줄어들 것이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줄어든다? 전쟁에 따른 일시적 위기가 아닌 상당 기간 지속될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안정적인 식량공급망을 갖출 수 있을까?
지금부터 식량위기에 대한 준비를 진지하게 해나가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식량의 위기로부터 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향후 20~30년 제일 중요한 문제가 바로 식량위기다.
프레시안 : 언급한대로, 우리나라는 인구증가가 아닌 인구감소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조천호 : 그렇다. 인구감소‧인구절벽은 단순히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바뀌는 문제다. 젊은 사람들이 부양해야 하는 노인이 증가한다는 것이고, 이는 사회에 굉장한 위험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향후 30년 지구적 차원에서는 인구가 늘어나는 문제지만, 우리는 인구절벽 상황이기 때문에 보다 복합적인 위기가 밀려올 수 있다. 과연 우리나라가 지혜롭게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그런데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특히 정치가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위기를 위기로 인식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 근본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 정말 진지한 고민 끝에 이 30년을 잘 넘기면, 다음 세대들이 또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
"윤석열 정부, 기후위기에 대한 생각 없다"
프레시안 : 3년 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기후 정책도 미흡하다며 쓴소리를 했는데, 윤석열 정부의 기후 정책은 오히려 더 퇴행한 것 같다.(☞ 관련 기사 : "미세먼지가 불량배라면, 기후변화는 핵폭탄")
조천호 :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과학적 근거도 없"다며, 30.2%였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1.6%로 낮추고 23.9%였던 원전 비중을 32.4%로 높였다.
현재 유럽연합(EU)은 40%였던 기존 목표를 55%로 상향했다. 이게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춘 것만 봐도 에너지의 판이 바뀌고 있다는, 새로운 산업이 재구성 되고 있다는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기준으로 볼 때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한 에너지가 핵과 석탄 발전을 이용한 에너지보다 가격이 더 내려갔다. 앞으로는 핵과 석탄 발전 에너지 가격이 절대적으로 싸지 않다. 오히려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비싼 에너지가 될 것이다. 지금 에너지 시장은 하나의 전환기에 와 있으며, 이를 통한 새로운 판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재구성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과거 '잘 살아보세'를 외쳤던, 욕망의 시스템이 아주 극단화된 정치 조직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전환의 시대' '변화의 시대'라고 하는 시대 인식 자체가 없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신화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던 과거의 성공에만 집착한 채 샴페인에 취해 있다.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보면, '기후'는 한 번 등장한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후'를 14번이나 언급했다.
조찬호 :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기회가 될 때마자 원전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며 원전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국제무대에서는, 원전과 관련해 한 마디도 안 한다. 유엔에서도 기후 변화와 관련해 "개발도상국의 저탄소 에너지 전환을 도울 것"이라는 평범한 내용만 언급했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한 나경원 전 의원도 "지난 정부에서 설정한 온실가스 40%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비과학적으로 너무 많이 줄였으니 산업계의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해놓고, 해외에 나가서는 '국제적으로 약속된 목표를 철저히 지키겠다'고 하고 있다. 기후 정책과 관련해 아무 생각 없다는 얘기다. 조금이라도 진지하면 말의 앞뒤가 이렇게 다를 수 없다.
"기후위기 극복 방법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한 연대"
프레시안 : 우리 정부나 정치권이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을 전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시민의 입장에서 어떤 요구를 해야 할까?
조천호 : 일회용품을 안 쓰고 텀블러를 갖고 다닌다거나 개인 차량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등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이런 귀중한 마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기후위기 문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착한 소비자 운동만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어디에다 원자력이나 석탄 발전소 하나 짓는다고 하면 개인은 또다시 무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지 않나.
결국 주체적인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법을 만들 수 있는 국회의원들을 뽑아야 한다. 여기에 기후위기 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할 수 있는 시장-도지사-대통령 등 선출직 공무원 역시 책임을 갖고 뽑아야 한다. 시민들 간의 이런 연대성. 저는 이런 연대만이 오늘날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지금 우리 현실은 기후위기를 생각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 욕망의 시스템이 극단화된 정치 조직이 집권하고 있지만, 이들이 새로운 세계에 관심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욕망의 판도가 바뀌고 있는 대전환의 시기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고 싶다.
프레시안 : 기후변화로 인한 슬픔, 일명 '기후 우울증'을 호소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조천호 : 젊은 세대들은 기후변화가 아닌 기존의 시스템만으로도 충분히 우울하다. 연애‧결혼‧출산 등 포기하는 것이 갈수록 늘고 있지 않나.
현재 시스템으로는 계급‧노동 문제와 성차별‧성소수자 문제 같은 사회적 충돌을 해결하는 데 한계에 부딪혔다고 본다.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하나 통과 안 되는, 이런 기막힌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기후변화‧기후위기는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와 같은 근본을 고민하게 한다. 자연 앞에 타협의 여지는 없다.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위기를 위기라고 제대로 인식한다면, 오히려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