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는 지난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하고, 3학점 교양 필수과목으로 '세계와 시민'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와 시민'은 매 학기 2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100개의 강좌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주제로 선정해 한 학기 동안 해당 주제를 토론하고 이를 연구해 동료에게 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학생 주도의 공동 프로젝트(Global Citizen Project, GCP)를 수행한다. 수업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성소수자 문제, 동물권, 플랫폼노동, 기후변화 등 오늘날 언론에서도 뜨겁게 다뤄지는 이슈들이다. 해당 주제들을 다루면서 학생들은 글로컬 차원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시민적 삶의 존재 조건을 이해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삶의 자세를 다진다. 청년으로서 첫 걸음을 떼는 학생이 수업의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기록하는 수업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지난해에 진행한 '세계와 시민' 수업 프로젝트 중 10개를 추려 수강생이 직접 작성한 원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는 22년도 1학기 세계와 시민 수업을 들을 당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전쟁이 발발한 원인이나 세계 각국의 반응 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조원들도 해당 이슈에 큰 관심이 있어서 GCP 보고서의 주제로 선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전쟁 그 자체보다는 조금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다.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찬반 논란이 일어나는 난민 관련 문제이다.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의 각 나라들은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했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난민을 대하던 유럽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는데, 과거에는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등의 난민 수용을 거부하던 일부 나라들이 우크라이나 난민은 문제없이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민 수용의 문제가 인종 차별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에 우리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인종에 따른 난민 차별 문제와 해결 방안'을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각 파트를 조원들끼리 분담해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우선 과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일어난 원인과 그 지역의 역사, 돈바스 전쟁 등을 공부하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대략적인 현황과 함께 정리하였다. 그리고 난민 현황 파트를 작성하던 중 한국의 난민 인식을 조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에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설문조사에 응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종에 따른 난민 차별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에 중동 난민을 수용하는 데는 절반 이상이 반대한 반면 유럽 난민 수용은 60% 이상 찬성했다는 점이다. 이 결과를 보고 난민 관련 문제가 막상 우리 일로 다가오면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해결 방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난민 수용에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으로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는 부분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주제를 이야기 할 때에는 단순히 '인종 차별을 하지 말자'라는 막연한 주장을 하기보단 어째서 인종 차별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특정 종교계 난민을 향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적이 있다. 2016년 독일에서 발생한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슬람계 외국인의 범죄 공포를 가중시켰다. 한국에서는 대규모의 예멘 난민들이 유입된 2018년 제주 난민 사태 당시 이슬람계 난민을 향한 부정적 인식이 컸다.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인한 사회의 혼란을 우려했다. 그렇기에 종교계 난민에 대한 시선이 달갑지 않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했다. 과거 여러 사건들로 인한 두려움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데다 다른 문화권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사건에 관련된 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일반화하고 배척하는 차별적인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종교와 문화의 차이는 인간 사회의 기본이 되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면에서 종교계 난민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면 난민 문제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인종에 따른 난민 차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제시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에서 장기간 큰 이슈였다. 당장 우리의 지인 중에도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차별금지법의 의도 자체는 좋으나 표현의 자유 침해와 차별의 범위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교착 상태에 빠진 듯하다. 제정의 현실적인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볼 수 없다. 현재 프랑스와 독일,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이미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이미 한국에서도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크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도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대답한 비율이 67.2%에 달했다고 한다. 반대하는 입장보다는 찬성하는 입장이 우세한 상황이다. 차별금지법이 본래 의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게끔 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이 시행 중인 차별금지법의 세부 항목을 참고하여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법안을 수정하고, 차별 범위에 대해 많은 토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 가능성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노력의 과정 속에서 차별 문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심각성이 인식된다면 그 자체로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아쉬웠던 점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한국의 난민을 만나보거나 난민 관련 단체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활동을 했다면 난민 이슈에 대한 더 심층적인 이야기와 의견들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진행하지 못해 가장 후회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난민 수용에 대한 찬성도, 반대도 아닌 '무관심'의 상태에서 빠져나와 적극적으로 토의하려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또 난민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 인식이 변화하는 것을 넘어서 인종에 따른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는 데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겼다.
안타깝지만 아직도 상당수 사람들은 난민 수용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난민 문제가 우리의 생활과 멀찍이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북한의 상황이나, 현재 기후 변화로 인한 난민만 봐도 한국도 난민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 찬성이든 반대이든 진지한 토론을 거치고, 이를 통해서 더 나은 해결 방안을 도출해 난민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같은 지구 속에서 살아가는 세계 시민으로써, 인종과 관련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첫 번째 발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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