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3.8 전당대회 구도가 친윤계와 범친윤계 간, 사실상 '김기현 대 나경원-안철수'의 대립 구도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존에는 친윤 주자로 꼽히기도 했던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 1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및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을 당하며 대통령실·친윤계와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고, 이런 가운데 지난 대선 당시 당에 수혈된 범친윤계 주자 안철수 의원이 나 전 의원에게 손을 내미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다.
나경원, 친윤계 겨냥 "제2의 '진박 감별사'로 총선 이기겠나"
현재 전당대회 국면의 핵인 나 전 의원은 15일 출마 여부에 대해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전 국회의원 지역구인 서울 동작구에서 성당 미사에 참석했으나, 취재진의 질문에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좀더 당원과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었다. 나 전 의원은 대통령실의 '해임' 발표(☞관련 기사 : 尹대통령, 나경원 저출산위·기후대사직 둘다 ‘해임’…羅, 굴복이냐 도전이냐?)가 나왔던 당일 저녁 페이스북에 "대통령님의 뜻을 존중한다. 어느 자리에 있든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나 전 의원은 다만 친윤계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비판을 쏟아냈다. 서면 사직서 제출 당일인 지난 13일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포문을 열었던 데 이어, 이날은 "제2의 진박감별사"라는 날선 비난까지 나왔다. 나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제2의 '진박 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과연 총선을 이기고 윤석열 정부를 지킬 수 있겠느냐"면서 "2016년의 악몽이 떠오른다. 우리 당이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직격했다.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통해 '진박 공천', '비박 학살 공천'을 했던 과거사를 언급한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앞서 친윤계에서 자신에 대해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을 원했다', '공직을 놓고 대통령과 거래하려 한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낸 데 대해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아침 대통령실 소속 누군가가 제 집 앞을 찾아와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으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했다"고 반박하며 "혹자는 '거래', '자기 정치' 운운한다. 그들 수준에서나 나올 법한 발상"이라고 했다.
사직서 제출의 발단이 된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놓고 대통령실 및 총리·장관 등과 빚은 갈등에 대해서는 "제가 해외 정책 사례를 소개한 것을 두고 정면으로 비난하고 '포퓰리즘'이라는 허황된 프레임을 씌워 공격했다. 더 이상 제대로 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저는 사의를 표명했다"고 했다.
친윤계, 나경원에 거세진 태클…"제2의 유승민", “羅홀로 집에”
이같은 나 전 의원의 '반격'은 대부분 친윤계 핵심인 '윤핵관' 장제원 의원의 공격에 대한 것이었다. 장 의원은 대통령실의 해임 발표 당일 나 전 의원을 겨냥해 "친윤을 위장한 비겁한 반윤",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 "공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라고 맹비난했었다.
장 의원은 토요일인 14일에는 "아무리 당신, 당신, 하면서 대통령과 대통령 참모를 갈라치기 해도 나 전 의원이 공직을 자기 정치에 이용한 행태는 대통령을 기만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으로 대통령과 거래를 시도했던 패륜", "고민이 길어진다는 둥 천천히 사색의 시간을 가져본다는 둥 간보기 정치가 민망해 보일 따름"이라고 노골적 비난을 이어갔다.
일요일인 이날도 장 의원은 나 전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겨냥해 "저는 ‘제2 진박감별사’ 결코 될 생각이 없으니 나 전 의원도 ‘제2 유승민’이 되지 말길 바란다"며 "대한민국이라는 팀이 지든 말든, 윤 대통령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든지 없든지 간에 '꼭 내가 당 대표가 되어서 골을 넣어야겠다', '스타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필요없다"고 했다.
친윤계 박수영 의원도 '羅(나) 홀로 집에' 등 SNS에 나 전 의원을 조롱하는 듯한 게시물을 올리는 등, 당내 주류인 친윤계는 일제히 나 전 의원에게서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안철수 "특정인 향한 위험한 백태클"
이런 가운데 범친윤계 주자인 안철수 의원이 나 전 의원을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안 의원은 이날 "당의 분열을 막고 모두 '원팀'이 되는 전당대회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누구나 참여하는 아름다운 경쟁이 아니라 특정인을 향한 위험한 백태클이 난무한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안 의원은 "전당대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당에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분열을 남길 수 있다"면서 이같이 비판했다. 표면적으로는 당의 갈등 심화 양상을 걱정한 것이지만, 현 국면에서는 사실상 나 전 의원에 대해 일제공격을 퍼붓고 있는 친윤계를 향한 견제라는 의미가 더 크다.
안 의원은 또 "이미 룰은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당대회 규칙 변경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전당대회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 국민이 외면하는 전당대회가 되면 안 된다"면서 "당의 중요한 자산을 배척하는 전당대회가 되면 안 된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유승민·나경원 등 친윤계가 '배척'하려 하는 이들을 "당의 중요한 자산"으로 표현한 것이다.
안 의원이 "공천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전당대회가 되면 안 된다"고 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안 의원은 앞서도 "김장연대에 영남 의원들이 많이 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천과 연결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장연대는) 공천연대"라며 "이게 공포정치"라고 하기도 했었다. 나 전 의원이 내놓은 '진박 감별사'라는 비판과 일맥상통한다. 안 의원은 이날 서울 양천갑 당협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진박 감별사 비슷한 행태가 이번 선거에 재현되는 것은 우리가 망하는 길"이라며 "지난번에 그것 때문에 이길 뻔한 선거를 졌지 않나"고 하기도 했다.
앞서 또다른 범친윤계 주자인 윤상현 의원이 당권 구도와 관련해 '수도권 대 영남'이라는 전선을 제시하면서 가능성이 거론돼 왔던 이른바 '수도권 연대'가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나경원·안철수·윤상현 세 주자가 사실상 '반(反)김기현 연대'로 뭉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상 '친윤계 단일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김기현 의원은 한껏 기세를 올리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 14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의힘 지지층 대상 차기 당 대표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복심인 장제원 의원과의 이른바 '김장연대'가 윤 대통령 지지 성향인 유권자들에게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전날 경북 구미를 찾아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고 선거캠프 출정식을 연 데 이어, 15일 저녁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막걸리 회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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