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석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상처난 마음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보단 아픈 상처부위를 건드리고 헤집기 일쑤다. 일부에서는 "놀러 가서 그렇게 된 일을 왜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느냐"고 그만하라고 이들의 등을 떠민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길거리, 국회, 대통령실을 부유한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떻게, 언제,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알고 싶다는 이유가 이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1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8명, 생존자 2명, 지역상인 1명은 국회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 참석해 참사에 대해 증언했다.이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구구절절했다.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발언 전문을 싣는다. 이들이 겪는 슬픔, 그리고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취지다. 아래 고 조경철 씨 동생 조경선 씨의 이야기 전문.
※기사를 보기 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진술서 전문은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현장과 참사 경험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7남매입니다. 형제가 많아 항상 집이 시끌벅적했고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 싸움도 많았지만 취미가 비슷해 서로 항상 즐거웠습니다.
오빠는 참사 당일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에 가게 된 것 같습니다. 오빠와 친구들이 밥을 먹기 위해 자리를 이동하던 중 인파에 떠밀려 헤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11시 24분경 엄마에게 오빠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모르는 사람이었고 오빠가 이태원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오빠 친구와 오빠 친구의 어머니가 새벽 4~5시까지 오빠를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실종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빠를 찾으면서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오빠 휴대폰에 위치추적을 위해 119에 전화를 하면 다산콜센터로 전화 하라고 하고 다산콜센터에서는 정보가 없다며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억울한 게 오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휴대폰과 신분증을 소지 하고 있었는데 왜 아무도 신원을 확인하지 않은 건지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참사 다음 날 11시가 넘어서 오빠가 성남중앙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왜 그 먼 곳까지 오빠가 갔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성남중앙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서 안치실에 있는 오빠를 확인했고, 엄마는 오열하면서 오빠를 만지려 하자 경찰이 손대지 말라고 제지하며...
결국 우리는 오빠를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했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오빠의 몸을 살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뺏겼습니다.
참사 이후 한 달이 되어갈 때쯤 저는 오빠의 행적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11월 28일 정보공개신청을 통해 구급일지를 요청하였습니다.
다음 날 11월 29일 서울소방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현재 많은 분이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있고, 그날 다수의 환자가 나오다 보니 신원 조회를 할 수 없었고 소지품도 다른 쪽으로 흩어져 있어 그 사람의 것인지 알 수 없어 미상처리를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청에서는 인적사항을 확보했으나 소방청에 공유되지가 않아 매칭 작업을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왜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매칭 작업을 하지 않은 건지 물었고 명단을 어디에 언제 요청을 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소방청에서는 서울특별시 자치경찰위원회 자치경찰총괄과에 유선상으로 전화를 했고 유선상으로는 일주일 전, 문서상으로는 결재 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10월 29일 그 참사가 벌어지고 한 달이 지났는데 왜 명단 요청을 일주일 전에 한 건 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저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후 12월 12일 의정부소방서 재난대응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구급일지에 대해서 서류를 지참해서 보내 주면 구급일지를 바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고 저는 바로 서류들을 준비해서 보냈습니다.
결국 저는 정보공개 청구를 28일날 신청하여 2주가 넘어간 16일이 되어서야 어렵게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받은 구급일지도 이태원에서 이동한 구급일지가 아닌 순천향병원에서 성남중앙병원으로 이동할 때의 구급일지였고 내용은 정말 터무니없이 기재되어 있는 게 없었습니다.
또한 충격적인 건 신고 시간이 23시 27분으로 적혀있었는데 출동 시간은 23시 37분으로 신고를 받은 지 10분이 지나서야 출동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제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간 간격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빠가 사고가 있었던 시점부터 순천향병원까지 기록을 찾기 위해 다시 한번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답변은 연번 기록이 분실되어 신원 확인이 안 돼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구급차에 블랙박스도 이미 없어졌다고 합니다.
오빠가 어떤 사고를 당한 건지, 어떤 응급조치를 받은 건지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
12월 2일 오빠의 행적을 알아보던 중 경찰에게 행적이나 상태에 대해 들었다는 분의 말씀을 듣고 성남중앙병원 담당 형사께 전화를 드려 우리 오빠에 대한 기록을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기록을 말하는 거냐며 제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말만 여러 번 반복하며 저와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수사권은 용산경찰서에서 있고 본인은 수사권이 없다며 사건이 종결되고 난 후 수사기록이 넘어오면 그때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오빠의 사소한 기록이라도 좋으니 알려달라고 재차 요구했으나 무슨 기록을 말하냐는 둥 이해가 안 된다는 둥 화내며 자기가 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하며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을 걸쳐 몇 번의 전화를 계속 하던 중 12월 5일, 기록을 보고 싶으며 정보공개청구를 하라고 하면서 청구하면 기록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경찰청, 용산경찰서, 성남중앙경찰서,국과수에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12일 정보공개 요청 결과를 통지 받았습니다. 청구 처리는 비공개. 수사 중인 사건의 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유였습니다.
그날 17시 16분 용산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빠의 기록은 용산경찰서가 처리하지 않았으니 성남중앙경찰서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저는 성남중앙경찰서에서는 용산경찰서에서 문의하라고 답변을 받았다고 하니 알아본다고 하셨고 18시 5분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사건 서류는 성남중앙경찰서에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황당하고 말문이 막히는 상황에 정보공개청구에 기재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왜 안 보여주는지 항의를 했습니다. 담당자는 비공개 처리 사유만 반복적으로 말하며 성남중앙경찰서에서는수사를 안 하고 있으며 용산경찰서 특수본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용산서에서는 성남중앙경찰서에서 수사를 했다고 하고 성남중앙경찰서에서는 용산 경찰서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이런 어이없는 떠넘기기 상황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 오빠는 그때도 지금도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후 정보공개 청구 비공개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하자 다음날 성남중앙경찰서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담당자는 경찰서에 날을 잡고 방문하면 기록을 열람하게 해주겠다며 대신 이의신청을 취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후 3~4번 더 전화가 왔습니다. 이의신청 취하 요청을 계속 요구하였고 저는 이의신청을 취하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찰은 국민을 보호하라고 있는 거지 국민을 등지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행적을 쫓던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경찰의 행정 처리와 부실 수사, 수사 방식에 정말 치가 떨림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우리 오빠의 행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아무도 우리 오빠에 대해 수사해 주는 이가 현재까지도 없습니다.
그리고 2차 가해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제일 큰 2차 가해는 뒤에서는 아무것도 도와주고 있지 않으면서 앞에서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언론플레이하는 정부와 공무원, 몇몇 비윤리적인 의원들의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간질입니다.
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이간질로 인해 저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국민을 위해야 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을 잘 모르는 국민들을 상대로 유가족들이 진짜 원하는 부분이 왜곡되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2차 가해 댓글과 상황에 대한 1차적인 원인은 정부와 공공기관, 비양심적인 의원들의 이간질로 인해 일어난 일입니다. 그 상처로 저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을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SNS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못 만나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정상적인 일상을 하려고 노력해도 항상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고통은 결국 정부가 책임을 다하여 해결해야지 끝나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0월 29일부터 두 달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시간조차도 저에게는 트라우마이자 2차 가해입니다.
처음부터 국가가 투명하고 성숙하게 대처해 줬다면 저희 오빠가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어떤 응급조치를 받았는지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알려주었다면 저는 여기 있을 일도, 유가족협의회를 구성할 일도 전혀 없었을 텐데...
성숙하지 못한 정부와 공무원, 공공기관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이간질이나 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지금, 저는 여전히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상처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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