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석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상처난 마음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보단 아픈 상처부위를 건드리고 헤집기 일쑤다. 일부에서는 "놀러 가서 그렇게 된 일을 왜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느냐"고 그만하라고 이들의 등을 떠민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길거리, 국회, 대통령실을 부유한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떻게, 언제,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알고 싶다는 이유가 이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1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8명, 생존자 2명, 지역상인 1명은 국회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 참석해 참사에 대해 증언했다.이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구구절절했다.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발언 전문을 싣는다. 이들이 겪는 슬픔, 그리고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취지다. 아래는 참사 희생자 고 서형주 씨 누나 서이현 씨 발언 전문.
※기사를 보기 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진술서 전문은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현장과 참사 경험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서형주 누나 서이현입니다.
먼저 참사 직후 우리 가족이 형제를 찾으며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0월 30일 새벽 1시경 이태원에 간 형주와 연락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112,119에 실종신고 후 위치추적을 요청하여 이태원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후 이태원에 바로 갔으나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고 순천향병원으로 가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병원에 가봤지만 그곳에서도 현지의 신원과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원효로 체육관으로 시신들을 이송했다는 소식을 듣고 체육관을 가려 했으나 곧 다시 변경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태원에 있던 형주의 핸드폰이 경찰서로 이동된 것을 확인하고 용산경찰서로 갔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현재 출입할 수 없고 핸드폰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여 경찰에게 총괄 컨트롤하는 본부가 어디 있냐라고 물어봤으나 현재 그런 곳은 없고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실종신고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민센터 3층에서 다시 실종신고를 하였고 지하에 가족대기실이 있다고 하여 그곳에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서 몇 차례 공무원에게 진행 상황을 물어봤었고 개별 연락이 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부상자 및 사망자 명단이 뉴스로 나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뉴스에는 같은 내용만 나올 뿐이었고 한남동 주민센터에서도 부상자, 사망자 신원 확인 및 이송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가족들에게 전혀 설명이 없었습니다.
명단 발표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지금 신원 확인, 이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유가족에게 브리핑이라도 해 줬다면, 동생 소식을 알게 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막막하고 피 마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전 11시 3층에 다시 올라가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달라고 항의하였더니 직원이 이름을 물어봤고 검색해 보더니 서 형주는 일산동국대병원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까지도 동생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하고 주민센터 직원에게 명단에 부상 정도가 나오는지 물어봤고 부상 정도는 나오지 않는다 하여 병원 이름만 몇 차례 확인 후 병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 중에 형주가 그곳에 있는지 확인했으나 이태원에서 온 환자가 없다며 장례식장으로 연결해줬고, 장례식장에서도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병원을 잘못 알았다고 생각하여 다시 주민센터로 돌아가 확인해보니 이름과 병원 이름만 나올 뿐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으로 전화를 다시 하니 시신 몇 구가 와 있지만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아 형주를 확인할 수 없었고 직접 얼굴을 보여 줄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그것도 안된다고 하여 다시 주민센터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오후 1시경 형주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가족에게 개별 연락을 해 준다고 하였으나 우리 가족은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연락은 없었습니다.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동생을 찾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생이 어떻게 일산동국대병원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소방서에 구급 일지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방서에는 당시 의식이 없었거나 사망한 사람들은 신원 확인이 안 돼서 구급일지가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 이동경로는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동생은 임시건물에 안치해 있다가 새벽 2~3시 사이에 원효로 체육관으로 이송되었고 6시 50분쯤 일산동국대 장례식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당시에 신원미상자 18번으로 분류되어 있었다는데 후에 신원 확인이 되었어도 신원미상자로 구급일지가 없다는 점이 너무 답답합니다.
제 동생은 동행인이 없어서 언제 사망하였는지 이 점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시체검안서를 받고 제일 먼저 시간을 확인했고 10시 15분 이전 추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검안서를 받고 그 시간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가족 모임에서 만난 한 희생자의 어머님께서 따님의 사망 시간은 제 동생과 똑같은 10시 15분 이전 추정인데 따님은 11시 30분까지 맥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안서에 적힌 시간이 정확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구급일지를 확인하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확인이 안 된다고 합니다.
참사 후 우리 가족은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후 통합지원센터 관련 뉴스에서 의료비 지원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문의하여 관련 서류를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알아보기 전에 통합지원센터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연락이 온 적은 없었습니다.
서류 접수하는 과정에서 통합지원센터, 구청, 시청에서 안내하는 사항이 모두 달라서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통합지원센터는 기한 없이 서류를 메일로 보내라 하였고 엄마랑 동생이 거주하는 구청 직원이 갑자기 전화와서 등본상 주소가 김제인 엄마의 경우에는 김제시청에, 주소지가 서울로 돼 있는 동생은 동대문구청에 서류를 각각 따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 의료비 서류를 김제시청에 제출했는데 직원은 국민연금공단에 직접 신청하라며 아버지를 다시 돌려 보냈고 저는 결국 통합지원센터로 모든 서류를 보내 의료비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 과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최근 이태원 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참사 이후 남은 동생이 심한 우울증을 겪으면서 장애로 인해 대화, 심리상담을 할 수 없어서 다른 지원 방안이 없는지 문의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센터 한편에 있는 방으로 가서 면담을 했는데 그곳에 유가족들이 얘기하기 위해 마련된 방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다른 유가족들이 오셨냐고 물어보니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저도 그런 곳이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왜 우리가 물어보고 찾기 전에 안내하고 챙겨주면 안 되는 겁니까? 왜 유가족을 만나지 않냐 물어보면 유가족이 싫다 했다고 합니다.왜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냐고 하니 만들었는데 유가족이 다른 곳에도 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누구와 얘기하고 결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사가 난 지 76일째지만 단 한 번이라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유가족을 만난 적도 사과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유가족은 더 외롭고 힘듭니다.
나라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힘들겠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유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정확한 진상규명과 모든 책임자 처벌이며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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