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책임 인정하시죠?"
"네, 그렇습니다."
"책임을 어떻게 지겠습니까? 사의표명이라도 하시겠습니까?"
"글쎄요, 그건 나중에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완고했다. 야당 위원들이 수차례 '책임'을 촉구하자 이 장관은 "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겠다"는 답을 반복했다. 여당은 "정치적 공세"라며 방어에 나섰다.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6일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제2차 청문회를 진행했다. 이날 청문회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재난안전관리 책임기관의 증인들이 배석했다.
민주, 이상민 장관 '사의표명' 촉구 … 국힘 "정치적 공세"
더불어민주당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참사 책임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이번 참사는 행안부를 비롯해 경찰, 소방, 서울시, 용산구까지 다 관련돼 있다"라며 "이 모든 사무를 관장하고 있는 것은 주무장관인 이상민 장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무적인 책임도 책임이 있어야 묻는 것'이라고 했다"라며 "대통령이 말씀하신 책임이란 어떤 책임인가?"라고 이 장관에게 질의했다. 이 장관은 "글쎄요", "정확히 모르겠지만 포괄적 책임을... (말하는 것 같다)" 정도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조 의원은 "그 동안 대형 인명사고 발생 시, 국무위원은 자진사퇴, 사의표명 또는 경질 등으로 형식적으로 책임을 져왔다"라며 "지금 증인석에 앉아있는 게 헌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 되물었다.
야당 측 위원들의 사의표명 요구에 대해 이 장관은 완고한 태도를 고수했다.
이 장관은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책임을 인정하시나" 묻자 "그렇다"고 대답하면서도 "사의표명이라도 하시겠나"라는 질문에는 "그건 나중에 생각을 좀 해보겠다"라고만 대답했다. 윤 의원이 "(유가족 등은) 이번에 국가가 '네가 알아서 살아라', 이렇게 (국민들을) 내몰았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하자 "그건 조금 과한 생각"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에 윤 의원은 "국민들의 정서와 마음을 '과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 장관은 조금 전 책임이 있다고 말하셨다.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되물었다.
이 장관은 "책임을 다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며 "자리를 지키고 안 지키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어 윤 의원이 세 차례에 걸쳐 사퇴 의사를 다시 묻자 이 장관도 "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겠다"라는 말을 세 차례 반복했다.
이에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 등 여당 위원들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청문회가) 진상규명보단 결국 이상민 탄핵을 위한 증거 수집 차원에서 열리는 거 아닌지 의문이 든다"라며 이 장관에 대한 사퇴 요구를 "민주당의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민 유족 간담회 두고 "없었다" … 오세훈은 "여러 차례 제안했다"
특위 위원들은 희생자 유가족과 관련한 행안부·서울시 업무처리 사항도 주요 안건으로 뽑았다.
정의당 장혜영, 민주당 권칠승 의원 등은 이 장관이 '행안부엔 유가족 명단이 없다'고 진술한 일을 두고 "명백한 위증"이라 지적했다. 이 장관은 지난해 11월 16일 국회 예결위와 12월 27일 국조특위 기관보고 당시 "행안부에는 유가족 명단이 없다"란 입장을 밝혀왔지만,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유가족 명단을 행안부 측에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이 장관은 "서울시 측이 보낸 파일 이름이 유가족 명단이 아닌 '사망자 현황'이었다"라며 "(발언) 당시엔 사망자 현황 파일 뒤에 유가족 명단이 포함돼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권 의원이 "10월 31일 유가족 명단이 행안부를 경유해 각 지자체에 전달됐는데 (명단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되묻자 "제가 몰랐다는 것이지 행안부 직원들은 다 알았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 등 여당 위원들은 야당 위원들의 명단 관련 질의를 두고 "실무상의 오해"라며 "위증이라는 주장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재난안전관리법 상의 재난관리란 예방과 대비, 대응, 복구 네 가지 총제적인 과정을 말한다"라며 "이 중 대응과 복구를 수습이라 하고, 수습을 잘 하려면 특히 유가족들의 치유와 회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이와 관련해서도 총 책임을 지고 있는 분은 행정안전부 장관"이라며 "장관님은 유가족들과 간담회 하신 적이 있으신가" 물었다. 이 장관이 "아직 없다"고 대답하자 이 의원은 "(참사 이후) 70일이 지났는데 (유가족들의) 손 한 번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하나" 라며 이 장관을 질책했다.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장님은 간담회 하신 적 있으신가"라는 이 의원의 질의에 "저는 여러 차례 제안했다"고 대답했다. 오 시장은 "유족들이 만나주지 않은 것인가"라는 질의에 대해서는 "(유가족들이)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국정조사 이후에 (서울시와) 만나는 것으로 의견을 정리하셨다고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참사 당시 희생자 시신을 찾아 해맨 일부 유가족들이 △병원에서 당사자 신원 확인을 해주지 않아 직접 서울 소재 병원 40여 곳에 전화를 돌렸으며 △그렇게 찾은 가족의 시신을 나체 상태로 인계받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와 관련해 "국립재난안전연구소에선 시신 인도, 안치 병원, 장례식장, 합동분향소 지정 등을 유가족과 협의하여 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라며 "유가족에 대해서 (정부가) 이렇게 해야 했는가, 유가족을 뿔뿔이 흩어놓은 이유는 뭔가"라고 이 장관에게 질의했다.
그러자 이 장관은 "지금 유가족들의 그런 애절한 이야기를 들으니까 다시 한 번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감이 느껴진다"라며 "희생자들의 명예라든지 (시신인도) 처리과정에서 유가족들이 받았을 상처에 대해서는 제가 이 자리를 빌려 책임 소재 유무를 떠나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리겠다"고 답했다.
오세훈, 서울시 책임론에 "입법공백 매우겠다 … 조례개정 추진 중"
오세훈 서울시장은 참사 예방을 위해 "(행사) 주최자가 없는 경우에 대한 입법 사각지대를 해결할 것"이라 약속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이해식 의원 등 야당측 위원들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조은희, 조수진 의원 등도 "(참사 대응에 있어서) 서울시도 미흡한 부분이 있었지 않느냐"라며 서울시 측에 참사 책임을 물었다.
참사 당일 '핼러윈데이 축제'는 지자체나 특정 기업 등 별도의 주최자 없이 다수의 시민들이 모이면서 진행된 행사였다. 참사 발생 초기,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책임자들이 해당 사실을 두고 '지자체의 책임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입법공백 논란이 커졌다.
이에 오 시장은 "예측의 실패가 곧 재난의 시작이기도 했다"라며 "(앞으로) 인파 다중운집이 예상되는 상황부터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무엇보다 주최자가 없는 경우에 대한 입법사각지대를 해결하겠다"라고 밝혔다. 오 시장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는 관련 법령 및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 시장은 △골목길 지능형 폐쇄회로(CC)TV 설치 및 CCTV 상황실 연결 △재난대비 매뉴얼 통폐합을 통한 신속대응 매뉴얼 마련 △재난대비 훈련을 통한 사고수습체계 보강 등을 참사 재발방지 대책으로 제시했다.
한편 이날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차명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장을 증인으로 소환해 신현영 더불어민주당의 '닥터카' 탑승 논란을 재점화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신 의원의 운전사 역할을 한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차 실장을 두고 "고위직 공무원이 국회의원의 개인 기사로 일하고 변명까지 하고 계신다"라며 "정말 참혹한 현장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지난해 12월 27일 기관보고에서 국민의힘 위원들이 닥터카 관련 질의에 집중한 것을 두고 같은달 29일 "신 의원의 닥터카 탑승 행위는 부적절하지만, 참사와 관련해 본질적이거나 핵심적인 안건은 아니"라며 자제를 당부한 바 있다. 이날 청문회에선 김 의원의 닥터카 질의가 이어지자 일부 유가족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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