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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와 한국, 두 나라에서 찢겨진 느낌…진정한 나, 가족을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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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와 한국, 두 나라에서 찢겨진 느낌…진정한 나, 가족을 찾고 싶습니다"

[369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⑧ "생전 처음 찾은 한국에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수지 플로그 브룬날드이고 49살입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남편과 25, 19, 12살인 세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1973년 11월에 덴마크로 입양 왔습니다.

입양으로 친부모나 내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것은 평생 나와 내 정체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양부모님과 그들의 친딸인 여동생과 함께 자랐습니다. 여동생은 저보다 14개월 어려 우리는 쌍둥이처럼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서로 다르게 대한 적은 없었지만, 저만 가족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르게 느꼈습니다. 평생 나는 다름을 느꼈고 덴마크 여동생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덴마크인이라고 들었고, 덴마크인이며 덴마크어를 말하고 덴마크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덴마크 가족이 있고, 덴마크 친구가 있으며, 덴마크 사람들과 함께 일합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항상 제가 덴마크인이라고 느꼈고 덴마크인처럼 느껴지고 보이기 위해 모든 것을 했습니다.

불행히도 내 안에 또 다른 감정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덴마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건 주로 외모 때문입니다. 덴마크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때면 종종 다른 느낌이 듭니다. 내 자신감과 자존감은 평생 동안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나는 그 부족한 느낌이 입양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정체성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저는 친생부모를 찾기 시작했고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에 편지를 썼지만 친부모에 대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홀트는 다른 많은 아동들처럼 행인이 거리에서 저를 발견했다는 것만 알려줬습니다.

2022년 7월, 저는 남편과 세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놀랍고 압도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한국에 있는 것이 좋았고, 서울을 사랑했습니다. 어쩐지 집처럼 느껴지면서도 집에서 너무 멀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다른 한국인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홀트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생물학적 가족에 대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나는 입양 시스템과 한국 정부에 화가 났고, 입양기관이 내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불공평했습니다. 나는 상심했고 매우 괴로웠습니다. 낙담에 압도되었습니다.

한국에서 3주를 보낸 후 덴마크로 돌아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태어난 나라를 볼 수 있는 있었던 건 축복이었지만, 여전히 슬프고 좌절하며 분노합니다. 한국이 그립고, 한국 사람들이 그립고, 한국 문화도 그립지만 무엇보다 그 소속감이 그립습니다.

나는 덴마크와 한국, 두 나라와 두 문화 사이에서 찢어진 느낌을 받습니다. 내 일부는 내 뿌리가 있는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의 또 다른 부분은 내가 가족과 삶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덴마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종종 내면이 공허하고 참을 수 없는 감정에 압도당합니다.

3년전, 저는 한국에서 온 다른 입양인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저는 다른 한국 출신 입양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쩐지 저는 그들과 함께 있다보면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인 척하거나 덴마크인이 되거나 어울리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웃고,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과 저의 아픔을 나눕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저의 느낌과 감정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친부모와 재결합하면 어떨지 많은 생각이 듭니다. 첫 만남은 어떨까요? 부모님은 어떻게 생기셨을까요? 저는 그들과 닮았을까요, 어떠한 비슷한 점이 있을나요? 저는 저를 낳아준 엄마, 아빠에 궁금한게 너무 많습니요. 한국의 형제, 자매가 있을지, 제 생년월일이 진짜 맞을지, 친부모의 인생은 어땠는지, 내가 알아야할 가족 병력이 있는지, 내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제 삶은 어땠을지….

무엇보다도 친어머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머니인 저는 제 아이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제 친생모가 왜 저를 포기하고 입양을 보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유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친부모를 찾는 꿈이 언젠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대 그것이 저를 한 사람으로 완성시키고 제 아이들에게 제 정체성과 유산에 대한 진정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가장 큰 꿈은 친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DKRG(Denmark Korean Rights Group, 덴마크 한국인 권리 그룹)에감사드립니다. 이 그룹은 입양인들에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입양인을 위해 싸우고 있으므로 우리는 진정한 이야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양인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알고 인간으로서 우리를 완성하기 위해 우리의 진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입양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진실과 정체성을 알 권리를 인정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처럼 많은 입양인들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제게 희망을 줍니다. 궁극적으로 이는 우리 모두의 인권에 관한 것입니다.

▲이 글을 쓴 수지 플로그 브룬날드 ⓒ수지 플로그 브룬날드

지난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69명으로 늘어났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 것이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 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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