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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정부에서 유가족 모아 슬픔을 나눌수 있게 해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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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정부에서 유가족 모아 슬픔을 나눌수 있게 해줬다면..."

[현장]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녹사평역 인근 광장에 시민분향소 설치

"10월29일 이후로 여러분들이 우리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의 이름과 영정이 국민들한테 공개되는 게 패륜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정부에서 유가족 모여서 같이 슬픔을 국민 여러분과 나눌 수 있게 해주었다면..."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영하 11도인 14일 저녁, 녹사평역 인근에 시민분향소가 마련됐다.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와 함께 이날 설치한 시민분향소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76명의 영정이 걸려있었다. 

사진 아래로는 희생자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있었다. 이 대표가 말하는 동안 희생자 유가족들은 영정 앞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국가 추모기간 동안 아이들을 위해서 잘 가라고 말씀해주셨던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드디어 아이들이 여러분들을 만나 뵙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이 얼굴 하나하나,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시면서 잘 가라, 수고했다,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다시 한번 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꼭 오셔서 추모 부탁드립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가 시민분향소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이상현)

"진짜 애도는 이제부터"...유족들이 분향소에 직접 영정 걸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시민대책회의가 시민분향소를 설치한 녹사평역 인근 광장은 참사 이후 국가 애도기간 중 정부가 설치한 합동분향소와 같은 곳이다.

다른 점은 이번 분향소는 정부가 아닌 유가족이 시민사회와 함께 계획해 마련됐다는 점이다. 국화꽃만이 있던 기존 분향소와 달리 희생자 76명의 사진과 이름도 걸려있다. 

희생자 17명은 유족의 의사로 이름만 적혀있다.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아직 희생자의 죽음을 할머니,할아버지 등 가족에게 차마 말하지 못해 사진이 공개되기를 원치 않는 분들도 계셨다"라고 전했다. 유가족협의회가 의사를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희생자들은 국화꽃 사진만이 걸려있다. 

몇몇 유족들은 희생자 영정을 직접 분향소에 걸기도 했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분향 공간을 품에 안고 있던 영정으로 채워나갔다. 유족들은 영정을 걸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예 영정을 채 걸지도 못하고 가슴에 품고 주저앉아 한참을 우는 유족이 있는가 하면, 사진을 걸고 분향소 기둥을 잡은 채 오랫동안 서 있는 유족도 있었다.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영정을 직접 분향소에 걸기도 했다. 유족들은 영정을 걸며 눈물을 흘리기도, 영정을 채 걸지도 못하고 가슴에 품고 주저앉아 한참을 울기도 했다. 사진을 걸고 분향소 기둥을 잡은 채 오랫동안 서 있는 유족도 있었다. ⓒ프레시안(이상현)

참배와 헌화를 마친 유족들은 시민분향소 앞에 서서 울분을 쏟아냈다. 한 유족은 "오늘 이태원이라는 곳을 50 넘게 살면서 처음 왔다"라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발걸음이 안 떨어지고, 숨이 안 쉬어지는데 그래도 이태원역 1번 출구로 찾아갔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우리 아이들 잊지 않고 (이태원역에) 찾아주시는 덕분에, 자원봉사자분들이 추운 날씨에 지켜주고 계셔서 감사하다고 머리 숙였습니다. 그런데 해밀턴 골목을 보고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길이 긴 길인 줄 알았는데 어른 걸음으로 몇 걸음도 되지 않는 곳에서, 그 많은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차로변도 넓었습니다. 오후 6시에 시민 목소리에 조금만 더 귀 기울였으면 이런 참사 안 일어났습니다. 이태원역에서 가까운 용산구청, 경찰서에서 (참사 현장까지) 걸어서 10분도 안 됩니다. 그 시간에 당신들은 뭐 하셨습니까. 당신 아들이 죽어간다고 전화해도 10분 거리를 차로 올 수 있나요? 부모들은 아이 소식 듣고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와, 그날 새벽, 아침 순천향병원, 주민센터 또다시 순천향병원으로 아이 찾아 헤맸습니다.

당신들은 그 시간에 뭐 하셨나요. 용산 경찰서, 행안부, 대통령실은 저 아이들 158명, 오늘 159명까지 눈동자를 똑바로 봐야합니다."

▲ 14일 녹사평역 인근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기존 정부가 주도한 분향소와 달리 이번 분향소에는 희생자 76명의 영정이 걸려있다. ⓒ프레시안(이상현)

유족들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고, 추모하는 시민분향소

유족들은 시민분향소 설치 계획을 알리며 기존 정부 주도로 운영됐던 분향소와 애도 방식을 지적했다.

유가족협의회는 "'합동분향소'는 유가족의 의사는 확인하지도 않은 채 영정도, 위패도 없이 설치됐다"라며 "정부는 사태 축소와 책임 회피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사고 사망자' 현수막을 걸어 유가족의 찢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제부터라도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희생자를 향한 추모와 애도를 시작하려고 한다"라고 시민분향소 취지를 밝혔다.

시민분향소 설치과정에서는 기존 녹사평역 광장에서 '이재명을 수사하라' 피켓을 내걸고 있던 보수단체와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수단체 일부는 분향소 바로 인근에서 2차 가해성 발언을 유족들에게 쏟아내기도 했다.

참사 희생자 유족 한 명은 시민분향소 설치가 시작된 시점부터 녹사평역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이후 도착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손을 잡고 울기도 했다. 김 씨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다.

유족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 나왔다"라고 말했고, 김 이사장은 "유족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진상규명밖에 없다"라고 답했다.

열악한 방송환경 노동실태를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도 시민분향소 앞에서 유족 손을 잡고 "같이 눈물 흘려주려 나왔다"라고 말했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도 시민분향소를 찾아 이태원 참사 유족들을 위로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광장을 찾아온 유족 손을 붙잡았다. ⓒ프레시안(이상현)

"윤석열 대통령, 시민분향소 와서 사과해야"

유족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도 시민분향소에 와서 사과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협의회 이종철 대표는 윤 대통령을 향해 "더 늦기 전에 우리 아이들 앞에 와서 '내가 잘못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정말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라고 사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 씨 어머니도 윤 대통령에게 "어찌하여 유가족과 싸우려고 하나"라며 "금요일까지 와서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유가족협의회는 참사 49일째인 16일(금요일) 저녁에는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이름의 시민추모제를 전국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 경기 지역은 이태원역 앞 도로에서 진행된다.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부대표는 "이제야 저희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추모다운 추모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라며 "아이들이 편안하게 갈 수 있게끔 많은 국민 여러분들이 도와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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