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2월이 됐다. 하지만 한 해를 차분히 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갖기 힘든 시국이다. 사회 곳곳에서 동료 시민의 연대를 요청하는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30일부터 국회 앞에서는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권 남용을 막기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일명 '노란봉투법')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무기한 단식 농성이 이어지는 중이다.
2014년 쌍용차 파업 이후 여태껏 노란봉투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그만큼 노동자에게 억압적인 정치 구조가 변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역대 정부 모두 예외는 아니나, 특히 이번 정부는 더욱 노골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아 촉발된 화물연대 총파업 투쟁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며 '귀족노조' 딱지를 붙이는 등 반감을 조장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12월 2일 자 '주유소 '품절' 안내문에 '화물연대 파업 탓' 쓰라는 정부')
노동조합을 '악마화'하고 노동자들 사이를 '갈라치기'하는 전략이야 보수 정치세력이 구사해 온 전형적 수법으로 새삼스럽지 않다. 다만 화물차 안전운임제나 공공기관 필수 안전인력 증원과 같이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라는 사회적 요구를 외면함으로써 스스로 통치의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점은 특징적이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열망이 높아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의 낮은 국정운영 지지율은 다음 선거의 패배 가능성을 알리는 위험 신호다. 따라서 부정적 여론이 높은 정책기조는 수정하고 사회통합적 정책행보에 힘을 싣는 것이 정치적 합리성에 부합하는 대응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은 종부세·법인세 인하와 공공기관 민영화 정책 등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왜 그럴까?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정치진영의 대결 구도 속에서 보수 지지층을 확고히 다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아니면 보다 상위의 정치적 합리성에 충실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긴축, 규제완화, 민영화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 패러다임과 함께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규범적 헤게모니로 작동하고 있다.
즉,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경제성장 담론에 친화적인 지지 세력의 확산과 재집권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 국정운영의 바탕에 암묵적 전제로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구성원 다수가 그 방향이 옳다고 믿는 한 실제 정책성과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름의 통치 합리성이 있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대통령 개인의 도덕성과 자질 부족에서 찾는 접근을 지양해야 될 이유다.
지난주 논평에서도 언급했듯이, 신자유주의 통치전략의 핵심은 국가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데 있다. 공공성 약화와 불평등 심화는 이 전략의 결과이자 목표다. 지금 정부는 에너지, 교통, 교육, 보건의료 등 공공성이 큰 분야에서 영리화·상업화를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공공병원 인력감축을 비롯해 서둘러 추진 중인 디지털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과 개인건강정보를 활용한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등도 이러한 '신자유주의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지금의 경제위기는 이들을 더욱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재정지원정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오히려 정부는 재정역량을 위축시키는 부자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불평등 심화가 그 자체로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신자유주의는 '기득권층의 특권 복원을 위한 정치적 기획'이라는 데이비드 하비의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 형국이다.
그렇다. 신자유주의에 경도될수록 정부는 주류 기득권층에 유리한 정책에 더 큰 힘을 쏟게 된다. 그만큼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책은 뒷전에 밀려난다. 내년 정부예산안을 보자. 정부는 공공형 노인일자리 예산과 청년 지원 예산을 대폭 깎았다. 그리고 그동안 꾸준히 늘어왔던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년 대비 5조 7000억 원이나 삭감하였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9월 7일 자 '[팩트체크] 내년 공공임대주택 공급물량 줄지 않는다?')
공공분양주택을 늘릴 계획이라지만 이는 주택구매 여력이 있는 이들을 위한 정책일 뿐이다. 공공임대주택은 공공병원과 마찬가지로 주거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바로미터'다. 2020년 기준으로 일명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에 거주하는 가구는 약 83만 가구나 된다. 여기에 비닐하우스, 쪽방 등을 포함하면 주거빈곤가구 수가 200만을 넘는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2019년 10월 14일 자 '30년 신기루, 공공임대주택')
반면 저렴한 임대료로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진짜'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턱없이 모자란 현실이다. 공공임대주택의 절대적 물량을 늘려야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과제다. 이는 단지 주거취약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공공주택 비율이 높아질수록 민간 주택시장의 임대료가 어느 정도 통제되는 긍정적 외부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주거권 보장은 건강권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불안정성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과도한 주거비 부담은 식비, 교육비, 의료비 등 필수 지출을 줄이게끔 만듦으로써 간접적으로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즉, 공공임대주택은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주택은 자산증식의 주요 수단이자 자신의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자본으로 인식되어 왔다. 주택정책도 건설업계의 이익창출을 위한 산업정책으로서 성격이 강했다. 반면 주거권과 주거의 공공성 담론은 극히 미약한 실정으로, 공공임대주택은 늘 주요 의제에서 소외되어 왔다. 국가 부담을 하나라도 더 줄이려고 하는 지금 정부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삭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 11월 24일 국토교통위원회는 정부가 삭감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액 복구하는 안을 의결했다. 약 5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고 있는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이 오늘로 벌써 50일째 국회 앞 천막농성과 시위를 이어온 결과다. 공공임대주택 문제로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오랜 시간 힘을 합하여 싸운 최초의 사례다.
예산증액은 정부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라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사실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에 가깝다. 농성 기획 단계에서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저 앉아서 지켜만 볼 수 없다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보자는 바람에서 시작된 운동이 소중한 변화를 만들어 냈다.
국회 예산안 심의는 법정 시한을 넘겨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적 행위자들 간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해 얼마든지 결과는 바뀔 수 있다. 불리한 제도적 제약을 뚫고 공공임대주택 예산 증액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더 큰 사회적 여론을 만들어 국회를 압박해야 한다. 주변 사람에게 이 문제를 알리고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직접 농성장에 지지 방문을 가는 것도 사회권력의 실체를 드러내는 중요한 실천이 될 것이다.
우리는 '각자도생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분투하는 동료 시민들의 모습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 역시 각자 자리에서 눈앞에 보이는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이것은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명이자, 우리 자신을 절망으로부터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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