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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만 '올인'하는 외교 아닌 '위험 분산전략' 필요

[현안진단] 국익 우선 균형외교로 대외전략의 틀 다시 짜야

전략적 명확성을 선택한 신정부의 대외전략 구상

한반도를 포함해 동아시아의 안보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중요한 국제회의가 11월 중순에 잇달아 열렸다. 중국 20차 당대회와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진 뒤 11월 10~18일 사이에 개최된 아세안(ASEAN)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계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한·미, 한·일, 한·중 및 한·ASEAN 정상회담을 잇달아 가졌으며, 이를 전후해 우리 정부의 대외전략을 하나씩 공개했다. 주목되는 것은 우리 정부가 이번 국제외교행사를 통해 국제질서의 변화 움직임에 대응해 기존 외교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국제회의에서 처음 발표된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11.13)에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간 견지해 왔던 균형외교와 그에 따른 전략적 모호성을 깨고, 가치외교(사실상 이념외교)를 분명히 한다는 전략적 명확성을 드러냈다.

최근 우리 정부는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과 대북정책 청사진도 잇달아 선보였다. 그것은 한·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밝힌 "자유·평화·번영의 인·태 전략"(11.11)과 광복절 경축사의 '담대한 구상'(8.15)을 구체화한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11.21) 구상이다. 이 두 전략구상을 보면 우리 정부가 현 국제정세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대략적인 윤곽을 읽을 수 있다.

먼저, 신정부는 급부상한 중국이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유리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적·안보적 리스크를 가져올 뿐 아니라 북한 핵미사일 위협도 쉽게 진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이나리스크(China Risk)와 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면서 일본과 손잡고 공급망 재편은 물론 안보적으로도 협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인지 우리 정부는 가치외교를 내걸어 중국과 이념적으로 차별화하고 한·미 및 한·미·일 전략적 협력을 명확히 했다.

다음, 신정부는 가치외교의 연장선에서 북한 인권을 중시하는 한편 북한 핵문제는 사실상 해결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한반도 상황관리 차원에서 대화 노력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우리 군의 보복타격능력을 강화하고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실효화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대외전략의 우선순위도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노력은 사실상 후순위로 밀려나고 독자적인 대북제재의 추진과 국제공조를 만들어가는 데 힘을 집중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일에 편승한 해양전략, 보이지 않는 대륙전략

우리 정부의 대외전략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인도·태평양을 지리적 범주로 앞세웠다는 점이다. 기존의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범주가 변화된 것이다.

원래 인·태 전략 개념은 2007년 일본 아베총리가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미국을 이 지역에 붙잡아두기 위해 미·일·인·호 4국으로 이루어진 '민주안보 다이아몬드 구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되었다.

2기 아베 내각 때인 2013년 '인도·태평양 구상'으로 이름을 바꿔 다시 제기한 것을 트럼프 미 행정부가 수용하면서 국제적으로 통용하게 됐다. 최근 서유럽 국가들도 잇달아 인·태를 지리적 범위로 하는 국가전략보고서를 내놓고 있어 이제 어느 정도 국제적인 공감대를 얻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9년 6월 문재인-트럼프 한·미 정상회담에서 '개방성·포용성·투명성의 원칙 아래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태 전략을 조화롭게 추진하도록 협력한다'고 합의함으로써 인·태 전략 자체는 수용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다만, 3대 원칙을 내걸어 중국과 같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관점과 이익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인·태 전략에는 우리의 관점이 사라지고 중국을 견제한다는 미·일의 입장이 전면 반영되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신남방정책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용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이것은 한국의 관점에선 균형적인 외교전략이 사라지고 미·일 주도의 반중 해양전략에 포섭되었으며, 또한 러시아·중앙아시아를 겨냥한 대륙전략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정부가 가치외교를 표방하면서 냉전적 발상에 기초한 이념외교에 가까이 갔다고 평가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석유 100%, 식량 75%를 수입하고 있고,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이 해상교통로를 이용한다. 특히 중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잇는 남방항로는 해상교역 전체 물동량의 99.8%를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중국이 타이완을 무력 침공해 점령하거나 남중국해 구단선(九段線)을 사실상의 해상영토로 삼는다면 우리의 국익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타이완에 대한 무력침공이나 전랑외교(戰狼外交)와 같은 패권주의적 행태에 대해서는 사안마다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번 인·태 전략처럼 가치외교를 내세워 중국을 포괄적으로 반대하는 전략을 두고 옳은 방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중국에서 오는 경제적 이익에 취해 중장기적으로 직면할지 모를 차이나리스크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처럼 당면한 한·중 경제관계나 북핵 해결에서의 역할 등을 외면하고 중장기적인 차이나리스크만 부각시키며 미·일 주도의 반중 전선에 들어서는 것은 올바른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없다.

특히 미국의 국력이 압도적으로 강할 때는 균형외교, 실리외교를 취하다가 정작 중국이 미국 GDP의 80%에 달할 정도로 커진 지금에 와서 가치 공유를 내세워 가치외교, 이념외교로 전환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미·일 주도의 전략에 편승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추진해 왔던 대륙전략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겨냥한 우리의 대륙전략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에서 시작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Hub State) 구상, 이명박 정부의 신아시아 협력외교,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구상,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 등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 때문인지 지금 정부는 해양전략에만 몰두할 뿐 아직 이렇다 할 대륙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한 유연한 외교전략이 필요

금년 들어 북한의 군사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북한이 과거에는 한·미가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반응을 보였는데, 이제는 즉각적으로 군사행동에 들어가 맞불을 놓는다. 최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의 시험발사에도 성공해 미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북한이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수십 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해도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때문에 새로운 대북 결의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대북제재를 위한 국제공조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비핵화에 편중되어 균형을 잃었다. 공개된 정부의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 구상은 ⓵ 초기조치+포괄적 합의, ⓶ 실질적 비핵화, ⓷ 완전한 비핵화의 3단계로 이루어진 '일괄타결 뒤 단계별 동시이행'의 청사진이다. 하지만 이 구상이 작동되려면 일단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나와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의 정책은 연례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11.3)에서 보듯이, 확장억제력의 실효성 제고에만 역점을 두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집권여당 내에서 핵무기 개발론, 전술핵무기 배치론, 핵무기 공유론이 난무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기존 패권국과 신흥 도전국의 충돌사례를 역사적으로 분석해 미·중 간의 전쟁 가능성을 예측한 책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미·중 간의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으며, 그 시발점은 한반도나 대만 등 제3지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 치 양보도 없는 북한과 한·미의 군사적 대응을 보면, 우발적 충돌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하다. 앨리슨 교수의 우려처럼 한반도가 미·중 군사충돌의 시발점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과 같은 압박 일변도의 대북정책이 아니라 평화 지향의 대북정책이 되어야 한다.

평화 지향의 대북정책이라고 해서 지난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만능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기 이전에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쉽지 않았는데 하물며 한·미·일 남방삼각과 북·중·러 북방삼각의 대립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현 국제정세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제대로 추진되기는 어렵다.

설사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된다고 해도 미·중 대립의 폭풍 속에서 한반도 운명을 결코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단지 남북관계에서 적대와 긴장이 완화될 뿐이다.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 같은 림랜드(Rimland), 즉 대륙연안국가는 전통적인 해양국가인 미국이나 일본처럼 해양전략 일변도로 나아갈 수 없다. 한·미·일 3국 협력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미·일 주도의 인·태 전략에 편입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중 대립의 격화 속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지만, 기후변화나 팬데믹, 비핵화와 같은 국제현안의 해결에는 여전히 한·중 간의 공조 필요성이 크다.

차이나리스크에 대한 안전판으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대륙전략이나 해양전략의 양자택일이 아닌 상호 존중과 협력의 틀 속에서 중국을 활용하는 헤징전략(Hedging Strategy), 즉 위험분산전략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아직 출범한 지 6개월이 갓 지났을 뿐인데 외교안보정책의 전환을 너무 서두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라도 초당파적으로 지혜를 모아 우리 정부의 대외전략 및 대북정책을 좀 더 유연하고 정교하게 다시 짜야 할 것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금언처럼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최선의 전략은 물과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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