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마산에서는 지난 주 국화 축제가 열렸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제한이 풀린 이후 행사답게 많은 사람들과 차량이 몰렸다. 도로에는 경찰에서 제공한 복장을 착용한 모범운전자들이 차량 안내를 담당했고, 행사장 안에서는 빨간 모자를 쓴 고령의 해병대 전우회 회원들이 질서 유지를 담당했다. 사람과 차량을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는 역할도 있었지만, 비포장길에 혹여나 주민들이 넘어지는 않는지, 유모차와 장애인 휠체어가 이동할 때 어려움이 없는지, 무리해서 끼어드는 자동차가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국화 축제 뿐 아니라 지역의 거의 모든 축제 현장에서는 이들이 보인다.
행사가 잘 홍보되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고 하더라도 지역축제는 사람들이 서로 부대낄 정도까지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렇게 밀집되지 않는 지역의 축제에서도 방문객들을 위한 안전조치는 이루어진다. 그동안의 여러 시행착오들을 거쳐 마련된 지역 행사에서의 안전 매뉴얼이 지방정부에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가기 : 2021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
지역 축제 뿐 아니라, 어디든 많은 사람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공연·스포츠 경기에서도 이러한 매뉴얼이 있기에 안전이 유지되었다. 외신에서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에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였지만, 안전사고나 폭력없이 집회가 이루어진 점을 극찬하기도 했다. 지난달 열린 BTS 부산콘서트 역시 처음 기획되었던 장소의 안전문제가 불거지자 장소를 변경하고, 부산시와 관계기관 그리고 시민들의 협력으로 10만 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콘서트를 안전하게 치뤘다.
그러나 10.29 이태원 참사는 그동안 쌓아왔던 '안전'에 대한 국가와 시민들의 경험과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158명이 허망한 죽음을 맞았고, 수 백명의 젊은이들이 크게 다쳤다. 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가? 왜 누구도 이 참사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이 절박한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군중 밀집상황에서 발생했던 참사들을 분석한 영국의 응급의학전문의 수마루와 머레이의 논문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바로 가기 : 대규모 인파집중에서의 참사: 역사의 교훈) 연구자들은 이러한 참사를 '공중보건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역사적 경험을 살펴봄으로써 참사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규모 인파 집중은 이동에 필요한 통행로를 제한하고, 사람들에 대한 통제도 어렵게 한다. 또한 현장에서의 충분한 의료적 처치와 비상대응 대책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될 수 있고, 지역 의료시스템에도 심각한 부담을 줄 수 있다. 대규모 인파집중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서술은 이태원 참사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예방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문헌 분석을 통해 5가지 중요한 핵심 교훈을 제시하였다. 첫째, 밀집된 군중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과다 인원에 대한 예측 및 경고가 필요하며, 안전요원에 대한 교육, 적절한 안전 방송시스템, 사고 발생시 행사를 중지하는 절차가 준비되어야 한다. 둘째, 행사 접근 지점 설정이 적절해야 한다. 입장과 퇴장의 흐름을 구분해야 하고, 다수의 출입구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응급의료서비스가 사건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화재 안전 대책이 준비되어야 한다. 적절한 표지가 있는, 여러 개의 장애물 없는 비상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화재 안전 프로토콜이 필요하며, 행사 운영 담당자는 정기적인 소방훈련을 받아야 한다. 넷째, 의료적 준비가 필요하다. 지역병원은 대규모 행사시 비상계획에 참여해야 하며, 현장에서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응급의료 대응이 필요하다. 4분 내의 기본응급처치, 8분 내의 심화응급처치, 30분 내의 의료시설 대피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사고 현장에서의 환자분류를 위한 준비 및 훈련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대규모 인구밀집 행사가 참사로 이어졌던 역사적 경험들을 복기하며 위와 같은 참사 예방전략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역학적 지식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비상사태 대비 및 대응을 위한 방안마련을 위해서라도 인파밀집사고에 대한 추가 연구들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나 희생자에 대한 애도마저 충분하지 않다. 이런 정치사회적 과정이 순조로와야 우리가 이태원 참사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같은 일의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하고 깊은 공중보건학적 분석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서지정보
- Soomaroo L, Murray V. Disasters at mass gatherings: lessons from history. PLoS Curr. 2012 Feb 2;4:RRN1301. doi: 10.1371/currents.RRN1301. PMID: 22453897; PMCID: PMC327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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