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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힌남노 피해와, MB 4대강 사업 후속 '삽질'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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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힌남노 피해와, MB 4대강 사업 후속 '삽질'의 상관관계

[함께 사는 길] 포항 태풍 피해의 진실

지난 9월 5일 새벽 4시경, 밤새 불안 속에서 잠을 설치다 눈을 뜨니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거센 비바람이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으므로 수해보다는 산사태 걱정을 해야 했다. 감나무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오래된 라일락 나무가 쓰러지진 않는지 수시로 확인하며 마음을 졸였다. 텔레비전 뉴스와 휴대전화 문자는 포항 전 지역에 걸친 침수 상황을 계속 알려왔고 냉천 범람과 형산강 홍수경보 후 태풍 힌남노는 이른 아침에 동해안을 빠져나갔다.

피해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무엇보다도 냉천 범람으로 인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망사고는 안타깝고도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초유의 사태는 또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침수된 것이다. 제철소는 물론이고 철강공단 전체가 마비되었다. 신광천, 광명천, 용산천 등 상류의 여러 지류가 합류하는 지방하천인 냉천은 그 많은 물을 다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 포항에 태풍이 지나간 뒤 냉천의 모습. ⓒ정침귀

아파트 건설 위해 하천 직각으로 꺾어

태풍이 지나간 후 가장 먼저 가본 곳은 오천읍 용산2리 '다래골'이다. 왕복 2차선 도로를 마주하고 아이파크 아파트 단지를 건설 중인 이곳은 마을 하천인 용산천을 아파트 건설을 위해 직각으로 수로를 꺾어 버린 곳이다. 작년 겨울 마을 주민들은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며 하천을 원상 복구할 것을 요구했었다. 포항시는 행정의 잘못을 일정부분 시인하면서도 홍수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홍수가 났고 현장은 너무나 참혹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주택이 반쯤 토사에 잠겨버렸다. 물길은 사라지고 도로와 같은 높이로 흙과 자갈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토사에 갇힌 집 앞에 망연자실 앉아계시던 노부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냉천 상류의 시골 마을에 유명 브랜드의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는 것도 모자라 용산천의 물을 품어주던 습지를 없애버리고 성토하여 아파트 지대를 높이고 수로를 변경한 결과 저지대가 된 마을은 이번 태풍으로 쑥대밭이 된 것이다.

형산강 다리를 건너 포스코와 인덕동을 지나 냉천을 거쳐 오천읍 일대의 피해현장을 둘러보면 볼수록 상황은 더 심각했다. 포항은 이번 홍수로 인해 도시 도로와 1층은 거의 다 물에 잠겼다고 보면 될 것이다. 도심의 복개하천이 범람하여 상가와 시장이 침수되었고 하수관로가 역류한 악취와 흙먼지는 오랫동안 시내를 뒤덮었다. 비용으로 가늠할 수 없는 인명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와 포스코의 침수가 냉천을 중심으로 발생했고 그 상류의 골짜기와 저지대가 모두 범람하고 침수되었다.

▲ 인명피해가 발생한 아파트의 담벼락. ⓒ정침귀

'고향의강 정비사업'으로 잠긴 고향

냉천은 포항시 남구 오천읍 진전저수지에서 발원하여 포항제철소 앞 영일만 바다로 빠져나가는, 길이 13km가 넘는 지방하천이다. 1960년대 포스코 건설 과정에서 공장부지 확장을 위해 하구 수로가 변경되었다. 이곳은 평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바닥이 보일 정도로 수량이 적은 '마른 하천'이다. 물이 차고 바람이 시원하여 '찬내'라는 고유한 이름은 어느새 사라지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넓은 논밭은 상가와 주택이 되었고 양쪽에 넓은 강변도로가 생기며 기존 하천의 폭은 대폭 줄어들었다. 동해안의 여느 하천들과 마찬가지로 하천 상류는 해발 400m 이상의 고지대이고 하류 구간은 바다와 바로 만날 정도로 낙차가 심해 상류 쪽에 많은 비가 내리면 유량과 유속이 급격히 증가하는 지형적 특성이 있다.

냉천이 범람하자 '냉천 고향의강 정비사업'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의 후속으로 전국 지방하천을 대상으로 '고향의강 정비사업'이란 이름으로 추진한 또 다른 삽질의 현장이 바로 포항의 냉천이다. 냉천 정비사업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오천에서 청림까지 8km가 넘는 구간에 대대적인 정비를 하며 10여 차례나 설계를 변경했다. 그때마다 예산이 늘어나 3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었다. 그 이유는 콩레이나 차바 등의 태풍과 집중호우 때마다 시설물이 유실되어 거의 매년 복구와 정비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복구공사를 할 때마다 시민들은 '저러다 비 오면 또 떠내려갈 건데'라는 걱정을 해왔다. 냉천에는 6개의 교량과 자전거도로, 징검다리, 산책로, 축구장, 게이트볼장 등 15개 전후의 크고 작은 시설물들로 수변공원이 '건설'되었다.

고향의강 정비사업은 처음부터 치수나 이수의 목적보다 친수시설로 소위 '명품하천'을 만들고자 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합작품이다. 10년에 걸친 정비사업의 결과 최하류의 가장 오래된 냉천교의 폭이 가장 좁고 상류 인덕교와 문덕교, 용산교 사이의 하천은 넓은 폭으로 여러 시설들이 자리 잡았다. 이곳의 병목현상이 범람을 가중시킨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용산2리 수해 주택. ⓒ정침귀

반성 없이 들고 나온 댐 타령

시간당 100mm 이상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냉천은 범람했고 복구 작업이 한창인 와중에도 그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주민들은 "냉천의 폭을 좁혀 범람을 초래했다"고 주장하지만 포항시는 "하천 폭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적인 폭우의 영향으로 불가항력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또 지방하천은 80년 빈도로 설계하는데 이번 시간당 강우는 500년 빈도를 훌쩍 넘었고, 하루 강우량으로 보더라도 200년 빈도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냉천 정비사업은 시행기관이 포항시이고 지방하천의 관리는 경상북도에 있으므로 어떤 이유로든 지자체가 최종의 공동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발주 초기부터 잔디 블록 및 호안 블록 등의 시공상 문제점이 드러나 부실시공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한 경상북도는 2018년 감사에서 "둔치 쪽은 유속이 빨라 침식 우려가 있으니 시설물을 과도하게 설치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재해에 취약한 하천 경사면을 보강해 유수 흐름에 지장이 없도록 하라"는 조치를 내린 바도 있다. 한편 포스코는 침수에 대비하지 못한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비판의 목소리를 무마하려는 듯 압연공장의 침수가 냉천정비사업 때문이라는 점을 에둘러 드러내고자 한다.

냉천 정비사업의 문제가 불거지자 갑자기 냉천의 홍수조절을 위해서는 오어지 상류에 항사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여론몰이가 시작되었다. 과거 포항시는 홍수대비, 용수공급, 하천 유지수 확보를 위해 항사댐의 필요성을 내세웠지만 어느 한 가지에 대해서도 타당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다. 냉천은 진전지가 생긴 이후 건천이 되었는데 오어지 규모의 항사댐을 통해 유지수를 확보한다는 계산은 답이 나올 수가 없다.

항사댐은 홍수를 막을 수 없다. 항사댐은 용수공급과 하천유지수로 턱없이 부족하다. 있지도 않은 항사댐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도 모자라 환경단체의 반대 때문에 항사댐 건설이 무산되었다는 원망을 하며 경상북도와 포항시는 최근 중앙부처에 항사댐 건설을 건의했다.

▲ 냉천 상류 다리 문충교. ⓒ정침귀

▲ 포항 냉천 최하류. ⓒ정침귀

지방하천 재자연화 모색해야

비록 태풍은 불가항력의 천재지변이지만 포스코를 포함한 포항시 전역이 전례 없는 피해를 입은 것은 부실한 하천정비와 안일한 사전 대비가 부른 인재이다. 하류로 갈수록 좁아지는 하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친수시설로 치장을 한 하천정비사업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지방하천을 생태하천도 아니고 고향의 강도 아닌 공원으로 만들어 하천의 기능을 축소시킨 이 나라 하천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하천에 대한 인식의 전환으로 지방하천 재자연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 과정에 지역주민의 참여는 필수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 자주 더 세게 찾아올 자연의 절규에 우리는 지금 당장 응답해야 한다.

ⓒ정침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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