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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의 행태가 철도 현장을 파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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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토부의 행태가 철도 현장을 파괴하고 있다

[기고] 국토부와 철도경찰은 노동 혐오를 멈춰야 한다

안하무인 국토부의 행태가 철도 현장을 파괴하고 있다. 지난 8월 15일, 기후 변화 영향으로 폭우와 폭염이 교차하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출근한 기관사가 있었다. 그는 수색 차량기지에서 경부선 무궁화호 객차에 기관차를 연결하기 위해 운전을 시작했다. 기관차와 객차가 연결되고 각종 점검이 끝나면 기관사는 빈 객차가 연결된 열차를 서울역으로 운행한다. 서울역에서 승객들이 타고 출발 시간이 되면 무궁화호는 부산까지 달리게 된다. 그런데 이날 승무에 나선 기관사는 기관차를 객차에 연결하기 전에 사고를 일으켰다. 차량기지 안에서 진행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서 실수로 제 위치에 정차하지 못했다. 기관차는 차량 정지 표지를 지나 8개의 기관차 바퀴 중 앞바퀴 2개가 선로가 설치되지 않은 곳으로 탈선했다.

열차가 탈선한 곳은 오르막길로 이어진 곳이었고 탈선장소 앞에 설치된 열차정지표지는 수풀에 가려져 있었다. 기관사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지만 부산행 열차는 다른 기관차로 대체되어 서울역에서 정시보다 6분 늦게 출발, 종착역인 부산역에는 2분 늦게 도착했다. 탈선 현장에는 긴급조치반이 출동하여 4시간 만에 복구하고 정리됐다.

이제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기관사에 대한 조사를 거쳐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분석과 이에 따른 대안 마련 조치가 진행될 차례였다. 아울러 조사 결과에 따른 기관사에 대한 회사의 징계조치도 예정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토부의 지시를 받은 철도사법경찰(이후 철도경찰)이 치고 들어왔다.

철도경찰은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해야겠다는 입장이다. 철도경찰이 적용하겠다는 법은 철도안전법 78조 1항의 2호 및 5항이다.

제78조(벌칙)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1. 사람이 탑승하여 운행 중인 철도차량에 불을 놓아 소훼한 사람

2. 사람이 탑승하여 운행 중인 철도차량을 탈선 또는 충돌하게 하거나 파괴한 사람

② 제48조제1호를 위반하여 철도시설 또는 철도차량을 파손하여 철도차량 운행에 위험을 발생하게 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과실로 제1항의 죄를 지은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④ 과실로 제2항의 죄를 지은 사람은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⑤ 업무상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로 제1항의 죄를 지은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⑥ 업무상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로 제2항의 죄를 지은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⑦ 제1항 및 제2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11일 오전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조합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철도안전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현행 철도안전법은 사고·장애 발생 시 종사자인 기관사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운영사와 정부는 책임을 면피하고 있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법치주의는 법의 과잉이 아니다!

제78조의 법 정신은 철도차량의 안정적 운행을 방해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사람, 즉 여객이 탑승한 차량은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기지내에서 기관차 단독 운행 중 과실로 인한 사고를 승객에 피해를 준 사건과 등치시키는 것은 법조항을 부당하게 확대해석한 것이자 법의 과잉이다. 법 집행에 있어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법 적용의 엄밀성이자 적확성이다. 법은 열려있으면 안된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 악법들이 그랬다. "기타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 등" 같은 조항이 삽입되어 정권의 입맛대로 경미한 사고를 내거나 무고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멀쩡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었다.

철도경찰은 78조 2항의 "사람이 탑승하여 운행 중인 철도차량을 탈선 또는 충돌하게 하거나 파괴한 사람"에서 기관사도 사람이 탑승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관철되면 앞으로 78조 2항으로 처벌될 사람은 철도 운행을 방해한 외부자가 아니라 기관사들로 채워질 게 분명하다.

철도사고는 단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시설의 문제, 안전시스템의 미비, 인적 오류 등 다양한 인과관계들이 섞여있다. 그러므로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로 이어지도록 연계된 사항들을 분석하고 각 단계 마다 필요한 안전대책이 무엇이었는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사고 이후 대처는 그 사고와 가장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 같은 사람에 대한 엄벌주의는 사고를 예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고의 진짜 원인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게 만들기 조차한다. 엄벌주의가 팽배한 곳에서는 책임회피를 위한 다양한 행동이 뒤따라 어떻게든 원인을 은폐하고 다른 희생양을 찾게 만든다. 이런 연유로 철도선진국들은 진즉에 "책임자 처벌에서 원인 규명으로"란 자세로 사고대처를 하고 있다.

누가 그랬어?가 아니라 왜 사고가 일어났는가?가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인 것이다.

기관사들을 분노케하는 일은 모든 사고를 법대로 하자고 나서는 국토부와 철도경찰의 태도이다. 철도경찰의 가장 큰 역할은 철도 종사자와 철도시설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철도경찰에 주어진 사법권은 철도 현장 노동자들을 향해 휘두르는 몽둥이가 되고있다. 철도 사고는 기본적으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가 맡아야 하고, 항철위가 개입할 수준이 안되는 사고들은 철도운영사가 중심이 되어 조치를 해야 한다. 그래야 원인규명과 안전대책 수립이라는 과정을 확보할 수 있다.

철도경찰의 가장 큰 문제는 철도를 모른다는데 있다. 철도의 운영원리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프로세스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결과만 보고 법 문구를 적용하고 처벌에 나서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철도 현장은 사고로부터 배우기는커녕 전과자 양성소로 전락하게 된다.

혐오에 기반한 엄벌주의로는 철도안전 지키지 못해

국토부와 철도경찰의 행태속에는 지독한 노동혐오가 깔려있다.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하바드 대 석좌교수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혐오는 무지에서 온다고 말한다. 철도 또는 철도 현장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찬 국토부와 철도경찰에게 철도 노동자들은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공기업 다닌다며 고액연봉을 받는데 파업만 일삼는 사회적 병폐 세력에게 법의 준엄한 심판은 당연한 것이다. 마사 누수바움 교수는 "우리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보복, 즉 응보적 정신으로 징벌을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취하거나 구조적인 거대한 문제를 이를 초래하지 않은 개인이나 집단의 탓으로 돌리는"것은 폐쇄적인 사회의 특성이다. 누수바움은 "불행한 사건을 특정인의 탓"으로 돌리면서 얻는 위안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2019년 12월 3일에 있었던 벨기에 형사법원의 판결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0년 바위징엔역 열차충돌로 19명이나 사망한 대형 사고에 대해 근 10년이나 이어졌던 재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정지신호를 오인했거나 무시하고 사고를 유발한 혐의를 받았던 기관사에게는 유죄가 인정됐지만 형사처벌은 하지 않는 것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은 기관사에게 3년 형을 구형했지만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구형을 철회하고 사실상 무죄라고 선언했다. 검사는 3년형을 구형한 기관사에게 사과의 뜻도 밝혔다. 만약 한국에서 기관사가 신호를 잘못 봐 대형 충돌사고가 났다면 다른 요인은 무시하고 엄한 처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재판장의 주요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열차 기관사는 안전 체계에서 최후의 연결고리일 뿐, 유일한 보호수단은 아니다"

이어서 세계 최고의 철도 시스템을 자랑하는 스위스 연방철도가 제정한 기관사 등 현장 노동자 업무의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살펴보자.

ⓒ박흥수

위 표에서 보여 지듯 착각, 태만, 소흘 등으로 일어나는 인적 오류가 허용되고 있다. 이 같은 오류를 허용한다는 의미는 이런 오류를 범하라는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발생 가능할 수 있으니 시스템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관사는 운행 중 수십, 수 백 개의 신호와 표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전체 운행시간을 각성된 상태로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인적오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를 방어할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철도안전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과 철학은 한국의 관료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철도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처벌의 칼춤만 추려고 하는 한국에서는 최소한의 합리적 태도나 인권감수성 조차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철도경찰에 부여된 사법권은 망나니의 칼춤용이 아니다.

철도안전법은 철도 위해 요소로부터 철도노동자와 시설을 보호하는 도구여야 한다. 사고 관련 기관사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법에 의거하지 않아도 되는 사안을 억지로 확대해석한 조항으로 기관사를 압박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전국의 철도와 지하철 기관사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옮기다 실수로 파손한 사람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는 강력한 사법처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처럼 보인다. 사법권의 남발은 철도 현장을 황폐화시킬 뿐이다.

국토부와 철도경찰이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길 바란다. 탈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탈선에도 불구하고 다른 열차에 지장을 주지 않았으며 탈선에도 불구하고 4시간 만에 원상 복구되었으며 탈선에도 불구하고 열차는 종착역에 2분밖에 늦지 않았다. 반면 기관사는 두 달이 넘도록 자책과 반성을 하고 있고 회사의 징계를 달게 감수할 생각임에도 법정에 서야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런 사고에 대해 책임을 물어 기어이 기관사를 재판정에 세워 단죄를 해야 속이 시원한 것인지 묻고 싶다.

인간다운 세상을 바라며 희망을 노래한 존 레논이 그의 부인 요코와 함께 세상을 향해 든 피켓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DON’T HATE WHAT YOU DON’T UNDERSTAND!!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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