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World Bank)이 2015년 파리협정 이후부터 현재까지 화석연료 사업에 148억 달러(한화 약 2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직·간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세계은행은 2018년 파리협정 목표를 준수할 수 있는 금융 흐름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이후로도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 협약이다.
50개 이상 시민단체가 속한 '거대한 전환'(The Big Shift Global)은 6일(현지 시각) 2018~2021년 동안 세계은행그룹의 투자 흐름을 분석한 '기후재앙에 대한 투자 : 세계은행의 화석연료 금융'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 같은 사실을 지적했다.
보고서가 지적하는 핵심은 세계은행의 간접적인 투자 행태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2019년 석유와 가스 추출에 대한 금융 지원을 중단한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화석 연료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는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다른 금융기관을 매개로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되는 간접투자의 규모는 여전히 크다는 것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세계은행이 다른 은행 등 매개 금융기업(financial intermediary)에 자금을 빌려주면, 자금을 대출받은 금융기업은 다시 대출, 채권 등의 형태로 화석연료 기반 산업에 관련된 사모펀드, 은행, 개인 등에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결국 이러한 간접투자 흐름 또한 세계은행 자금이 화석 연료 산업에 투자되는 꼴이라고 단체는 비판한다. 특히 개발도상국 내에서의 간접투자가 많았다. 세계은행그룹 산하기관 국제금융공사(IFC)는 개발도상국 내 민간부문 발전, 민간자본 흐름 등을 지원하는데 IFC의 투자 포트폴리오 절반이 간접투자 방식이다.
보고서는 "간접 투자는 세계은행이 화석연료 산업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세계은행 자체적인 친환경 투자 기준을 만족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세계은행그룹의 기후 정책에 커다란 구멍(loophole)이 뚫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체는 특히 세계은행의 간접 투자 행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업 5개를 지적했다. 그중 하나가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에 건설중인 자바 9·10호 석탄화력발전소다. 2000메가와트(MW)급 석탄발전소인 자바 9·10호는 한국 기업이 대거 관계되어 있다.
한국전력이 투자를 진행했고, KEB하나은행 자회사인 하나은행인도네시아도 자바 9·10호 건설 기업(PT Indo Raya Tenaga)에 투자하고 있다. 보고서는 IFC가 하나은행인도네시아에 2007년부터 지분 투자, 대출 등 자금을 지원하고 있고, 하나은행인도네시아가 이를 다시 석탄 발전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바 9·10호가 건설되면 매년 1000만 톤, 25년 동안 약 2억5000만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네시아 지역 주민의 피해도 예상된다. 2019년 그린피스의 분석에 따르면 자바 9·10호기가 운영되는 30년 동안 오염 배출로 인해 2400명에서 7300명의 주민이 조기 사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하나은행인도네시아가 석탄발전 사업 투자를 철회하지 않으면 IFC가 가진 지분을 빼야 한다고 지적한다. 2020년 IFC는 녹색자산어프로치(Green Equity Approach)를 발표하며 금융기관이 2030년까지 석탄 관련 사업 투자 종료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투자를 철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나은행인도네시아가 자바 9·10호에 투입한 대출은 2035년까지다. 투자를 철회하지 않는 이상 2030년까지 석탄 관련 산업을 제로(0)로 줄여 IFC의 기준을 만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단체는 세계은행에 "모든 직·간접적인 화석 연료 자금 투자를 당장 멈춰야 하고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을 높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세계은행은 기후위기에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 쓰였다는 자금 또한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오고 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추천으로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된 데이비드 맬패스(David Malpass)는 지난달 <뉴욕타임즈> 주최 기자회견에서 "사람들이 화석 연료를 태우는 게 빠르고 위험하게 지구 온도를 상승시킨다는 과학자들의 평가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잘 모른다, 과학자가 아니다"라고 답해 기후부정론자로 비판받으며 사퇴압박을 받고 있다. 세계은행 지분이 가장 많아 사실상 총재 선임권을 가진 미국 백악관 또한 맬패스의 발언을 비판했다.
또한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옥스팜(Oxfam)은 지난 3일 보고서를 통해 세계은행이 발표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투자 중 40%, 약 70억달러(한화 약 9조9000억 원)은 어떻게 기후위기 대응에 투자되고 있는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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