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미디어의 개혁과 혁신을 통한 건강한 공론장의 복원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공감과 상생과 신뢰의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핵심 과제다. 100여 년 전 미국의 혁신주의를 선도하며 저널리즘 황금기를 일구어 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사례에서 위기극복을 위한 해법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머크레이킹'과 '머크레이커'가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저널리즘 기본 원칙을 기반으로 공론장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행정당국, 국회, 미디어 사업자와 종사자, 그리고 시민·소비자·이용자 등 4주체 각각의 '권한'과 '책임'이 조화롭고 호혜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언론자유와 책임의 균형, 정치적·경제적 독립, 공공성과 산업성의 조화, 공영방송(공공미디어)의 핵심적 공론장 모델 설계 등의 당면 과제, 그리고 관련 정책 이슈들 역시 토론과 숙의, 상호 이해와 조정, 건전한 경합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언론·미디어의 개혁과 혁신을 위한 공론장 '미디어혁신(개혁)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하는 GDP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유엔 지속 가능 해법 네트워크(UN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의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9~2021년 평균 행복지수 순위는 146개국 중 59위다.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서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는 2020년과 2021년 23위였고, 2022년에는 63개국 중 27위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2015~2019년 세계 거버넌스 지수(WGI) 가운데, ‘정부와 정치, 사회의 안정 정도’를 나타내는 ‘정치적 안정성’은 OECD 37개국 중 30위, ‘정부의 정책수립 및 이행능력, 공공정책의 질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독립 정도’를 나타내는 ‘정부 효과성’은 22위였다. 경제성과는 국민 행복도나 국가경쟁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함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정치·사회적 갈등이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WGI의 ‘정치적 안정성’과 ‘정부 효과성’ 지수를 활용하여 ‘정치·사회·행정 불안정성 지수’를 산출했는데, OECD 37개국 중 27위였다. 한경연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치‧사회‧행정 불안정 지수가 OECD 1위 국가 수준으로 개선될 경우, 1인당 GDP성장률은 0.7%p 상승한다.
우리가 체감하는 사회적 갈등 정도는 국내외 보고서 데이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6월 영국 킹스컬리지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념, 빈부, 젠더, 학력, 정당, 나이, 종교 등 7개 부문에서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조사대상 국가 중 가장 높았다. 뉴스1이 빅데이터 분석업체 타파크로스에 의뢰해 언론 기사와 SNS에서 언급된 갈등 관련 데이터를 추출하고 분석하여 지수화한 결과, 2018년 이후 우리 사회의 갈등 정도는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물론, 이들 조사 결과를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국가 순위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각 국가의 정치·사회·문화적 맥락, 국민들의 인식과 태도, 평가 기준 등이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갈등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요소 중 하나다. 갈등 없는 조직이나 사회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갈등 공화국’이라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문제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갈등과 갈등의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과 태도’에 있다.
갈등 공화국, 무엇이 문제인가?
2022년 현재,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기관과 조직이 개혁과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지난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시대정신으로도 여겨졌던 이른바 “적폐청산(積幣淸算)”의 본질 역시 개혁과 혁신에 다름 아니다. 적폐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여 온 잘못된 관행과 악습, 부패와 비리 등의 폐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청산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과 악습, 폐단’이며, 적폐청산의 핵심과 본질은 ‘시스템과 조직문화’를 개혁하고 혁신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2020년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였다.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의미의 신조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문으로 옮겨 만든 사자성어 신조어다.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서로를 상스럽게 비난하고 헐뜯는 소모적 싸움만 무성할 뿐 협업해서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2021년에는 '묘서동처(猫鼠同處)'가 선정되었다.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고 한 패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다. “각 처에서 또는 여야 간에 입법, 사법, 행정의 잣대를 의심하며 불공정하다는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국정을 엄정하게 책임지거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데 감시할 사람들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통속이 돼 이권에 개입하거나 연루된 상황을 수시로 봤다.”는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다.
'아시타비'와 '묘서동처'는 ‘갈등과 갈등의 대상’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과 태도’를 보여주는 현주소다, 나아가 공론장(public sphere; 公論場)의 붕괴를 상징한다. 예컨대, 공론장의 대표격으로 볼 수 있는 국내 언론·미디어가 개혁과 혁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는 이미 오래다. 2014년 세월호대참사를 계기로 확산되기 시작한 ‘기레기’라는 멸칭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른바 ‘가짜뉴스(fake news)’의 온상지라는 비난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 비판의 객관적 근거이자 데이터로 활용되는 것이 ‘언론자유지수’와 ‘뉴스 신뢰도’ 국가 순위다.
언론자유지수는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180개 국가의 언론자유 침해 사례를 정량적으로 조사한 뒤 전문가 대상 설문 조사 결과를 더해 산출한 결과다. 180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순위는 2021년 42위, 2022년 43위다. 2009년 69위, 2016년 70위까지 하락했던 것에 비하면 언론자유가 크게 상승했다는 평가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뉴스 신뢰도 순위는 '뉴스 보도를 늘 신뢰하는 편'이라는 응답률을 바탕으로 한다. 2021년에는 응답률 32.07%로 39위(46개국 평균 44%), 2022년에는 30%로 40위(46개국 평균 42%)다. 2017~2020년 연속 세계 최하위였던 것에 비하면 긍정적인 결과지만, “뉴스 보도를 늘 신뢰”한다는 평가는 여전히 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순위 역시 여전히 최하위권이다.
‘언론자유지수는 아시아 1위, 뉴스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양대 글로벌 지표는 ‘언론자유라는 권리만을 향유하며 마땅히 이행해야 할 책임과 역할은 방기’하고 있으며, 나아가 '아시타비' 혹은 '묘서동처'의 공범(혹은 주범)이라는 비난으로 이어진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언론자유지수와 뉴스 신뢰도의 ‘국가 순위만’으로 언론·미디어 공론장의 현재를 단순화하거나 혹은 모든 언론·미디어, 모든 저널리스트를 기레기로 호명하는 인식과 태도는 극히 위험하다. 우리 사회가 축적해 온 긍정적 자산과 공론장의 복원 가능성을 말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양대 글로벌 지표는 언론·미디어 개혁 및 공론장 복원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는 데에 유용한 참고자료 중 하나로 활용하되, 보다 분석적이고 성찰적인 검토가 수반되어야 한다.
공론장의 위기, 그 배경에 무엇이 있나?
RSF는 언론자유를 ‘언론인이 정치적‧경제적‧법적‧사회적 간섭에서 자유롭고, 신체적‧정신적 안전에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 공익을 위해 뉴스를 선택‧제작‧전파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매년 언론자유지수 순위의 상위권에 올라있는 국가들은 언론자유와 책임의 조화 및 균형을 지향하는 법제도 그리고 관련 지원 정책 마련에 적극적인 북유럽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시장의 자유경쟁 매커니즘이나 자율규제를 중시하며 규제 완화를 강조하는 미국의 언론자유지수는 2021년 44위, 2022년 42위에 머물러 있다.
아시아지역 국가의 언론자유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자. 2021년 RSF는 한국, 뉴질랜드, 호주, 대만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언론자유 모델을 들어 “전반적으로 언론인들의 임무 수행을 막지 않고, 언론인들이 정보를 전달할 때 정부당국의 주장이 들어가도록 강요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독립과 자유의 확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반면, 2022년에는 한국, 호주, 일본 등의 언론자유 상황에 대해 “거대 기업 집단이 미디어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지배력은 언론인과 편집국의 자기 검열을 부추긴다.”고 평가했다. 자본의 지배로 말미암아 언론의 경제적 독립과 자유가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한편,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에서도 유용한 시사점을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뉴스 신뢰도 순위 상위권은 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인데 이들 국가는 공영방송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각각의 국가에서 공영방송 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약 60% 내외로 가장 높다. 오프라인은 물론이고, 온라인에서도 자국의 공영방송 뉴스 사이트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반면, 미국 이용자들이 “뉴스를 늘 신뢰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021년 29%, 2022년 26%에 불과했다. 순위는 46개국 중 최하위다. 2022년 조사결과에서 미국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뉴스 매체의 경우, 오프라인에서는 지역TV, 온라인에서는 야후 뉴스였다. 모두 민간상업 매체다.
둘째, 전 세계적으로 TV나 신문 등 전통적인 뉴스 매체보다 온라인을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해외 이용자들의 온라인 뉴스 이용 1순위 경로는 방송사나 신문사 등에서 운영하는 뉴스 웹사이트 및 뉴스 앱이다. 반면, 우리나라 이용자들이 뉴스 웹사이트나 앱을 직접 이용하는 정도는 조사대상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1순위 경로는 포털 등 검색 엔진과 뉴스 수집 서비스이며, 온·오프라인의 모든 뉴스 매체 중에서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압도적으로 많이 이용하다. 유튜브 뉴스 이용 비율 역시 해외 이용자들보다 높다.
셋째, 우리나라 이용자들의 경우,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를 읽는다는 응답 간 격차가 해외 이용자들보다 크다. 선택적 뉴스 회피 이유 중에서는 “뉴스를 신뢰할 수 없거나 편향적”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는데, 응답률이 46개국 평균보다 높다.
이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우리 공론장의 현실은 공영방송을 포함한 모든 매체와 채널과 플랫폼이 포털과 유튜브에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광고 및 상업적 수익만을 바라보며 시청취율 전쟁이나 클릭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자본에 의한 경제적 예속 가능성에 다름 아니며, 포털과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으로 인한 필터버블(Filter Bubble) 현상이 그 어느 국가보다 강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여기에 정치권력이 언론·미디어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정치적 후견주의’, 언론·미디어가 정치권력을 견인해 가는 ‘정치 병행성’ 등에 의해 정치적 독립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재차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적 현실이 개선되거나 해소되지 않는 한, '아시타비'와 '묘서동처'로 상징되는 사회적 갈등의 치유 및 붕괴된 공론장의 재건은 요원하다.
공론장의 건강성 복원을 위한 탐구
공론장이란 각종 정책의 결정 및 이행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론(公論)’을 형성해 가는 공간이다. 서로 다른 입장과 주장 또는 합의되지 않은 의견들이 무엇인지 새롭게 발견해 내는 과정이자 통로이며 공간이기도 하다. ‘공론’이라는 것이 충분한 정보의 습득 및 열린 토론을 거쳐 형성된다는 점에서 공론장은 단순여론의 전달이나 미확인 정보의 각축장 등과 명확히 달라야 한다. 정치적·경제적 지배 또는 대중의 동원과도 명확히 다르다. 무엇보다 주목하고 천착해야 할 공론장의 본질은 민주적·공개적·비폭력적 방식의 ‘토론’과 ‘숙의’, ‘상호 이해’와 ‘조정’, 그리고 건전한 ‘경합’이다.
다양한 ‘공론들’이 형성되고 호혜적으로 경합하는 장(場). ‘혐오’와 ‘배제’가 아니라 ‘공감’과 ‘상생’을 생산해 내는 장. 즉, 공론장의 건강성을 복원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미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Ida Minerva Tarbell, 1857~1944)과 탐사저널리즘 실천 사례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아이다 타벨과 탐사저널리즘
국내에서 타벨은 낯선 인물이다. 하지만 서구사회에서는 탐사저널리즘의 개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26대 미국 대통령 시오도어 루즈벨트의 혁신주의와 사회 개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가장 유명한 것은 맥클루어스 매거진에 연재한 19회 분량의 연재기사(1902~1904)다. 기사를 모아 출간된 단행본 <스탠더드오일의 역사(The History of the Standard Oil Company)>(1904)는 1999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세기 저널리즘 분야의 대표 도서 100권 중 5위로 선정되기도 한 불후의 명작이다.
타벨의 기사는 명확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그 핵심과 배경과 맥락을 정확히 분석하고 해설하는 것이었다. 복사기나 인터넷 검색 등 문명의 이기가 전혀 없던 그 시절, 전국 각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각종 자료와 소소한 정보까지 모두 수집하여 꼼꼼히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이들 정보를 확인하고 검증하기 위해 관련 인물과 정보원을 수소문하고 만나 취재에 취재를 거듭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정보원은 최대한 명시했고 익명의 정보는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기사 작성자가 누구인지도 밝혔다.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방식이다.
타벨은 끈질긴 취재와 보도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존 D. 록펠러와 트러스트 스탠더드오일을 무너뜨렸다. 철저한 비밀주의로 은폐되었던 비리와 부패, 유력 정치인들과 얽힌 각종 범죄 행각을 낱낱이 밝혀냈고, 이들의 행태가 미국 사회의 민주주의마저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공론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세계 석유 시장의 약 95%를 독점하고 있던 스탠더드오일의 해체라는 역사적 판결을 이끌어 냈다. 금권부패로 얼룩져 있던 자본주의의 모순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타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으며, 미국 저널리즘의 황금기를 일구어 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저널리즘의 힘을 증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타벨을 위시한 저널리스트들의 헌신적인 노력, 이들의 기사와 노력에 호응하며 사회 개혁에 동참한 시민들, 위험을 무릅쓰고 관련 정보를 제공해 온 내부 고발자들, 그리고 타벨과 동료 저널리스트들의 버팀목이 되어 준 맥클루어스 매거진의 사주 맥클루어 등이 있었다. 당시 미국의 사회 개혁과 저널리즘 황금기는 이들 모두의 협업이 만들어 낸 성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른바 ‘머크레이킹(muckraking)’의 무분별한 확산이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머크레이킹은 ‘정계나 유명인사 등의 부패, 스캔들을 파헤치는 행위’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본래의 의미는 ‘거름이나 오물을 모으는 갈퀴’다. 탐사저널리즘이 각광을 받자, 치밀한 취재나 탄탄한 근거의 뒷받침 없이 폭로성 기사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행태가 빈발한 것이다. 정치인, 기업, 저명인사의 부패와 스캔들 수집에 혈안이 되어 팩트 체크도 없이 부정확한 기사를 보도하거나 또는 거짓인 줄 알면서도 폭로전에 나서는 행태, 대중의 흥미 유발에 중점을 두고 사소한 이슈를 침소봉대하는 방식의 선정적 기사들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점차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광고 제공을 망설였다. 시민의 지지와 경영기반을 모두 잃게 된 탐사저널리즘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미국의 저널리즘 황금기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탐사저널리즘과 머크레이킹
탐사저널리즘과 머크레이킹은 숨겨진 비리와 의혹을 추적하여 폭로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저널리즘 황금기를 일구어 낸 탐사저널리즘, 그리고 저널리즘 황금기의 쇠락을 자초했다고 평가받는 머크레이킹은 분명 다르다. 충분한 취재와 명확한 근거, 정확한 분석이 결여된 머크레이킹은 특정 의혹이나 음모론을 무책임하게 설파함으로써 건강한 토론과 경합을 저해한다. 편 가르기, 정파적·이념적 대립, 젠더·지역·세대 간의 갈등만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당시, 미국 사회의 혁신과 개혁에 크게 일조했던 저널리스트들은 머크레이커(muckraker, 추문폭로자)라는 호명을 불편해 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이른바 ‘기레기’라는 멸칭과도 흡사해 보인다. 타벨과 저널리스트들은 머크레이킹과 머크레이커라는 호명이 “순수하게 (사회개혁을) 목표로 하는 우리들의 일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머크레이킹이라는 호명과 비판의 시초로 알려진 루즈벨트 대통령은 충분한 취재와 검증 없이 선정적 기사를 남발하는 행태에 대한 주의 환기일 뿐이라며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머크레이킹과 일선을 그어야 할 저널리즘의 원칙과 본질은 무엇일까? 100여 년 전 타벨의 실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저널리즘의 본질은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열정과 진정성, 저널리스트로서의 소명의식과 핵심을 꿰뚫어 보는 문제의식, 부조리한 현실과 모순에 대한 건강한 분노, 인간에 대한 예의 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열정과 진정성과 문제의식을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내고 건강한 분노를 따뜻한 공감으로 모아내기 위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 끊임없는 조사와 취재이며 이를 관찰하고 분석해 내는 치열함과 냉철함이다.
일견 당연하거나 진부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원칙과 본질은 뉴스 가치 판단을 시작으로 특정 이슈의 선택과 강조와 배제 과정을 거쳐 특정 프레임과 담론을 형성하는 토대로 작동한다. ‘물리적·객관적 현실’이 동일하더라도, 전혀 상이한 ‘사회적 현실’을 구성하고 창조하는 원천이다. 공정성과 편파성(정파성), 무색무취한 보도나 기계적 중립 등에 관한 논란을 넘어서기 위해 더더욱 중요한 원칙이자 본질이다.
왜 다시, '미디어혁신(개혁)위원회'인가?
머크레이킹이 횡행하면서 저널리즘 황금기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20세기 초, 미국 사회에서는 황색 저널리즘 또는 매춘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언론·미디어의 폐해를 개혁하기 위해 법적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힘을 얻고 있었다. 미국 저널리즘의 위기였다.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언론·미디어의 위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당시 미국에서는 언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47년 허친스 보고서(Hutchins Report)가 공표되었다. 보고서에서는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free and responsible press)”, 나아가 “자유롭고 어카운터블한 언론(free and accountable press)”의 실천을 권고했다. 그리고 언론·미디어의 역할과 책임으로 크게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사실에 충실해야 하며, 그날 그날 발생하는 이슈들을 다른 이슈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둘째, 이슈에 관한 해설 및 비판을 공유하고 교환할 수 있는 포럼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의 구도를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 넷째,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목표와 가치를 명료하게 제시해야 한다. 다섯째, 시대 선구적인 정보를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허친스 보고서의 권고는 언론자유를 법적·도덕적 권리로 인정하고 그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언론·미디어 환경이 크게 변화해 왔고, 다양한 저널리즘 실천 유형이 등장해 왔지만, 언론자유와 독립에 관한 철학적·사상적 기반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핵심적 가치이자 규범이다.
다만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널리스트 개개인의 사명감이나 언론·미디어 각사의 개별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일례로, 사실관계 확인 부족, 정치적 편향, 출입처 동화, 자사 이기주의, 시청률 집착, 관습적 기사 작성 등의 문제들이 저널리즘을 병들게 하고 공론장의 건강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크레이킹에 가까운 보도 행태와 관행이 좀처럼 사라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론장의 건강성 회복은 정부와 행정당국, 국회, 미디어 사업자와 종사자, 그리고 시민·소비자·이용자 등 4주체 각각에게 부여된 ‘권한’과 ‘책임’이 조화롭고 호혜적으로 이행될 때만이 가능하다. 관련 정책과 법제도적 토대, 언론·미디어 각사의 윤리적·도덕적 조직문화, 시민주권에 상응하는 책임 있는 시민참여 등 모두의 노력과 범사회적 실천이 만났을 때 총체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협업과 실천, 그리고 제도적 보완과 지원이 수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시민사회 영역과 학계 전문가들이 ‘미디어혁신(개혁)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다. 미디어혁신(개혁)위원회의 설치는 현 정부의 대국민 약속이기도 하다.
언론·미디어의 개혁과 혁신은 우리 사회 공론장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출발점이자 전방위적 사회 개혁 및 혁신의 토대이기도 하다. 언론자유와 책임의 균형, 정치적·경제적 독립, 공공성과 산업성이라는 양가성의 조화, 미디어 생태계를 견인해 가야 할 공영방송(공공미디어)의 핵심적 공론장 모델 설계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해묵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에 관한 논의와 연구는 수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다양한 해법과 실천 방안들도 이미 제안된 바 있다. 이들 당면 과제와 이슈들, 관련 해법과 실천 방안들 역시 공론장에서의 토론과 숙의, 상호 이해와 조정, 그리고 건전한 경합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각각의 과제와 관련 정책 이슈들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혹은 파편적으로 논의하거나 해결하려고 한다면, 의도치 않은 오해와 또 다른 갈등만 양산할 뿐이다.
언론·미디어의 개혁과 혁신을 위한 공론장 '미디어혁신(개혁)위원회'의 설치. 공론장의 건강성 복원을 지향하는 범사회적 요구와 성찰과 실천들이 정치적 유불리나 관련 업계의 이해상충, 그리고 '적대적 공생'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묻혀 그 출발마저 무산되거나 혹은 좌초되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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