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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교 학생회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한 푸른 눈의 총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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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교 학생회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한 푸른 눈의 총학생회장

[유럽人터뷰] ② 독일 카셀대학교 총학생회장 토비야스 쉬노어

스물일곱의 나이였던 1998년 짐 가방 하나 백팩 하나 달랑 메고, 이스라엘로 떠났던 청년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이스라엘의 지역 공동체 키부츠 예히암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온 여학생과 이야기가 잘 통해서 단짝 친구가 되었다가 금세 애정 관계로 발전해서 아예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평생의 연인과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자신 삶의 절반 가까이를 유럽에서 살아왔고, 네덜란드 국적 취득을 위해 한국 국적은 포기했지만, 자신은 영원히 한국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사람으로서 유럽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대화를 프레시안에 기고합니다. 두 번째 인터뷰로 독일 카셀대학교 내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한 토비야스 쉬노어 학생회장과의 대화를 전합니다. (필자)

지난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등 한국의 극우인사들이 독일 미테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앞까지 원정투쟁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거짓이며, 이들은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기도 해서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 내에서도 많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일본 극우의 주장을 그대로 베껴와서 앵무새처럼 외치는 극우 원정 시위대에 맞서 매일 수십에서 백여 명의 독일 시민과 한국인, 일본여성모임 회원들이 나왔습니다. 극우단체의 역사 왜곡에 야유를 퍼붓고, 아직도 '위안부' 동원에 대해 진정 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며칠 후인 7월 8일에는 독일 동부 카셀대학교 총학생회가 평화의 소녀상을 학생회관 앞마당에 설치하는 제막식을 열었다는 반가운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7월9일 자 독일 카셀 주립대 학생들, 캠퍼스에 소녀상 영구설치)

소녀상 건립을 제안하고 성사한 주인공은 총학생회장 토비아스 쉬노어(29세)입니다. 독일 대학교의 총학생회장이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나서게 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9월 10일 카셀대학교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건립 후원자의 동판 전달식 행사에 참여해 토비아스를 만났고 14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 소녀상 건립을 제안하고 성사한 주인공은 총학생회장 토비아스 쉬노어(29세)와 지난 14일 온라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토비야스는 카셀대학교의 총학생회장이다. ⓒ장광열

장광열 :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어제 베를리너자이퉁(Berliner Zeitung)신문에 8년 동안 연방의회 의원을 지낸 독일 기독민주당(CDU) 소속 엘리자베스 무트쉬만(Elisabeth Mutschmann) 의원이 기고한 글에 대해서 물어보겠습니다. (기고문)

그 의원은 베를린 미테 구에 세워져 있는 소녀상에 대해서 일본정부가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일본군 '위안부' 사안에는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역사 해석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오는 9월 28일까지인 동상 설치 허가 기간을 끝으로 설치 연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합니다. 대신 평화를 상징하는 범세계적인 기념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토비야스 : 독일 기독민주당(CDU)의 전 연방의원 엘리자베스 무트쉬만은 일본 제국과 일본군의 전시 성폭력이 유럽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독일 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정치적 이상뿐 아니라 물질적 자원도 함께 지원했습니다.

평화의 동상을 소수의 한국 활동가의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뻔뻔한 일입니다. 오히려 전쟁 당시의 세부사항을 종합적인 관점에서 보면 독일 제국이 일본 제국의 전쟁이나 사회범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전시 성폭행 피해자와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은 일본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중국,대만 등 훨씬 많다는 점을 알면서도 무시했어요. 엘리자베스 무트쉬만 전 의원이 평화의 소녀상 대신 건립을 주장하는 전시물, 즉 "모든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기념비"는 이미 그 곳에 존재합니다. 바로 지금 있는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베를린과 카셀에 지금 서 있지 않습니까?

평화의 소녀상은 단지 2차 세계 대전 중 여성과 소녀들의 성노예가 된 것을 상기시키는 것뿐만이 아니예요. 그 소녀상에 붙여 진 이름은 아르메니아 여성 아리(Ari)와 쿠르드 여성 누인(Nujin)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모든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들과의 분명한 연대를 통해 여성과 소녀에 대한 성적 폭력을 전 세계적으로 상기시켰습니다.

장광열 : 카셀대학교 총학생회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 했나요?

토비야스 : 총학생회 대의원회를 통해서 결정을 내렸어요. 25명의 대의원이 진행한 대의원회에서 학생회관 앞 마당에 소녀상을 건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장광열 : 학교 당국이 평화의 소녀상의 철거를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학교는 왜 철거를 요청했나요?

토비야스 : 일본 정부는 카셀 지방정부를 통해서 카셀 대학교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카셀대학교 총장을 만나서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 합의로 보상을 끝냈고, 더 이상 거론 안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하면서요. 또 학교 내에 동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갈등을 유발하고 물리적 충돌을 낳을 수도 있으니 이런 위험요소는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 총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 '위안부' 이슈는 한일 양국 견해 차이가 많은 사안이므로 독일에 있는 우리 대학교가 소녀상을 건립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철거했으면 좋겠다고 전달했어요.

그러나 학생회는 소녀상은 우리 학문 연구의 소재라는 점을 들어서 보존하겠다는 뜻을 전했어요. 저희는 제국주의 이후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 소녀상 건립운동은 중요한 연구의 주제입니다. 그렇기에 계속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현재는 학교 당국과 소녀상 유지에 대한 협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 9월 10일 카셀대학교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건립 후원자의 동판 전달식 행사 ⓒ장광열

장광열 : 학교 당국이 강제로 철거에 나설 가능성도 있나요?

토비야스 : 학교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 땅의 이용권을 우리에게 줬었고, 평화의 소녀상은 코리아협의회가 총학생회장인 저에게 무상으로 임대해준 것입니다.

대학 당국은 원래 5년 마다 한번 열리는 행사인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기간 동안만 전시를 해달라고 요청했었죠. 하지만 시한을 문서에 적어 놓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철거 요청에 대한 법적 효력은 없습니다.

장광열 : 학교 내 역사 강사나 교수들의 입장은 어떤가요?

토비야스 : 학교의 교수들과 강사들 대부분이 학생회 의견에 동조해주었습니다. 또 소녀상 건립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일본 쪽과 토론도 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저희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하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지방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야 해요. 또 일본 정부 혹은 일본 기업이 후원하는 장학기금 또한 학교 입장에서는 중요한 기금입니다. 학교는 지방정부와 일본의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서 평화의 소녀상을 없앴으면 하는 생각을 할 겁니다.

결국 학교 재정 문제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를 한다면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거든요. 독일의 라이프치히도 마찬가지였어요. 거기에서도 소녀상을 설치하려고 했는데 일본 정부와 기업이 후원하는 재단 측에서 한국이 주장하는 '위안부'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면서 재정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라이프치히는 소녀상을 보존하지 않기로 했었지요.

장광열 : 돈의 힘이 대단하군요.

토비야스 : 그렇죠.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가 10억엔(100억 원)을 준다고 하니까 2015년에 '위안부' 합의를 한 것 아닌가요?

장광열 : 일본군 '위안부'의 규모와 심각한 여성 인권유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토비야스 :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로웠고, 잘 모르던 사실이었습니다. 버마(미얀마)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일본군 위안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서 단순히 몇 나라의 아시아 여성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장광열 :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지난 9월 10일 토요일에는 영화 '김복동'(감독 ) 상영회와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의 '위안부' 피해자 운동사에 대한 강연, 그리고 동상 건립 후원자 명단을 담은 동판의 헌정식 등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행사가 예정되어 있나요?

토비야스 : 앞으로 매달 행사를 열 계획입니다. 다음 달, 10월은 독일 대학교의 새학기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그래서 신입생을 위해서 '위안부'에 대한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할 계획입니다. 예술 작품 전시회, 뮤직 콘서트, 연말 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 중입니다. 그리고 카셀 내 한글 학교에서도 소녀상 주변 예쁘게 꾸미기 등의 행사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서구 사회는 일본군의 범죄에 대해 관대하다

장광열 : 일본은 독일과 2차 대전에 같은 동맹국이었습니다. 독일 역시 전쟁 당시 유태인을 포함한 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집단 학살을 저질렀고 일본도 마찬가지었습니다. 그런데 왜 독일에 비해서 일본의 2차 대전 당시 범죄행위에 대해서 서구 사회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걸까요?

토비야스 : 저희 대학교가 있는 카셀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탱크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어요. 유태인과 집시 등 많은 소수민족이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죠. 일본의 강제 징용과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학교 당국도 평화의 소녀상이 아닌 평화의 '상징물'을 세우는 것에는 문제없다는 입장입니다. 아시아에서 벌어진 일본군 '위안부' 동원은 독일과 무관하다고 말해요. 독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같은 곳이 우리가 다뤄야 할 지역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독일이 일본과 동맹을 맺었던 2차 대전 당시에 벌어진 일이고 제국주의 이후 시대 연구에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있는 동상이라는 것이 저희의 입장입니다.

장광열 : 독일과는 반대로 일본이 2차 대전의 수많은 전쟁 범죄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토비야스 : 저는 그런 입장 차이가 교육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독일에서 2차 대전 역사에 대한 교육은 아주 중요합니다. 현대의 독일인들은 전쟁 당시에 나치의 주도로 행해진 수백만에 대한 학살과 많은 전쟁 범죄 행위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독일 정치인들은 좌파,우파 상관 없이 일부 극우 정치인을 제외한 대부분은 전쟁범죄를 기억하자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기억하는 것과는 별개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부정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폴란드와 그리스가 수조 원 대의 피해 배상을 지난해 요구했지만 독일 정부는 거부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전쟁 당시 가해자였던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미국 등 연합국의 우방이 되면서 전쟁 범죄에 대해 기억하지 않고, 후대에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4년 정도 감옥에 가는 걸로 죗값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독일에 비해서 훨씬 가벼운 형벌이 일본군에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독일도 문제가 많았어요. 하지만 1968년 '68혁명'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과거 나치 전력을 가진 이들이 공직에 있었습니다. 1940~70년대까지도 그랬습니다. 당시 많은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나치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공직을 차지하고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당연히 느꼈습니다. '왜 이런 인물들이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사회 지도층 행세를 하고 있냐'고 따진 거죠.

저는 일본의 젊은이들도 똑같이 사회에 그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봐요. 2차 대전의 범죄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넘어간 것에 대해서 항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을 보면, 많은 젊은 대학생들이 군사 독재에 반대해서 민주주의를 외쳤잖아요? 젊은 세대가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독일처럼 일본도 젊은이들이 역사에 대해 기억하고, 공부하고, 스스로 사회정의를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카셀대학교 총학생회장 토비야스는 "평화의 소녀상이 앞으로 백 년 동안 서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우리 모두가 계속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많은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광열

장광열 : 카셀대학교 내 평화의 소녀상과 '위안부' 운동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토비야스 : 저는 단순히 학교와 협상을 통해 평화의 소녀상을 지켜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카셀대학교의 학생, 카셀시 주변 지역의 사람들이 소녀상을 보러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동상이 주는 메시지를 듣고 느끼고, 소녀상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이 역사가 한국인의 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역사를 남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것임을 깨닫고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죠.

앞으로 2~3년 동안만 평화의 소녀상 동상 보존을 위해 노력한다면 아주 오랫동안 이 동상은 이곳에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어쩌면 이런 동상이 서 있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될 수도 있죠.

 그런 세상이 되기 전까지는 이 역사를 잊어서는 안될 것 같아요. 그래서 평화의 소녀상이 앞으로 백 년 동안 서 있도록 저도 노력할 겁니다. 우리 모두가 계속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봐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 모습. ⓒ연합뉴스

장광열 : 최근 서울 중심부에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서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한국 우익 단체의 시위가 있었고, 소녀상을 지키려는 단체들의 시위가 있었어요.

토비야스 : 이런 일은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일본에서도 벌어지는 것 같아요. 극우세력들은 역사를 부인해요. 그들은 우리가 과거에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극우들은 과거에 대해 다루는 것을 싫어해요. 왜냐면 그 동상이야말로 자신들의 범죄를 잘 보여주는 상징물이거든요.

대부분의 한국 남자 정치인들 또한 '위안부' 문제를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죠. 자신들이 당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한국 여성은 다릅니다. 그 시대 한국 여성의 일이고, 결국 여성들이 피해자이니까요.

그래서 이 사안은 단순히 한일 양국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성차별 문제와 성평등에 대한 요구, 다시 말해서 페미니즘 이슈이기도 해요. 왜냐면 '위안부'들은 여자였죠. 남자가 아니죠. 이들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성적인 학대의 피해자가 된 겁니다. 단순히 한일 정부 관료 사이의 타협으로 덮을 수 없죠.

토비아스 쉬노어 약력

1993년 1월에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하이브론(Heibronn) 출생. 원래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서 15살에 공부를 마쳤다가 24살에 카셀대학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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