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밤, 서울 신당역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순찰 근무 중 살해당했다. 범인은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스토킹해온 동료였고, 관련 범죄행위들에 대하여 이미 고소되어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그다음 날은 선고일이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범인은 그간 피해자를 괴롭힌 범죄행위에 대해 검찰이 9년을 구형한 상황이었다.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명백한 사건이었다. 검찰의 구형을 통해 피해자가 고소에 이르기까지 느꼈을 피해가 어느 정도였을지, 그런 피해를 입고도 바로 고소하지 못하고, 고소에 이르기까지 또 기소돼서 재판이 이루어지기까지 가졌을 불안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된다.
언론은 이 끔찍한 사건을 앞다퉈 보도했고, 보도를 접한 대중은 공분했다. 사람들이 공분한 지점에는 범인이 불구속 상태였다거나 범인이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 행위를 저질러서 직위해제 되었는데도 피해자의 근무지 등 근무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비난의 밑바탕에는 죽지 않을 수 있는 피해자가 죽었다는 원망과 불안이 깔려있다. 당연한 일이다. 범죄는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다. 즉, 가해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일어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사전에 일일이 선택하고 통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무언가에 꽂혀서 사람을 자기 뜻대로 휘두르려 하며 집착할 사람인지를 미리 알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비정상적 집착이 교제했던 관계에서만 발현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신당역 살인사건이 사람들에게 분노만이 아니라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물리적 열세에 있는 여성들이 느꼈을 분노와 불안 지수가 더 컸을 것도 당연하다.
그러니 비난의 화살이 범인에 대한 사전구속 영장을 기각한 판사 개인이나 피해자가 근무했던 직장의 허술한 피해자 보호를 향해 꽂힌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물론 아쉬운 지점들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특정 회사나 특정 판사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 또 비슷한 성격의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길도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스토킹 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법률이 2021년 3월 국회를 통과해 그해 10월 발효됐다. 꼭 필요했던 법률의 제정이었지만 시작부터 우려가 터져 나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반의사불벌 조항이다. 반의사불벌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아무리 나쁜 스토킹행위를 저질렀더라도 피해자가 나중에 합의해 주면 처벌받지 않는다. 국가가 범죄행위를 규정하고 국가형벌권을 발동한다는 것은 그것이 비단 피해자 개인에 대한 침익을 넘어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부 범죄들에 반의사불벌 조항을 두는 이유는 국가형벌권 행사가 지나치게 획일적이거나 형평성을 잃게 되어 신속하게 개인의 침익을 회복시키고 법적평화를 이루는 것에 반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당사자 간의 합의가 실제 피해자의 피해를 구제하고 법적평화를 이루는 것에 부합하는 성격의 범죄에 있어 반의사불벌 조항을 둔다.
그런데 현재 스토킹범죄가 반의사불법죄로 규정되어 있다. 타당할까?
스토킹 범죄가 갖는 특성은 상대의 의사에 반하여 괴롭힘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피해자는 물론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스토킹이 발생한 순간의 충격만이 아니라 이후 남겨진 불안감에 시달리게 만든다. 당초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진 범죄가 아니고, 상호 간에 소통하여 범죄행위가 중단되지 않아서 성립되는 범죄다. 고소 후 처벌을 면하기 위해 범죄행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더라도 반복될 여지가 크고, 일반적인 다른 사건들과 비해 가해자가 고소를 하거나 합의를 해주지 않는 피해자에 대하여 추가로 보복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스토킹이 '상대를 좋아해서'라는 미명 하에 일어나는 경우 가해자 선처의 참작사유가 아니라 피해자 위험발생의 적신호로 해석되야 할 일이다. 이런 개념이 사법기관 일선에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형국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러니 죄질이 나쁜 스토킹 범죄의 경우 이것이 미친 해악과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의 정도를 생각한다면 스토킹을 개인 간 합의를 통해 피해가 구제되고 신속하게 법적평화가 달성될만한 범죄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죄질이 안 좋고 위험한 가해자일수록 신고하기도 어렵지만, 반의사불벌죄니 신고 후에도 더 불안하고 더 압박받을 건 당연지사가 된다. 즉, 스토킹범죄를 반의사불벌로 다루는 것은 국가형벌권 발동을 피해자의 어깨 위에 짐 지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반의사불벌죄만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와 범인이 교제관계가 아니었지만, 범죄의 성격 자체는 애정관계를 강요하는 해악 행위로 일종의 교제폭력 사건에 해당된다. 이렇게 당사자 간의 현재 관계의 실질이 무엇이든 일방적으로 애정관계를 강요하거나 애정관계를 빙자해 일어나는 폭력과 관련된 사건들의 상당수가 성범죄나 데이트폭력범죄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런 범죄들이 반의사불벌이거나 반의사불벌이 아니더라도 피해자의 합의가 양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도록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대법원 예규가 바뀌면서 1심에서 실형이 나와도 구속되지 않는 피고인 숫자가 대폭 늘었다. 성범죄의 경우 직장이 있고 주거가 분명하다는 이유로 구속되지 않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그러지 않아도 피해자 합의가 양형에 절대적으로 반영되다 보니 고소 후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부담이 될 정도로 합의를 요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데,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고 구속되지 않고 나면 합의 요구가 집착에 가까워지는 일들이 적지 않다. 합의를 원치 않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반대로 가해자에게는 합의에 대한 절박함이 커진다. 가해자의 죄질이 안 좋을수록 피해자가 불안감이 커지고, 그래서 합의로 이어지는 일들도 적지 않다. 반성 없는 가해자로부터 보복당할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신당역 살인사건'의 범인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과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으로 기소돼서 검찰에서 9년을 구형받았다. 현행 법규나 법적용 관행상 피해자가 합의를 응했다면 스토킹 범죄는 처벌 대상이 아니게 되고 성범죄는 대폭 감경됐을 것이다. 자칫 집행유예로 끝났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웠다. 누구보다 범인이 이런 상황을 제일 잘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토킹을 저질러온 범인이 피해자의 합의에 집착했을 것은 뻔한 수순이었다. 선고에 임박한 불구속 상태의 범인에게 자신을 형사처벌 하는 것이 국가가 아니라 피해자로 치환된 순간, 쉽게 보복할 수 있는 대상인 피해자는 살해됐다. 성범죄나 데이트폭력사건, 중한 스토킹범죄 등에서 국가가 국가형벌권의 책임을 방기하고 피해자들의 어깨 위에 내려놓는 순간, 피해자는 반성 없는 가해자들로부터 위험에 처한다. 국가가 사회가 반성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이은의 변호사의 예민한 상담소'는 '성폭력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은의 변호사가 직접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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