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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라 쓸까요, '르뽀'라 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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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라 쓸까요, '르뽀'라 쓸까요

[기고] '르포'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0여 년 전인 2003년이었던가 보다. 한국사회에 '르포문학'이 다시 필요하다는 혼자 생각이 몇 년째 남아 있었다. 지금은 <삶창>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진보생활문예지 삶이보이는창>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래 간절한 건 미루지 말자. 잡지 만드는 것도 벅찬데 왠 교실 사업이냐고?, 하려면 큰 사업을 해야지 기껏 강좌 사업이냐고?, 또 하려면 시나 소설 교실을 하지 왠 <여성노동자글쓰기교실>과 <르뽀문학교실>이냐고 내외부에서 반대들이 심했다. 늘 그렇듯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다. 그건 나중에 <리얼리스트100>이라는 새로운 문학네트워크를 제안하고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르포' 또는 '르뽀'라는 말은 웬일인지 사장되어 사회적으로 사문화된 말이었다. 1970년대 다양한 현장의 수기들을 거쳐 1980년대 초중반 잠깐 르포 장르(보고문학으로도 불림)가 생겨났지만 존재감이 크지 않았고, 별도 정립 없이 사라졌다. 당시 진보적인 문학의 중심축을 이루던 민중문학, 노동문학은 별도로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 반영하는 르포라는 장르가 없더라도 시나 소설을 통해 충분한 현장성을 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그땐 소위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문학도 일정 정도 시대의 어떤 중요한 국면과 단면들을 나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며 진보적인 문학의 기반이 금세 허물어져 버린 영향도 있었다. 길게 얘기하기 힘들지만 '짝퉁' 포스트 모더니즘이 수입 되어 창궐했고, 입지를 잃은 진보문학은 너무 일찍 늙어버린 '후일담 문학'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분단과 계급차별, 각종 폭력과 야만의 현대는 계속 이어지는데 문학적 응전은 쉽지 않았다. 한때 시대의 교과서였던 사회과학 서적들이 을지로 헌책방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페미니즘 문학과 생태문학의 싹이 조금씩 자라나는 것 정도가 다행이었던 것 같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반영이었을 수 있지만 일찍 고루해져 ‘후일담’에나 빠져 있는 시나 소설을 통해서는 더 이상 1970-80년대 암울한 시대를 뚫고 빛처럼, 절규처럼 솟아오르던 여러 역사적 사회적 변혁적 문학의 현장성과 당대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짧은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르포'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그래서 2003년 10월 14일 <르뽀 문학교실>과 <여성노동자글쓰기교실>을 시작하게 되었다. 용어 자체가 사문화되어 있던 터라 '르포'로 할지, '르뽀'로 할지 고민하던 때가 어제인 듯 떠오른다. 1980년대 자료들을 찾아보니 어떤 곳은 ‘르포’였고, 어떤 곳은 ‘르뽀’였다. 그렇다면 해방 전후 시기엔 어떻게 표기했는가 봤더니 르뽀로 쓰인 곳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지난 전통을 따른다는 생각으로 '르뽀'로 했다. 르포는 르뽀에 비해 왠지 좀 무른 느낌인 것 같다는 괜한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장르 자체가 사문화되어 있다 보니 사실 르포를 얘기할 수 있는 강사부터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당시 결과를 말하자면 '좋았다'. 교실에 참여한 강사와 수강생들로 후속모임인 '르뽀 작업반'을 만들어 그해부터 실천적이고 행동적인 르뽀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2003년 원년엔 청계천 도시빈민들의 삶을 다룬 르뽀집 <마지막 공간>을 펴냈고, 다음해 교실의 후속모임을 통해서는 당시 사회문제로 전면화되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관련 르뽀인 <부서진 미래>를 펴냈다. 두 책 모두 상당한 반향을 이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까지 활동 중이던 구로노동자문학회와 마창노동자문학회에서도 기존의 시, 소설 중심의 문학 강좌 대신 르뽀문학교실을 열었다. 여러 신문들에서 ‘르포’ 꼭지를 신설하고, 한겨레21에서는 <르뽀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르뽀문학교실 출신들이 주가 되어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투쟁기인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를 펴내기도 했고(영화 <카트>로 만들어졌다.), 용산 철거민 참사 때는 순식간에 모여 한국 철거민들의 생활과 투쟁사를 다룬 <여기 사람이 있다>를 펴내기도 했다. 인권운동 활동가들과 함께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기록집을 펴냈기도 했고, 세월이 흘러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기록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작업에 함께 하기도 했다. 혹시나 그 시절 기록이 남아 있을까 하고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지난 20년이 무색하게 선명하게 남아 있어 2003년 시절 르뽀교실 홍보 페이지와 르뽀교실의 결과로 당시 삶창에서 펼쳤던 활발한 르뽀와 여성노동자글쓰기 운동의 흔적이 담긴 페이지 하나를 캡쳐해 비교해 보시라고 올려본다. 그 시절도 오늘처럼 늦은 새벽까지 사무실에 앉아 이곳저곳 온갖 단체 홈페이지와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니며 홍보글을 올리고 있었겠지.

당시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가던 페미니즘 문학이 3중 4중의 차별구조 아래에 있는 다수의 기층여성들의 문제까지는 접근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르뽀문학교실과 함께 당사자들의 생활글쓰기 운동 일환으로 열었던 <여성노동자글쓰기교실>은 르뽀문학 참여자들처럼 활발한 활동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이어져 지금도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의 이름으로 <기록되지 않은 노동> 등 여러 책을 펴내며 계속 활동하고 있다.  특별히, 지난 20여년에 걸쳐 소박하지만 꾸준히 이 모임과 함께 해왔던 박수정, 안미선, 희정, 류현영, 연정 작가 등께 존경의 마음을 놓아본다. 르뽀문학교실과 여성노동자글쓰기교실과 함께 했던 개별 작가들은 훨씬 더 많은 집필과 출간 활동들을 해왔다. 우리 사회를 위해 참 고마운 일들이었다. 당시 르뽀교실은 김순천 선생이 실무를 맡아주었고, 여성노동자글쓰기교실은 박수정 선생이 맡아주었다. 전체 문학학교 간사는 류인숙 벗이 맡아주었던 기억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20여년이 흘러 난 다시 '르포문학교실'을 여는 일을 해보고 있다. 염무웅, 김판수 두 선생님과 여러 선후배님들께서 함께 열어주신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일을 함께 하며 다시 뭐라도 문학 운동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앞에 '청년'자를 붙여 보았다. 20여년 전 우리는 청년이었다. 다시 우리와 같은 꿈을 꿔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작은 다리라도 되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물론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60세도 청년이라는 점이다. 안정된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집장만도 모두 포기하는 N포 세대들이나, '희망'이니 '명예'니 하는 그럴 듯한 말 속에 조기에 강퇴 당하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장년 세대, 그리고 70세 전후해서도 값싼 시니어노동세대가 되어야 하는 말년 세대들의 운명이 ‘언제나 청년’처럼 불확실한 내일을 걱정하며 뼈빠지게 살아야 하는 점에서 별 다르지 않는 흉폭한 신자유주의 전성시대다. 하여 그 목 메이는 청년의 마음으로 간절한 얘기를 써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열려 있는 청년문학학교이다. 시나 소설의 새로움과 응전의 기운도 새삼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번엔 시교실, 소설교실도 함께 열어보았다.

그런데, 시와 소설교실은 얼추 함께 할 분들이 모였는데 왠일인지 ‘르포문학교실’엔 함께 하겠다는 이들이 현저히 적다. 이 또한 어떤 시대의 반영 아닐까 걱정스럽다. 르포는 장르의 운명이기도 하겠지만 충분히 과실이 넘쳐나는 넉넉하고 행복한 곳을 찾지 않는다. 그늘진 곳, 아픈 곳, 묻힌 곳, 억눌린 곳, 억울한 곳, 차별받는 곳을 찾게 된다. 수적 다수이면서도 권리 관계에서는 절대적 소수인 사람들이 눈물짓거나 절규하는 거리와 광장, 후미진 공터와 뒷골목이 르포가 찾게 되는 곳들이 십상이다. 노력과 발품에 비해 받게 되는 보수나 명예는 미미한 문학의 길이다. ‘문화강국’을 외치며 바야흐로 도래한 거대한 문화자본의 시대 어느 한 켠에도 끼기 힘든 불온하고 불편한 목소리들. 그래서 ‘시장’을 얻기 힘든 어려운 힘겨운 문학의 길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그런 까닭에 더 숭고한 문학의 길일 수도 있다. 모든 이의 삶이 고난과 참사에 다름에 아닌 이 진흙탕 속 같은 세상 속에서 연꽃처럼 다시 피어날 수 있는 아름다운 문학의 길일 수도 있다. 조지 오웰과는 다른 <카탈로니아의 찬가>를 불러 볼 수도 있는 길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오에 겐자부로는 왜 소설을 밀쳐두고 르뽀집 <히로시마 노트>와 <오끼나와 노트>를 쓰게 되었는지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일 수도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일 수도 있다.

[2022 길동무 문학학교 / 시·소설·르포교실]

“한국문학의 미래를 열어 갈 청년작가들의 유쾌한 커뮤니티! 세계진보문학의 너른 광장으로! 함께 묻고 상상하며 변화해가는 새로운 문학의 산실!”

ㅇ 일시 : 2022년 9월 20일(화) ~ 2023년 1월 3일(화) / 모집 인원 : 정원 20명 이내 모집

(문학학교 자세히 보기) https://bit.ly/3wdGplJ

(수강신청하기) https://bit.ly/3AvnLZ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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