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에 제재를 풀 것을 요구하며 독일로 향하는 가스관을 폐쇄한 러시아가 이번엔 지난달 재개한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합의를 수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무기화로 비난 받고 있는 러시아가 식량 무기화에까지 나섰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 등 외신을 보면 7일(현지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 본회의 연설에 나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7월 있었던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합의가 "터무니없는 속임수"라고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은 흑해 항구를 통해 수출되는 "거의 모든 곡물이 가난한 나라가 아닌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운송됐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출항한 배 87척 중 2척, 곡물의 3%만이 가난한 나라로 향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수출을 완전히 막지는 않겠다면서도 우크라이나 곡물이 EU로 향하는 것을 막는 등의 방식으로 "곡물 및 다른 식량 수출 제한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수출 합의를 중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의 곡물 생산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함에 따라 불거진 식량 위기는 지난 7월 유엔(UN)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이뤄진 합의에 따라 러시아가 흑해 봉쇄를 풀고 우크라이나 곡물의 출항을 막지 않음으로써 다소 완화되는 듯 보였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모든 흑해 곡물 선적을 기록하는 유엔(UN)은 7일까지 233만4310톤의 곡물이 우크라이나 항구를 통해 세계로 수출됐다고 밝혔다. 3%의 식량만이 가난한 나라로 운송됐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과는 달리 유엔 대변인은 수출된 곡물과 식량 중 30%가 저소득 및 중하위 소득 국가로 향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EU가 제안한 러시아산 가스 가격 상한제에 대해 "또 다른 어리석고 비시장적인 결정"이라며 비난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7일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산 가스에 가격상한선을 부과할 방침을 밝히고 9일 긴급 회의에서 이를 논의하기로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가스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지 않는 전력 생산자의 수익을 제한하고 "예상치 못한 이익"을 가정과 기업을 지원하는 조치에 사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우리의 이익에 반한다면 가스·석유·석탄 등 어떤 자원도 공급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푸틴 대통령은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에서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고 잃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주권을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서방과의 유대가 끊기고 세계가 "양극화" 됐지만 러시아는 이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타스> 통신을 보면 7일 안드레이 데니소프 중국 주재 러시아 대사는 이달 15~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기간에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남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 뒤 서방은 러시아에 각종 제재를 부과했지만 중국과 인도 등은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산 원유를 할인가에 사들이며 밀착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중국은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이 지난 2일 합의한 석유 가격 상한제에도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상한제 동참 혹은 상한선을 통한 가격 협상이 중국와 인도의 국익에도 부합할 것이라며 동참을 설득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게속된 포격으로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에 직면한 러시아군 점거 하의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보고서를 신뢰한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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