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이재명 신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광주 지역일정 도중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표가 대장동·백현동 사건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라며 검찰이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노 전 대통령의 "용기·투지"를 되살리겠다고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민주당 지지층이 검찰 수사에 대한 극도의 불신·적대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었다.
이 대표는 이날 광주를 방문해 전통시장 상인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던 중 "이제는 멀리 떠나신 분이시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민주개혁 진영, 민주 시민들의 가슴 속에 남아 계신 분이고 또 끊임없이 우리에게 열정, 용기, 투지를 다시 되살려주시는 분"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간담회 장소인 식당은 과거 노 전 대통령이 생전 방문해 일명 '노무현 국밥집'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이를 상기시키며 "저도 이제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우리 노무현 대통령의 기(氣)도 받고, 힘 있게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오늘 양동시장 오면서 많은 분들이, 눈에는 잘 안 띄는데 저보고 자꾸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며 "제가 부족해서 많은 분들 고통받게 한 것 같아서 정말 역사의 죄인이 된 것 같다"고 대선 패배 책임을 자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는 간담회에서 "정부의 역할은 경제 심리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는) 너무 시장주의, 시장에 맡겨야 된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분들"이라며 특히 지역화폐 사업 예산이 내년도 예산안에서 삭감된 것을 두고 "경악스럽다", "납득이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앞서 이날 오전 광주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 후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검찰의 소환 통보에 대해 "아주 오랜 시간을 경찰‧검찰을 총동원해서 이재명 잡아보겠다고 하셨는데 결국 말 꼬투리 하나 잡은 것 같다"며 "국민들께서 맡긴 권력을 (…) 이렇게 먼지털이하듯 털다가 안 되니까 엉뚱한 것 가지고 꼬투리 잡고, (이런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李, 검찰 소환 불응 방침 굳힌 듯…"성실히 협의 중에 참고인 조사도 없이 소환"
이 대표는 검찰 소환에 불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박성준 당 대변인이 이날 기자들에게 밝혔다. 박 대변인은 "불출석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연기하거나, 서면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양부남 당 법률위원장도 "소환 필요성이 전혀 없다. 현재 당 대표께서 했던 모든 말이 녹음 돼 있어서 서면 조사로 끝낼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박 대변인은 이날 오후 문자메시지 형태의 언론 공지를 통해 "검찰은 '이 대표가 서면조사에 응하지 않아 소환조사를 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검찰 주장은 옹색한 변명"이라며 "검찰이 소환조사를 하겠다고 한 사건은 3건인데, 이 중 2건은 이미 서면조사에 응했고 나머지 1건은 준비 중이었다"고 재차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 대표는 백현동 '국토부 협박' 발언과 관련해 경기남부청에 피의자 진술을 제출했으나, 남부청은 확인서를 제출한 주요 참고인을 조사도 않고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검찰 역시 두 참고인 조사도 안한 상태에서 이 대표에 대한 공개소환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준비하고 검찰과 협의 중이었는데도 검찰은 이를 무시하고 출석 요구서를 정기국회 첫날에 보냈다"며 "이는 되든 말든 일단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의심된다. 명백한 야당탄압이자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계파 불문 檢에 격앙 와중…박지현 "조국 사태 잊었나. 소환 응해야"
한편, 앞서 민주당 지도부인 최고위원회 구성원들과 당내 각 계파 중진 의원 등 당내 전체가 한목소리로 이 대표에 대한 소환 통보를 비판하고 나선 가운데 (☞관련 기사 : 민주당, 계파 떠나 일제히 반발…"정치 보복", "검찰 공화국")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만은 "이 대표는 검찰 소환에 응해야 한다"고 유일하게 다른 목소리를 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날 오후 SNS에 쓴 글에서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소환은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국민 앞에 잘못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의 크기와 관계없이 법 앞에 겸손한지, 법이 모두에게 공정한지, 작은 잘못이라도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박 전 위원장은 특히 "냉정해야 한다. '왜 조국 가족만 가혹하게 수사하느냐'고 따지다가 정권을 내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3년 전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를 주도해 결국 정권을 내주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극렬 팬덤 단체들은 내일 '이재명 소환 규탄 집회’를 연다고 한다"며 "이 대표는 규탄 집회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전 위원장은 "검찰 수사는 당이 아닌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비판적 논의를 막고 독선에 빠진 극렬 팬덤과 거리두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이재명 대표 지키기'는 결국 '제2의 조국 지키기'가 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전 위원장은 "3년 전처럼 검찰, 서초동, 집회, 규탄, 소환, 이런 단어들이 신문 1면을 장식하는 한 민생도 개혁도 협치도 모두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며 "과거와 같은 전략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왜 김건희 여사와 대통령 장모는 봐주면서 이재명 대표만 부르냐'고 항변하는 것은 술책에 말려드는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국민을 믿어야 한다. 당당히 수사에 임하고 의혹을 씻어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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