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지방선거 등 연이은 선거 패배 이후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큰 이변 없이 박용진 후보를 제치며 '이재명 지도부 체제'가 탄생했다. 이 신임 대표는 민주당 전당대회 사상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압도적 지지 속에 169석 거대 야당의 총지휘권을 갖게 됐지만, 당 내 계파 갈등, 자신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등 극복 과제가 상당하다. 이 대표는 이같은 난관을 뚫고 차기 총선과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이 대표는 28일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진행된 제5회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최종 득표율 77.77%를 기록하며 22.23%에 그친 박용진 후보를 누르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이재명 책임론'에서 '어대명', '어대명'에서 '확대명'으로
압도적 지지 속에 당선됐지만, 이 대표가 처음부터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 대선부터 지방선거까지 연이은 패배 원인을 놓고 '이재명 책임론'이 거세게 불며 당내에선 이 대표의 당 대표 출마를 차단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개됐다. 친문(親문재인)계 수장 홍영표·전해철 의원이 이 의원에 대한 압박용으로 선제적 불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표는 그러나 "책임은 문제 회피가 아니라 문제 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며 당 대표 출마를 강행했다.
이 대표가 비(非)명계 의원들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믿는 구석'은 대선 과정에서 확인된 열성 당원의 지지였다. 이를 입증하듯, 전대 레이스가 시작된 이래 이 대표는 거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과반 지지를 받으며 당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미 선거 초반부터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구호가 횡행했다.
어대명을 막을 유일한 변수는 '단일화'였다. 당내 97그룹을 중심으로 '이재명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며 단일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예비경선 과정에서는 물론, 본선 도중 충청권 경선을 강훈식 후보가 사퇴했지만 박용진 후보에 대한지지 선언을 끝내 하지 않으며 단일화는 최종 무산됐다. 지역 순회 경선을 거칠수록 '어대명'은 '확대명(확실히 대표는 이재명)'으로 굳어졌고, 단 한 순간의 이변 없이 이 후보는 당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번 전당대회 이전 민주당 계열 역대 당 대표 경선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이는 2020년 전대 당시 이낙연 전 대표(60.77%)였다. 뒤이어 추미애 전 대표가 2016년 전당대회에서 54.03%를 받았고, 이해찬 전 대표는 2018년 전당대회에서 42.88%를 받았다. 지난 2021년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송영길 전 대표의 경우 득표율은 35.60%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치러진 2015년 전당대회에서 받은 득표율은 45.30%였다. 과거 사례들과 비교하면 이 후보는 그야말로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한 셈이다.
계파 갈등 심화하나...첫 행보로 '통합 포석' 양산행
이러한 압도적 득표율과 달리, 상당수 의원들은 이재명 체제 출범 후 당이 겪게 될 혼란상을 걱정하고 있다. 당 대표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가 당내 갈등 해결이지만, 이 대표가 '통합형 정치인'이 아니라는 데 대한 우려다. 민주당이 수 년에 걸쳐 '시스템 공천'을 정립했음도 많은 의원이 '공천 학살'을 걱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친명과 비명 등 계파 간 이견이 가장 뚜렷한 문제는 '팬덤 정치'에 대한 입장이다. 비명계 의원들은 민심을 봐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친명계에선 당심을 내세우면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민감 현안마다 의견을 달리해왔다. 비명계 의원들은 586, 친문 등 과거 기득권 세력 또한 강성 지지층 요구에 따라 움직이기도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후보와 친명계 의원들의 팬덤 활용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 권리당원 전원 투표의 위상을 전당대회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의 당헌 14조 2항 신설 문제를 놓고 비명계 의원들이 극렬하게 반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민심과 당심을 둘러싼 당내 대립은 이재명 지도 체제 출범 후 더욱 격화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 대표는 당 대표 후보 토론회, 연설 등을 통해 수차례 '당원 중심주의'를 강조해왔다. 여의도 정치권의 분위기가 유권자 다수의 뜻과 다르다며 이른바 '여심(汝心. 여의도)'을 '당심'의 대립항으로 상정하기도 했다.
그는 전대 기간에도 "앞으로 민주당이 진정한 당원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당원의 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당원의 지위와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당내 최고 의사결정자인 이 후보를 막아설 수 있는 이들이 최고위원이지만,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 역시 친명계가 다수 포진되면서 당 대표에 대한 견제보단 보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문제는 당내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경우 분당 사태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심 논란에서 시작된 계파 갈등이 공천 갈등으로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다. 이 대표는 이같은 당내 우려에 각종 연설회를 통해 "공천 학살은 없을 것", "결코 사적 이익, 특정 계파를 위해 권한을 나누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지난 26일 임기 중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특정 계파를 학살할 시스템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차기 지도부를 향해 "총선 결과로 (새 지도부의) 평가가 나뉠 텐데, (이 과정에서) 계파 간 갈등이 극심하지 않도록 하는 게 과제"라며 "누가 당대표가 되든 비주류와의 소통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같은 당내 요청에 임기 첫 행보로 경상남도 양산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리스크, 민주당 리스크 될까
이른바 '사법 리스크'도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을 방해하는 골칫거리다. 현재 이 대표가 연루된 사건은 변호사비 대납 및 쌍방울그룹 횡령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이다. 수사는 이 대표를 향해 점점 전방위적으로, 고강도로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사법적 판단보다는 민심의 향방이다. 민주당이 '보복 수사'라고 반발할 만큼 검경이 이 후보를 향한 수사 압박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인 것이다. 특히나 2년 뒤 총선을 앞두고 만약 한 건이라도 기소될 경우 대형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이 대표가 출마 선언문에서 공언한 '이기는 민주당'은 요원하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이에 당 대표 출마 선언 전부터 비명계 의원들은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 강하게 우려를 표명해왔다. 특히 당 대표 후보 본선 맞상대였던 박용진 후보는 당 대표 기소 시 본인 리스크에서 당의 리스크로 번질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와 관련해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사법 리스크는 당당하고 크게 나가야 한다. 디테일로 빠지면 진다"며 "그래서 당내 단결과 통합이 더욱 중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당이 사법리스크에 맞서 단일 대오로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 대표 취임 이후 민주당 지지율도 큰 관심거리다. 야당 대표로서 윤석열 대통령과 지지율 경쟁을 한다는 점에서 지난 대선의 '리턴 매치'가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나땡(이재명이 나오면 땡큐다)'이라며 각종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 이 대표의 당선이 자당에 유리하다는 관측을 공공연히 내놓기도 했다.
익명을 요청한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이와 관련 "대통령과 야당이 잘하기 경쟁을 해야 하는데 서로 못하기 경쟁을 하며 반사 이익만 노리는 나쁜 정치의 악순환이 계속돼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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