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지도부가 주말 '마라톤 의원총회'를 통해 전열 정비에 나섰다. 이준석 대표가 당을 상대로 낸 가처분 소송에서 법원이 이례적으로 이 대표의 손을 들어주면서 현 지도부가 의외의 일격을 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이 대표의 대표직 복귀는 없을 것'이라는 기존 방향을 일관되게 추진하기로 한 것이 의총 결론의 요체다.
국민의힘은 당헌당규 보완을 통해 비대위를 새로이 꾸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는 동시에, 이 대표에 대한 윤리위 추가 징계를 의원총회 결의로 요구하기로 했다. 다만 '법원 결정에도 비대위 체제는 유지된다'는 해석을 내놓는 등 사실상 법원 결정의 취지를 거스르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당 안팎의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점은 부담으로 남았다.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는 유지", 법원 결정과 상충…이준석은 '前대표?' 현직 대표?
국민의힘은 토요일인 지난 27일 오후 4시부터 밤 9시까지 마라통 의원총회를 열어 사태 대응 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이같은 방향을 잡았다고 박형수·양금희 원내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들은 의원총회 결과 브리핑에서 "국민의힘은 법원의 비대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따른 조치는 취하되, 이의신청 및 항고 등 절차를 밟아 나갈 것"이라면서도 "당헌·당규를 정비한 후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원내대변인들은 주 비대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는 동안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 대표 역할을 대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 더 논의해야 한다"면서 "원내대표의 거취는 이번 사태를 수습한 후 의원총회의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지난 비대위 구성으로 인해 최고위가 해산됨에 따라 과거 최고위로의 복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인해 현 비대위를 유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과거 최고위로의 복귀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은 것은, 법원 결정 후 이 대표 측 법률대리인들이 " 비대위원장 직무를 정지하고, 사퇴하지 않은 최고위원으로 최고위를 구성해야 하며, 사퇴한 최고위원은 당헌 제27조3항에 의해 선출돼야 할 것"이라고 법원 결정 이행을 요구한 데 대한 거절의 의미다.
국민의힘은 그 근거로 "가처분 인용 결정의 주문(主文)은 '비대위원장 직무를 정지한다'는 것이고, 비대위로의 전환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지만 그것은 주문에 없다"며 "현실적으로 비대위는 존속된다"는 해석을 내놨다.
국민의힘 측 법률대리인인 황정근 변호사는 언론에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지난 16일자로 비대위원 임명과 동시에 비대위 설치가 완료됨으로써 이미 해산된 최고위가 가처분 결정만으로 법적으로 되살아날 수는 없다"며 "비대위원장 직무집행 정지 결정만으로는 비대위가 바로 해산되는 것이 아니라 원내대표가 다시 비대위 직무대행이 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황 변호사는 "주 비대위원장이 임명된 후 직무집행 정지 결정이 되기 전에 지난 16일 상임전국위 의결을 거쳐 비상대책위원 8인을 임명한 행위 및 기타 인사권 등의 행사는 적법하다"는 주장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비대위원장 직무 정지에도 비대위는 유지된다'는 국민의힘의 해석과, 이에 따라 비대위 출범으로 기존 당 대표 및 최고위원들은 직을 잃게 되고 최고위는 해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은 26일자 법원 결정문의 취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 스스로도 "비대위로의 전환이 적절하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이 사건 전국위 의결 중 비상대책위원장 결의 부분은 무효"라고 판시하며 그 근거로 "전국위는 당원 중 1000인 이내로, 상임전국위는 50인 이내로 구성돼, 1만 인 이내로 구성되는 전당대회에 비해 민주적 정당성이 작다고 할 수 있는데, 상임전국위 및 전국위 의결로 수십만 당원과 일반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전당대회에서 지명된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의 지위와 권한을 상실시키는 것은 정당의 민주적 내부질서에 반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법원은 또한 "전국위 의결 중 비상대책위원장 결의 부분이 무효에 해당해 채권자(이준석)의 피보전 권리가 소명되고, 전국위 의결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채무자 주호영이 전당대회를 개최해 새로운 당 대표를 선출할 경우 당원권 정지 기간이 도과(徒過)되더라도 채권자가 당 대표로 복귀할 수 없게 되어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보전의 필요성도 소명된다"고 결정했다.
즉 법원은 비대위원장 선출을 시작으로 하고 이 대표의 직위 상실을 그 효과(결과)로 하는 '비대위 출범'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전국위가 결의한 것 자체가 무효라는 취지의 결정을 한 것이고, 이를 통해 보호하려 하는 법익은 '6개월간의 당원권 정지 기간이 지난(도과된) 후의 이 대표의 대표직 복귀 가능성'이라고 판시한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이 '비대위 결정으로 최고위는 해산됐고 기존의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은 직위를 잃었다'는 해석을 내놓는 것은 이같은 법원 결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 따르면 이준석은 '전 대표'이지만, 법원 결정문 취지대로라면 그는 현재 당원권 정지 상태일 뿐 6개월 후의 대표직 복귀 가능성이 여전히 보호받고 있으므로 '현직 대표'이다.
윤상현·최재형·김웅에 진중권까지…당 안팎 비판 봇물
당 내에서도 지도부의 이같은 결정문 해석에 대해서는 비판 목소리가 있다. 이 대표를 옹호해온 김웅 의원은 의총 도중 기자들과 만나 당 지도부의 결정에 대해 "설렁탕을 시켰다가 취소했는데 '설렁탕 주문을 취소한 것이지 공깃밥과 깍두기까지 취소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판사 출신으로 감사원장·사법연수원장·가정법원장 및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최재형 의원(당 혁신위원장)도 의총날 밤 페이스북에 "가처분을 둘러싼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양두구육'이 아니라 징계 이후 조용히 지내던 당 대표를 무리하게 비대위를 구성해 사실상 해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사회에서도 "법원에 선전포고를 하다니 일찍이 이런 막장은 없었다. 정당인가 조폭인가"(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반면 법원 결정 자체에 대해서 역시 자율 결사체인 정당 내부의 결정에 '실체적 판단'을 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점 외에도, 이 대표의 지위가 유지되는 것인지 여부를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당 혁신위 부위원장인 조해진 의원은 "비대위가 출범하더라도 이 대표가 자동해임이 안 되고 직무정지 상태로 대표직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이 대표는 소송을 제기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이 점을 지적하면서 "법원은 이 핵심 사안에 대해 심리를 해서, 비대위 출범으로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자동해임됐는지, 그게 옳은지 그른지 등을 규명했어야 하는데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른 쟁점을 판시할 때 이 대표가 자동해임된 것처럼 전제하고 논리를 펴고 있는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또 "법원은 우리 당의 당원이 수십만, 전당대회가 1만 명, 전국위원이 1000명, 상임전국위원이 50명이라고 말하고, 상임전국위원이나 전국위원은 전당대회나 당원, 국민에 비해서 민주적 정당성이 적다는 논리로 상임전국위나 전국위 의결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주장은 전당대회는 당원의 위임대표고, 전국위는 전당대회의 위임대표, 상임전국위는 전국위의 위임대표라는 대의성·대의민주주의 원리를 간과한 기초적 상식이 결여된 논리"라는 반박도 폈다.
그러나 이같은 법원 결정의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같은 결과가 나온 이상 법적 대응을 포함해 당 운영을 맡아온 현 지도부가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윤상현 의원은 28일 "어제 의총에서 네 가지를 결정했으나 제가 보기에는 정치를, 민주주의를, 당을, 대통령을 죽인 결정"이라며 "권성동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것이 이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전날도 의총 도중 기자들과 만나 "지도부 방침은 민심의 목소리와는 동떨어져 있다"며 "권 원내대표는 현 사태를 수습할 명분이 없다. 결자해지 자세로 본인과 대통령과 당과 나라를 위해서 결단하는 게 정도이고, 새로운 원내대표가 당 대표 직무대행을 하고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했었다.
이준석 추가 징계 예고…권성동, 책임론에도 고위당정 참석 등 '마이 웨이'
그러나 당 지도부 역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날 의총 결정사항에는 '새로운 비대위 구성' 방침과 함께 이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추진 내용도 담겼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의 개고기, 양두구육, 신군부 발언 등 당원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언행에 대해 강력히 규탄· 경고하며 추가 징계에 대한 윤리위원회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다"고 의총 결과브리핑에서 밝혔다.
국민의힘은 "당정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해야 함에도 이 전 대표는 오히려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당 운영을 앞장서서 방해했다"고 이 대표를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따른 당의 혼란 상황을 초래한 근본 원인은 이 전 대표의 성상납 의혹과 정보조작 교사 의혹이며 이로 인해 6개월 직무정지를 당한 상태에 있었음을 확인한다"며 "이에 대해 의원총회 결의로 이 전 당 대표에게 강력 경고하는 바이다"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또한 윤리위원회는 윤리위에 제기된 추가 징계 요구안을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지난 22일 윤리위 전체회의에서는 이 대표에 대한 추가 제소 건에 대해 "오늘은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는 회의 결과만 발표됐었다.
권 원내대표는 성일종 정책위의장과 함께 28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추석 차례상 물가 대책을 협의하는 등 정상 일정을 소화하며 의연함을 보이고 있다. 주 비대위원장은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고위당정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정하 당 수석대변인은 당정 후 기자들과 만나 "우선 당 안정화가 급선무"라며 "내일(29일) 비대위 회의가 있을 것이고, 2~3일 내 바로 다시 의원총회를 열어 (향후 구체적 대응책을) 보고·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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