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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강자와 가진 자들을 위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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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강자와 가진 자들을 위한 '자유'

[기후위기와 '원한의 정치'] ②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폐기정책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의 원전 산업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업적'을 열거한 모두발언의 일부다.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정책"이라는 주장은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폐기정책"으로 대체돼야 하는 게 아닐까.

지난 7월 26일 103세의 나이로 타계한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 제임스 러브록이 2006년에 낸 <가이아의 복수>(이한음 옮김, 세종서적 펴냄)에서 뜻밖에도 원자력 이용을 주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보기에 재생에너지나 핵융합 에너지로 화석연료 에너지를 대체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앞으로 수십 년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온난화(열탕) 폭발의 임계치 도달을 미루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원전만한 게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게 과연 타당한 주장인지 따져봐야겠지만, 그래도 러브록은 임박한 대기 열탕화 예측을 절박한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나름의 탈출구를 모색했다. 한국정부의 탈원전 폐기정책에는 그런 고민의 흔적조차 없다. 한국 집권당의 시야에는 기후변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어 보인다. 가끔 등장하는 산업으로서의 '녹색' 이나 '그린'에 대한 요란한 언급은 오히려 그 텅빈 공허만 돋보이게 만든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 속에 유럽에서 탈원전 정책 재고 움직임이 있지만 핵폐기물 처리시설 마련 등 여러 까다로운 조건 마련을 전제한 차선책 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에는 돈벌이 욕망만 보일 뿐 처리장 등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핵폐기물 보관공간 확보 등의 논의조차 없다. 재생에너지 등 대안 에너지 개발에 대한 고민도 없어 보인다. 세계와 인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사고 자체가 없어 보인다.

탈원전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한 국가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정책선택의 토론과제일 수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나름의 토론과정을 거친 끝에 내린 전 정부의 정책전환을 고작 정권안보의 정략적 차원에서 범죄수사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서해상 공무원 피살사건이나 북한 어부 북송문제 역시 냉철하게 먼저 사건의 진실에 접근했어야 했다. 이 문제 또한 정책선택의 토론과제여야 했음에도 전직 국정원장들까지 소환하는 선동적 범죄수사극으로 전락시켰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정치가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의 제로섬 게임 같은 폐쇄회로 속에 갇혀 있다. 그런 퇴행적이고 편협한 기풍 속에서는 그들끼리의 권력투쟁만 있을 뿐 모두를 위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대안도 새로운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파편화한 고립 속에서 '내편'끼리만 소통하고 내편 아닌 모두를 불신하거나 적으로 돌려 분노하며 타도의 대상으로 삼거나, 삼게 만드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포착해낸 세계, 도널드 트럼프적 세계가 이 땅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33번이나 언급한 '자유'

윤석열 대통령이 길지 않은 8.15 경축사에서 33번이나 언급했다는 '자유'라는 말은 뜬금없어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랬다면 감격을 더했겠지만, 한국이 민주화되고 동서냉전이 붕괴한 지 30여 년이 지나 새삼 자유를 외친 것은 없는 자유를 갈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조 바이든의 미국 정부가 그렇게 외쳐 왔기 때문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바이든은 대선 출마 당시부터 중국봉쇄 내지 포위를 겨냥해 동맹국들의 결집을 호소하면서 전제(권위)주의 대 민주주의, 억압 대 자유, 국가 대 시장이라는 대립축을 만들고 자유와 민주, 인권, 시장이라는 가치 수호를 그 명분으로 삼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흔들리던 유럽을 끌어당기기 위해 그런 레토릭을 더 강하게 내세웠다.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도 '대만 문제'에 깊숙이 개입할 때 앞세우는 것도 자유와 민주, 인권, 시장 가치의 수호라는 레토릭이며, 쿼드(QUAD), 오커스(AUKUS), 아시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얘기할 때도 그렇다. 한일관계 회복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복원을 한국에 압박할 때, 그리고 한미일 공조(또는 동맹)를 강조할 때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는 강자와 가진 자들을 위한 자유다. '공공부문' 축소를 통한 서민 지원이라는 상호모순되는 정책공약에서도 그런 점이 드러난다. 하지만 자유와 인권이라는 레토릭이 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대외정책과 국내정치다. 그 레토릭은 미국과의 밀착을 천명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대전에서 한쪽 진영에 가담해서 싸우겠다는 자기선언과 같은 것이다.

또 하나는 국내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반자유적인, 반인권, 반민주, 반시장적인 가치의 신봉자로 몰아붙이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반미 친중·친북적인 이미지를 덧씌움으로써 자신들의 집권 정당성과 지지기반을 강화하고 반대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이다. 전 정부 때 종결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이나 북한 어부 송환문제를 끄집어내 수사를 벌이고 전직 국정원장들까지 소환한 것, 그리고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나 친환경 정책 관련 인사들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재개하고, 사드 배치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와 함께 그런 뻔한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조급해 보이는 일본과의 '관계복원' 시도와도 밀접하게 얽혀 있다.

바이든 정부의 패권전략에 편승한 사드(THAAD) 배치 강화는 미국이 일본과 함께 추진해 온 아시아태평양 미사일방어(MD) 체제에 가담하는 것을 사실상 공식화하는 것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공식 논평에도 불구하고 중국(러시아)을 신냉전적 세계대전의 '적국'으로 상정한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INF, ABM, THAAD, MD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이라는 것이 있었다. 1987년 미국과 소련 간에 체결된 중거리 핵무기 폐기에 관한 조약인데, 이 조약에 따라 미국과 소련의 사거리 500km에서 5500km인 중거리 지상발사형 중거리 탄도, 순항미사일이 폐기되었다. 그런데 2018년 10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이유를 대며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본격화하겠다는 얘기다.

그 전에 탄도탄 요격 미사일(anti-ballistic missile, ABM) 금지협정이란 것이 있었는데, 미국과 소련이 1972년에 체결했다. 이 또한 조지 부시 대통령 때인 2002년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상대방의 공격 미사일이 당도하기 전에 파괴하는 요격미사일 체제는, 상대의 공격능력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결국은 이쪽의 공격능력을 강화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요격미사일은 공격미사일과 다름 없다. 동전의 양면이다. 요격미사일 경쟁에서 지면 전쟁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기에, 요격미사일 전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경쟁이 벌어진다. 소련이 망한 것이 결국 돈과 에너지가 무한대로 투입되는 그 군비경쟁에서 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들이 많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중국을 겨냥한 미일동맹의 MD체제 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성주 사드 배치 강행이 그것을 말해 준다. 미국이나 일본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매달리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것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수집되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쪽 정보들이 MD체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게다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들이 한국에 배치된다면 중국은 극도로 불안해질 것이다. 그럴 경우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들도 한국 내의 미사일들을 집중적으로 겨냥할 것이다. 그들이 한국 내 사드 배치 강화 움직임과 관련해 '3불 1한'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사드 배치 강화나 군비증강은 안보를 강화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보를 취약하게 만들고, 자칫 미중 등 대국들간의 패권경쟁에 말려 들어 그들의 대리전장이 될 수도 있다. <미중경쟁과 대만해협 위기-남북한은 동맹의 체인에 연루될 것인가>(길윤형·장영희·정욱식 지음. 갈마바람 펴냄)에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사드 배치와 제주도 해군기지 등을 예로 들며 그 가공할 메커니즘을 설득력 있게 설파한다. 만일 대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고 거기에 미국과 일본이 공언해온 대로 개입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하에서 한국은 미일 합동군의 지원군이나 한미일 동맹군으로 자동개입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의 완성

미일동맹은 MD체제에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애써 왔으며, 사드 배치나 이지스함 배치 등은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MD체제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한다. 윤 정부 들어서 사드와 기존 배치 패트리엇 미사일을 연결해 통합운용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MD로 가는 길이다.

거기에다 GSOMIA까지 정상 가동되면 한미일 공조라는 이름의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이 사실상 완성된다는 지적들이 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징용공) 배상문제를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라 처리하기보다, 그것의 번복을 요구하며 사실상 한국정부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해 온 일본에 대해 당당하지 못한 자세로 '한일관계 회복'이라는 이름의 땜질식 봉합을 서두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 문제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미군 지휘·통제 아래 한미일 동맹 연합군체제가 갖춰질 때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수용될지도 모른다.

원한을 쌓지 말 것

중국 동해 연안 쪽에 가동 중이거나 건설이 예정돼 있거나 짓고 있는 즐비한 원전들에서 만일 후쿠시마나 체르노빌 급의 사고가 날 경우 편서풍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한반도의 운명을 상상해 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 강박 및 원한과도 얽혀 있는 중국의 과도한 개발과 환경파괴는 우리의 일상적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석탄사용 감축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중국 공장가동률 저하가 한반도 대기의 미세먼지와 날씨에 어떤 변화를 가져 왔는지 우리는 경험했다. 이처럼 정치와 경제, 국제정치와 기후 및 환경문제는 서로 연계돼 있다. 그런 면에서라도 중국과 원한을 쌓는 일은 피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지정학적 운명이기도 하다.

국내정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날로 극단화해가는 패거리 정치, 보복적인 '정체성 정치'의 강화도 원한의 업보를 쌓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더 꼬일 뿐이다. 남북관계의 철저한 실패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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