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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함께 만든 특별한 책…"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날 귀여워하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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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함께 만든 특별한 책…"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날 귀여워하셨겠지"

[프레시안 리프레시 데이] 이옥선, 김하나 작가의 <빅토리 노트>

“여러분, 하늘이랑 바다가 너무 예뻐요. 다 같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금 이 공간이 마치 우리가 함께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김하나 작가가 북토크가 시작하자마자 건넨 말이다. 지난 7월 28일 부산의 손목서가에서 <빅토리 노트> 북토크가 진행됐다. 동네책방에서 여는 '프레시안 리프레시 데이'의 첫 번째 시간이었다. 부산 영도 흰여울길 바다 코앞에 위치한 동네책방 손목서가는 커다란 창문으로 넘실대는 새파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을 보며 차를 마시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북토크는 윤슬이 올라오고 해가 붉게 물들어갈 때쯤 시작했다. 노을이 지며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과 북토크가 한 데 어우러졌다. 

<빅토리 노트>(이옥선, 김하나 지음, 콜라주 펴냄)는 이옥선 작가가 딸 김하나 작가를 낳은 날로부터 다섯 살 생일이 될 때까지 쓴 육아일기에, 이 작가가 본 70대 여성이자 어머니의 삶에 관한 에세이가 더해진 책이다. 이 작가는 김 작가를 이곳 부산에서 낳고 길렀다. 영도는 이 작가의 시댁이 있었던 곳이다. 이 작가는 그렇게 오랜 시간 영도에 드나들었지만 흰여울길이 조성된 지는 오래되지 않아, 이곳에서 <빅토리 노트>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매우 새롭다고 말하며 북토크를 시작했다. 

▲ 이옥선, 김하나 작가 ⓒ프레시안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귀여워하셨겠지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엄마와 사이가 썩 좋지 않은 때다. 엄마와 나는 대화가 잘 통하고 대부분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가끔 서로 가치관이 크게 부딪힐 때가 있다. 조금 꿍한 마음으로 코멘트를 쓰다가도 자꾸만 반복되는 “엄마가 보기론 오히려 귀엽고” 같은 문장을 마주칠 때면 마음이 몽글해진다. 엄마는 금복주에 모개에 침을 줄줄 흘리는 나를 이런 눈으로 봐줬던 사람이다.(p49)

“똥, 똥’ 하며 손가락질을 하는구나. 정말 귀엽다.”

마루에 똥을 누고 가리켜 보이는 것을 정말 귀엽다고 생각하다니 도대체 부모의 마음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나는 우리 고양이들이 간혹 똥을 매달고 들어와 거실에 떨어트리면 기겁하는데. 그러니 엄마가 마음에 안 들 때면 내가 마루에 똥을 눠도 귀여워해 준 사람이었음을 잊지 말자.(p100)

김 작가는 “엄마랑 비교적 사이가 좋은 편이고, 엄마께서 이런 보물 같은 육아일기를 저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 책이 나왔다”며 “하지만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혹은 엄마를 일찍 여의신 분들은 이 책에 대한 기사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박탈감을 많이 느끼면, 그것도 참 미안한 일이겠다”고 했다. 김 작가는 이 일기를 통해 '엄마와 나'의 사이를 과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처음엔 출간을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빅토리 노트>를 읽고 나니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키우셨겠지’라는 마음이 들어 대리만족이 된다”라는 리뷰와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엄마가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내가 아무것도 못 하는 아기였을 땐 분명히 ‘나를 이렇게 귀여워하며 돌봐주셨겠지’라는 생각이 이 책을 통해 들었다”는 리뷰를 읽었을 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이 책이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아주 큰 외연을 넓힐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고 했다.

모녀가 함께 하는 북토크는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김 작가는 “책의 서문에 엄마께서 이 일기장을 딸과 아들에게 건네고 나서 뿌듯함도 있었지만, 약간은 허탈함을 느꼈다는 부분이 있다”라며 이 작가에게 일기장을 건네준 후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었다.

이 작가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5년 동안 육아일기를 쓰기로 스스로 약속했고, 스무 살 성인이 되는 해에 주기로 다짐했었다”며 “매일 매일 부담을 갖고 쓴 건 아니고 시간이 없으면 띄엄띄엄 이라도 꾸준히 써나갔다”고 했다. “내가 소유했던 일기를 건네줬을 땐 막상 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일반적인 허전함과는 다르지만 내 소유의 어떤 물건이 없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 일기를 받고 나서 생각보다 반응이 시큰둥하다거나 소중히 간직하지 않고 잃어버린다고 할지라도 이미 넘겨줬으니 어떻게 취급해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그 <빅토리 노트>는 김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이자 보물 1호가 되었고 결국 40여 년 후 책으로 탄생했다.

▲ 이옥선, 김하나 작가 ⓒ프레시안

“세대가 다른 사람은 다른 집에 사는 게 맞다”

북토크에 참여한 20대 청중은 엄마가 쉰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사이좋은 모녀로 지낼 수 있는 방법에 관해 물었다.

이 작가는 “딸이 대학교 1학년 때 집을 떠나 생활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경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인격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했다고 생각했다”며 “딸에게 의지하겠다는 생각은 아직 손톱만큼도 없고 아직도 딸이 밥을 사면 마음이 불편하다”라며 “딸에게 내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을 아직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세대는 30년 주기를 말한다”며 “엄마와 자식의 나이 차가 30년이 넘으면 그건 한 세대라고 볼 수 없고, 세대가 다른 사람은 다른 집에 사는 게 맞다”고 말했다. “혼자 살아보면 한 독립된 개체로서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며 자식이 독립하면 반찬을 만들어 가는 엄마들이 많은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 시간에 엄마들도 여가를 즐겼으면 좋겠고, 자식들은 엄마의 노동력을 줄여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한동안 엄마랑 만나면 자꾸만 싸웠다”며 “아마도 그때 엄마는 갱년기, 나는 좌충우돌하며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였던 것 같다”고 했다. “어느 날엔 엄마와 친구들과 하듯, 남산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초를 켜고, 아코디언 연주를 들으며 함께 식사를 하니 엄마께서 무척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또 “엄마가 나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셨듯, 엄마를 내가 책임져야겠다고 미리 재단하는 건 오히려 관계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며 “엄마를 그냥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엄마의 생활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리고 엄마를 좋아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 표현을 많이 한다면 관계가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고 답했다.

더 느긋하게, 덜 보람차게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지나친 열심과 부지런함과 마당발과 기타 등등 극성스러운 ‘보람찬 인생’은 금지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부터 좀 느긋하게, 좀 덜 부지런하게, 또 좀 덜 보람차게 주말에도 집에서 좀 뒹굴거릴 수 있는 자유라도 누리고 다 같이 한 템포씩 느리게 갈 수 있는 부지런 금지법을 만드는 건 어떨까?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단다. 최선을 다하지 마라,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공부도 그렇다. 해석이야 여러분 말대로.(p318)

이 작가는 <빅토리 노트>의 에세이에서 ‘부지런 금지’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자신을 다그치는 극성스러운 삶의 태도를 경계한다.

김 작가는 “엄마께서는 늘 마음이 편한 게 가장 중요하다”며 “마음을 다그치며 사회적인 성취나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게 오히려 자신을 갉아먹을 수도, 환경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다고 했다. “주변에 친절하고 선량한 시민이 되어라”라는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하셨는데 이런 마음이 형성된 계기에 관해 물었다.

이 작가는 “사람들이 성공에 목을 매고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태어날 때 가진 것 없이 태어났다”며 “넘치게 애쓰지 않고, 남을 위해 나를 너무 희생하지 않고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엄마께서 이런 마음으로 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알아서 앞가림하며 잘 살라고 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은 것 같다”며 “결혼을 안 할 거냐고 한평생 두세 번 정도 물어 왔을 때, 안 한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안 해도 잘 살겠지”라고 생각하셨기에 서로 거리를 잘 유지하고 지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결혼하고 안 하고는 개인의 선택이며 보통 결혼을 안 한 여자들을 압박하는 이유가 나중에 나이가 들고 혼자 돼서 고생한다고 하는데, 누구나 대부분 마지막에는 혼자 살게 된다”며 “혼자 사는 사람도 아주 쾌적하고 건강하게 잘 가꿔나가면 아무 문제가 없고,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씩씩하게 잘 살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 이옥선, 김하나 작가 ⓒ프레시안

배우고 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 작가는 요즘 독서와 요가, 등산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75세라는 나이에도 활력있는 삶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한 물음이 이어졌다.

이 작가는 “두 아이를 낳고 1년씩 수유하고 나니 30대 후반쯤부터는 허약 체질이 되어 툭하면 아팠다”며 50대부터 운동을 조금씩 시작했다고 했다. 3, 40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가족들을 먼저 챙기지 말고 우선 본인 건강부터 챙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가사일을 될 수 있으면 외주를 줘라, 식기세척기, 건조기, 무선 청소기 등 살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모든 가사 일을 하는 기계를 사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사소한 일상 노동이 우리 체력을 굉장히 많이 소모 시킨다”며 “가사 노동을 너무 잘하려고 하면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으므로 스스로 여가를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엄마는 유튜브도 많이 보시고 신간 소식을 저보다 빨리 아신다”며 본인 스스로 호기심 및 유연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 작가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즉, ‘배우고 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있다”며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고 요즘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요즘 맥도날드 키오스크 앞에서 큰 소리로 소리치면서 화를 내는 할아버지들이 있는데, 할 수 있는 만큼은 세상이 변해가는 것에 따라가고 배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75세에 출간한 첫 책

75세에 책이라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나이를 먹고 <전국노래자랑>에 나와서 장기자랑을 하는 할머니와도 닮아 있는 느낌이다. 즉, 그 할머니 ‘늙었는데도’ 노래를 제법 잘하네, 라는 평가에 슬쩍 묻혀가는, 또 수상을 못 하더라도 이 나이에 무대에서 노래를 끝까지 부른 것만도 어디냐 싶은 자기만족 같은 변명일 것이다.(p7)

“요즘 엄마와 저의 관계는 참 희한한데 엄마의 소식을 지면 인터뷰를 통해서 듣고 있어요. 엄마가 한 인터뷰에서 답변하시길 ‘김하나! 너는 내가 꼭 원했던 딸이야!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너무 좋아. 너무 느끼한가요?’라고 하셨더라고요. 엄마가 75세가 되어서 책이 나오고 인터뷰가 있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기를 제가 직접적으로 듣게 됐을까요?”

김 작가는 “인생에는 다양한 순간들과 가능성, 경험의 시간이 있고 어떻게 흘러갈지 정말 모른다”며 75세에 첫 책을 낸 엄마에 대한 감회를 전했다.

이 작가도 “살면서 내가 명품백을 들거나 브랜드 옷을 입는 것보다 75세에 책 한번 낸 게 얼마나 대단한 '플렉스'예요”라며 마지막 소감을 말했다.

바닷가 작은 책방에서 열린 '모녀의 특별한 북토크'는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김 작가는 “시작할 때 우리가 마치 한배를 탄 것 같다고 했는데, 노을이 지는 바다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 배 위에서의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소감을 건네며 북토크를 마무리했다. 

▲ 부산 영도의 <손목서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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