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정치적 파산
0.73 프로 차이로 당선된 윤석열의 취임 100일은 암울하다. 그것은 그 자신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의 입장에서도 그러하다. 움직였다 하면 소란스럽기 그지없고 손대었다 하면 망가지기 일쑤인 상태가 반복적으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국민의 재산을 손만 대면 팔아먹을 궁리부터 하는 상황조차 폭로되고 있다. 이러다가 국가 전체의 재앙적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국민적 역량과 자산이 총집결되어 있는 국가의 운영 능력이 바닥인 것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여기에 무식과 독단까지 결합해서 총체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중이다.
윤석열 개인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는 보통의 시민들보다 훨씬 게으른 일상생활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국가 최고 권력자로서 감당해야 할 공적 사안에 대한 직무유기 상태가 적지 않게 목격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보다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공직인데 그 기본이 무너진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의 사안으로, 국정기능의 마비에 이르는 사태다. 침수현장을 목격하고도 폭우 대응은 하지 않고 퇴근해버린 모습에 국민들이 오죽하면‘무정부 상태’라는 한탄을 했겠는가.
그렇게 되는 까닭은 분명하다. 검찰직할 통치체제를 만들어 권력을 누리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국정 사안의 핵심들을 짚어가면서 국민적 고통을 해결하는 의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국민의힘은 권력다툼에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으니 국정의 무한책임을 가진 여당의 위상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권력은 이들에게 이권을 나눠먹을 복마전(伏魔殿)일 뿐이요, 정치는 그 복마전을 독차지하기 위한 정치 조폭들의 영역 싸움이 되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쌍욕에 저질스러운 농담과 민심을 능멸하는 기고만장한 소리로 가득하다.
국민의 삶을 위해 극도의 헌신을 해도 부족한 “정치”를 투전판 싸움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의 취임 100일은 이런 정치적 파산 지경에 놓여 있다. 지지율 급락은 민심의 정직한 반영이다. 여론기관마다 미세한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1프로 변동을 ‘지지율 상승’이라고 표현하는 일부 언론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촛불시민들이 결성한 <촛불행동>이 이미 한달 가까이 주관하면서 매주 그 전주보다 두 세배로 늘어나고 있는 시민들의 윤석열 퇴진운동을 단 한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는 현실 또한 탄식스럽다. 퇴진 서명도 순식간에 2만명을 채웠다. 이 정도 수준의 지지세는 윤석열의 국정에 대한 비토(거부)가 확산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대안인가?
그렇다면 거대 야당의 처지가 된 민주당은 또 어떤가? 정치검찰의 권력 장악과정이 뻔히 보이는데도 이에 대한 제동을 제대로 걸지 못한 채 어중간한 전투력으로 오늘의 정국을 만드는데 기여해버린 지난 시기를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 당 대표와 지도부 구성을 위한 당내 선거는 이 시대의 중대 과제가 무엇인지, 그걸 풀어내기 위해 어떤 혁신적 변화를 꾀할 것인지를 놓고 강렬하고도 높은 수준의 담론투쟁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의지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남은 것은 국민의힘과 그 강도와 수준만 다를 뿐 당내 세력 재편이 중심에 서 있다.
세력 재편을 통한 당권투쟁은 중요하나 그것은 정당의 철학과 사상, 기조와 전망이 함께 결합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위력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민주당은 새로운 정치인맥 재구성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빨려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위기에 대한 진단, 가치에 대한 논전, 해법에 대한 쟁론이 없다. 이재명의 정치적 개인기를 넘어서는 정당으로서의 집단적 발언의 무게와 위엄이 생겨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경로는 의도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공당으로서의 민주당이 아니라 특정 유력 정치인을 위한 정당으로 움직여질 가능성을 높게 한다. 그리고 그는 당내에서 비판이 금지되는 ‘정치적 성역(聖域)’으로 고착될 위험에 직면한다. 이것은 그 자신에게도 독(毒)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정부를 자임했으나 초반을 지나면서 이 말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으로 인한 기억 때문에 자제되었고 그 자제의 공백 속에서 문재인의 정치개혁 의지는 무디어져 갔으며 결국 정치검찰의 쿠데타를 용인하는 엄청난 역사적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성과 사죄조차 없게 되었으며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을 인식이나 하고는 있을까 싶은 모습마저 보였다. 취임 중 평가할 만한 성과와 기여가 있었음에도 촛불혁명의 정신은 근본적으로 배반하고 만 셈이었다. 특히 재벌개혁은 어느 틈엔가 증발되었다.
대통령 재임 당시 문재인은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끼고 도는 사이에 검찰개혁의 최전선에 파견한 조국, 추미애를 지켜주지 않았다. 조국의 경우에는 온 가족이 난도질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옥중 생활에서 병고로 시달리는 정경심 교수의 사면도 외면하고 직을 떠났다. 이것은 그를 지지하던 이들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그의 퇴임이 남긴 깊은 상흔(傷痕)이자, 당사자들에게는 치유되기 어려운 사건이다.
부유(浮遊)하는 진보적 시민들, 그 정치적 자아를 위해
이런 상황에서 시대의 진전을 갈망하는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부유(浮遊)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마음 둘 곳 없는 처지로 정치적 기대를 접고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윤석열의 정치적 균열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는 기미에 최근 다시 새롭게 자극받고 있기도 하다. 대선 이후 참혹한 절망에 휩싸였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이 시작될 수 있다는 희망이 싹을 트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으로 대표되던 진보정당의 몰락이라는 현실 앞에서 보다 포괄적인 진보의제를 담아낼 정치적 가능성을 목마르게 찾고 있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정치의 진정한 의미를 관철시켜나갈 새판짜기에 관심을 모으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대의제라는 간접민주주의 체제가 어느새 누리고 있는 특권의 요새를 타파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성취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정치적 자아’의 실현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 여기에 담겨 있다.
2016년 촛불항쟁의 결과로 민주당은 그 열매를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없다. 민주당을 대체할 정치세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래를 향해 움직일 정치세력으로서의 시민의 요구는 정치 새판짜기가 바로 대안임을 각성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당 자신에게도 의미있는 도전이며 이 나라 정치 전반의 성숙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그 길이 어떻게 열리게 될 것인지는 미지(未知)의 현실이나 그 정치적 꿈틀거림은 역사의 발전이다.
촛불혁명은 엄연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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