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단의 섬,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2016년 1500만 명을 넘었다. 코로나19에도 제주도로 향하는 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2021년 12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제주를 찾았다. 일상의 지친 삶을 내려놓고 휴식과 위안을 받기 위해 제주를 찾는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주는 어떨까. 불행히도 각종 지표들은 제주도에 적신호가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매년 늘어나는 쓰레기와 하수는 처리용량을 초과해 바다까지 오염시키고 있으며 교통난에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 수많은 숲과 목장이 골프장과 관광시절로 사라져갔고, 지금도 '관광'이란 이름으로 제주 곳곳에 무차별 삽질을 가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제주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 쉼이 필요하다. 개발의 삽질을 멈추고 제주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의 여행이 제주를 삼키는 개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여행과 제주 모두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편집자 주.
과잉관광과 난개발 부채질할 제2공항을 끝내라
제2공항 문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가 급작스럽게 환경부가 반려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보완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시점도 묘하다. 오영훈 도정 출범 하루 전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새 도정에 대한 압박까지 포함된 것으로 판단된다. 일종의 선전포고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의 반려사항을 보완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도민이 결정한 제2공항 반대민의를 원천적으로 무시하고 차단하는 데 있다.
국토부 "제2공항 보완할 것"
지난해 2월 국토부의 중재하에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합의해 추진한 제2공항 도민여론조사 결과는 제2공항 반대로 수렴됐다. 그러나 도민 다수의 반대 여론에도 국토부는 아무런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제2공항으로 인한 갈등종식을 선언하고 도민 다수의 뜻에 따라 제2공항 사업계획을 철회하는 것이 국토부의 약속이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정부 부처가 스스로 신뢰를 박살내는 행보를 이어온 셈이다.
이에 더해 국토부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제2공항을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반려 사유를 검토하고 보완이 가능한지를 검토하는 '셀프 용역'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 만에 반려 사유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치 결론을 이미 내리고 기다렸다는 듯한 행보였다. 국토부가 제2공항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 타당성을 조사·연구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에 착수한 것은 2017년 8월이었다. 만 4년 동안 본안을 포함해 모두 세 차례나 보완서를 제출했지만 환경부는 최종 반려했다. 사실상 보완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환경부가 반려사유로 지적한 내용은 크게 △조류 및 그 서식지 보호 방안에 대한 검토 미흡 △항공기 소음 영향 재평가 시 최악 조건 고려 미흡 및 모의 예측 오류 △다수의 맹꽁이(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 서식 확인에 따른 영향 예측 결과 미제시 △조사된 숨골에 대한 보전 가치 미제시 등이다. 만 4년을 환경부가 제시한 보완사유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국토부는 결국 보완을 하지 못했다. 사실 위에 제시된 4가지 사항은 해소하기가 매우 어려운 과제들이다. 일례로 조류문제와 관련해 대규모 철새도래지를 보호하면서 항공안전을 담보해야 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철새도래지를 파괴해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다수의 철새들을 몰아내지 않는 이상 항공기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민 결정 무시하는 윤석열과 원희룡
또한 환경부가 이렇게 반려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환경문제와 더불어 도민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업이란 판단도 크게 작용했다. 실제 환경부는 도민여론조사 이전에도 결론을 낼 수 있었지만 도민여론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이에 따라 반려를 결정했다. 도민여론조사는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니라 사실상의 주민투표에 버금가는 조사였다.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여름까지 국토부와 주민대책위가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된 검토위원회에서의 치열한 논쟁과 토론, 2020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제주도의회 주도로 제주도와 국토부, 비상도민회의가 참여한 여섯 차례의 TV 공개토론을 바탕으로 도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공유 받은 상태에서 이뤄진 조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합의해서 도내 9개의 언론기관에 의뢰해 두 개의 여론조사기관에서 각각 2000명씩 총 도민 4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렇게 세밀하게 여론을 확인하는 조사를 실시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찾기 어렵다.
이렇듯 환경적 입지 타당성에서도 심지어 도민수용성도 확보하지 못한 사업으로 판명된 제2공항 계획이 고작 6개월간의 셀프 용역으로 만 4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환경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느닷없이 반 년 만에 해결방안이 갑자기 생겼고 이를 통해 제2공항을 문제없이 건설할 수 있다는 셀프 용역 결과를 도대체 어떤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 더욱이 현재까지 국토부는 어떤 사유로 전략환경영향평가 반려사유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용역 결과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가 갑자기 요술을 부려 제2공항의 환경문제가 사라지는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지금의 셀프 용역결과는 사실상 기만이고 사기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전의 국토부가 한 약속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결국 윤석열 정부와 국토부 원희룡 장관은 제2공항에 수많은 중대 하자를 무시하고 셀프 용역 결과를 명분 삼아 제2공항을 강행추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민으로 하여금 스스로 내린 제2공항 반대 도민결정을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것이고, 나아가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요구는 도민결정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겠다는 오영훈 도정의 정책방향을 완전히 무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영훈 도정을 중앙권력에 굴종시키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다.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던 윤석열 정부의 실체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국토부의 '셀프 용역' 검증 받아야
결국 현재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것은 결국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오영훈 도정이 전면에 나서는 방법뿐이다. 오영훈 지사는 지방선거 당시 제2공항 찬반을 넘어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최우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연히 중앙정부가 도민들의 민의를 무시하고 굴종을 요구하는 현 상황에서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오영훈 지사는 윤석열 정부에 제2공항 강행 추진에 반대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혼돈을 만들어낸 가장 핵심 문제인 국토부의 셀프 용역에 대해서도 용역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또한 공개된 용역 결과가 정말 타당한 것인지 기존의 환경부의 반려결정을 뒤집을 근거가 되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검증할 수 있는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면밀하게 검증해야 한다. 특히 이 검증위원회는 국토부와 용역업체 관계자를 비롯해 이해당사자들이 고루 참여하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국토부가 이번 용역 결과에 자신 있다면 검증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에 더해 제주공항 활용방안에 대한 국토부의 용역 결과도 검증해야 한다. 국토부는 세계적인 항공엔지니어링 회사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용역을 맡겨 제2공항 대신 제주공항을 현대화해서 활용하는 것에 대한 용역을 수행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국토부는 비공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셀프 검증으로 추진 불가 결정을 내렸다. 현재 공항 인프라 확장의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제주공항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영훈 도정은 제주공항 확충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검증도 국토부에 요구해야 한다. 만약 국토부가 거부한다면 이미 용역을 수행한 국제적인 공항컨설팅 업체가 존재하는 만큼 이들 용역진을 초정해서 그들이 제시했던 내용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검증을 수행하면 된다. 계속되는 제2공항과 같은 새로운 공항 건설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검증이다.
도민들 "제주 환경을 지켜라"
지난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제주도민의 민심은 명백하게 제2공항 백지화로 나타났다. 특히 제2공항 조기착공을 제1공약으로 내 건 국민의힘을 제치고 오영훈 지사가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유는 제2공항 백지화를 바라는 도민의 민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제주도민은 오영훈 도정에게 과잉관광과 난개발로 신음하는 제주를 구하고 오랜 갈등을 끝내 도민 통합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한 것이다. 중앙정부에 휘둘리며 제주를 희생시키고 도민의 삶을 악화시켜 온 전임 도정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는 강력한 주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제주도민들이 느끼는 제주의 중요한 현안은 환경문제라는 사실은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여론조사로도 확인되었다.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환경훼손 및 쓰레기 문제 대책'을 꼽은 응답자가 24.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제주 제2공항 논란 등 대형 개발사업 갈등 해소'가 22.9%,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경기침체 해소책' 17.1%, '아파트 가격 안정화 등 부동산 대책' 15.0% 순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교통 및 주차난 해결'(9.8%), '시장 직선제 도입 등 행정체제 개편'(4.3%), '제주특별자치도 위상 제고 방안 마련'(2.5%) 순으로 꼽았다.
환경과 관련된 답변만 분류해서 합하면 전체 응답자의 57.6%가 현재 제주도의 환경문제가 극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민들은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파괴는 물론, 생활쓰레기와 하수, 교통문제 등 생활환경의 악화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당연하게도 제2공항에 대한 반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주도민들은 민심을 부정하고 도민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 반지방자치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도정을 이미 질리도록 경험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은 도민의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는 제2공항을 더욱 크게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민의 자존과 자기결정권을 지켜라
제2공항 반대는 이미 결정된 사항이다. 윤석열 정부와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무엇을 하던 바뀔 수 없는 사실이다. 부디 도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우를 윤석열 정부가 범하지 않길 바란다. 오영훈 도정 역시 일방적인 굴종 요구에 당당히 제주도민의 자존과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설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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