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기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게 위탁하던 관제권을 국토부 산하 국가철도공단으로 이관을 검토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토교통부가 발주한 용역보고서는 관제권 이관의 이유로 '복수의 철도 운영자'를 위해 관제권 독립이 필요해졌다고 밝혔다. 관제권 이관 주체로 '국가철도공단'을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보고서는 나아가 국토교통부 장관을 '2차 철도 마켓의 주체'라고 규정하며, "복수사업자 확대에 대비한 관제 독립성"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충북 오송에 새롭게 설립되고 있는 제2철도교통관제센터의 관제권을 코레일이 아닌 국가철도공단에 위탁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국토부가 추진해온 철도 경쟁체제를 기반으로 한 수익성 위주의 철도 운영 방침과 함께 '철도 민영화'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로부터 시작된 한 선로 위의 '복수 사업자' : 코레일과 SR
<프레시안>이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제2철도교통관제센터 관제시스템 구축 기본계획 최종보고서'를 살펴보면 "동일노선 복수사업자의 운영환경을 검토하고 국제철도 사회진출 등 복수사업자 확대에 대비한 관제 독립성 확보 방안을 제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해당 보고서는 따라서 철도관제업무를 담당해오던 코레일이 아닌 국가철도공단이 제2철도교통관제센터의 수탁기관으로 적합하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복수사업자 확대에 대비한다'는 부분이다. 현재 코레일 관제 하에 있는 사업자는 코레일과 SR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할 정도로 '철도 민영화'에 대한 여론이 냉담하자 SR 출범의 공은 다음 정부인 박근혜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SRT를 민영화하지 않는 대신 코레일 본사 직영이 아닌 자회사를 설립해서 운영을 맡기고, 철도독점시대 종식과 함께 철도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철도 노선을 분할해 민간사에 매각하는 '철도 민영화'의 포석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뒤따랐다. 그렇게 '모회사와 경쟁하는 자회사'라는 기이한 개념으로 SR이 출범했다. (관련기사 :'철피아' 놀이터 된 SR...KTX 쪼개기 5년의 민낯)
결국 '복수사업자 확대에 대비한다'는 내용은 기존 국가 철도망 혹은 신설된 노선에 SR과 같이 새로운 사업자의 진입을 허용한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철도를 운영하는 코레일과 같은 공기업을 여러 개 만들지 않는 한 이는 철도 운영권을 민간사업자에게 개방하는, 사실상 '철도 민영화'를 의미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SR을 출범시키면서 복수사업자 신설의 노하우를 축적한 국토부가 자신감을 갖고 더 과감하게 철도 운영사업 개방을 유도하고 있다"며 "결국 SR 출범은 철도 경쟁체제를 빌미로한 민영화 프로세스의 첫 관문이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 철도 관제권?
관제권은 총체적인 열차 운행시스템 관장 권한이다. 현재 운행 중인 열차들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취합해 열차를 제어하고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열차 운행계획과 이에 따른 선로배분, 사고 등 비상시의 응급조치 등 철도 운영을 주관하는 핵심기능이다. 서울 구로에 철도교통관제센터가 설립된 이래 철도산업발전기본법시행령에 따라 코레일이 관제권을 위탁받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토부는 오는 2027년부터 충북 청주시 오송에 제2철도교통관제센터가 운영을 시작해 서울 구로 철도교통관제센터 업무를 분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KTX와 SR로 나눠진 고속철도를 제2철도교통관제센터로 이관해 제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종일 국토부 철도안전정책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앞으로 철도가 고속화되고 동일 노선에 여러 열차가 운행하는 환경이 되면 철도 안전을 위한 관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왜 관제권 이관을 추진하나?
관제조직의 개선 방향으로 제시된 '관제업무의 독립성 확보' 필요성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관제업무 독립의 목적과 범위로 "철도교통관제센터의 독립성 확보방안과 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개선방안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또 "향후 복수의 운영자를 가정하여 복수 운영자들에게 객관적인 관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관제센터 내부 조직을 검토한다"며 '관제업무의 독립성' 실현 목적이 '복수의 운영자'를 위함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보고서에서 '관제업무의 독립성' 관련 문구는 60번 넘게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복수의 철도 운영 기관의 출현을 전제로 이들 간의 열차 정보를 정리·관리해야 할 '독립적인' 관제권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도노조가 관제권 이관을 '철도 민영화'의 사전 포석으로 우려하는 이유다.
관제권 이관은 불과 2년 전 기획재정부에 보고된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보고서의 내용과 배치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 9월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보고한 '2020년도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보고서 제2철도교통관제센터 건설사업' 보고서에는 "본 사업의 주무부처는 국토부이고 구축은 국가철도공단이며 운영은 구로 철도교통관제센터와 같이 코레일이 수행할 계획"이라고 적시돼 있다. 관제사업 운영의 주체는 코레일로 한정하며, 새로운 관제시스템의 수용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국토부와 코레일의 지속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당시 보고서는 강조했다. 이 같은 입장이 2년 만에 뒤집혔다.
이번 국토부의 용역보고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3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수립한 '철도안전대책'과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3년 1월 9일 국토해양부는 사고예방을 이유로 코레일이 갖고 있던 철도관제권을 철도시설공단으로 넘기는 내용의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당시 국토부는 "철도 운영 주체가 관제권까지 행사하면서 수익성 때문에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해 큰 사고를 낼 우려가 크다"고 입법예고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당시 여야의 반대는 물론,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반발로 개정안은 국무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명박 정부 당시 '철도 민영화' 의지가 다시 강해진 셈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4월 30일 국회 인사청문회 사전질의 답변서에서 철도 운영의 '복수 사용자'를 강조하며 철도관제 뿐 아니라 철도시설의 유지보수 업무도 국가철도공단이 전담하는 일원화 방안을 주장한 바 있다. 원 장관은 "현재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복수의 철도운영사가 같은 선로를 사용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관제 업무 수행이 필요하다"며 "제2철도교통관제센터 구축과 연계해 국가철도공단에서 관제를 수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와 관련해 국토부는 관제의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성균 국토교통부 철도운행안전과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유럽의 예를 들자면 여러 철도 운영사가 존재한다. 같은 철도 노선을 이용하지만 상품이 다른 철도가 있다. 그런 상황이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도래하리라고 본다"며 "관제는 교통정리다. 현재 코레일이 관제를 맡고 있는데 다수의 운영사가 선로를 사용하게 되면 공평하고 투명하게 관제가 운영될 때 안전도 따라오기 마련이다"라고 관제권 이관 검토 배경을 설명했다.
관제권 이관이 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연결이 안 되는 이야기"라며 "민자사업자들이 이미 늘어나고 있는 현황을 기반에 두고 관제의 공정성과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어 중립적 기관에서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대안 중 하나로 검토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관제권 이관이 '철도 민영화'의 포문을 열게 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선욱 철도노조 정책실장은 "관제권 이관은 철도 운영의 경쟁 체제를 전제로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도 운영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는 '철도 민영화'와 연결된 수순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철도 민영화'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관제권을 이관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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