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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민영화' 여론 기초 공사? <한국경제>의 '철도 때리기'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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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민영화' 여론 기초 공사? <한국경제>의 '철도 때리기' 클리셰

'부실 방만 기업'이라는 민영화의 올가미를 씌우는가

갑자기 나팔이 울리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소리의 발원지에는 끌려온 이유조차 모르는 사람이 묶여있다. 나팔수는 묶인 이의 죄상을 열거하고 대중은 분노한다. 기획자는 멀리서 이 장면을 보고 웃는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시대 풍경 같지만 2022년 오늘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한 단면이다.

지난 6월 14일 <한국경제>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방만 경영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냈다. 지난 5년간 코레일 등 공기업의 채용이 급격히 늘었고 이로 인해 부실이 심화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숙련도가 낮은 저연차 직원이 갑자기 많아져 업무 효율성이 저하됐다"는 익명의 인터뷰까지 붙여 큰 문제가 있는 듯이 포장한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공공기관 방만 경영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라는 해설까지 덧붙였다.

2017년에서 21년까지 5년간 코레일은 1만여 명에 달하는 신규인력을 채용했다. <한국경제>는 이를 무리한 인력 늘리기라고 말하지만 한국철도의 실태를 안다면 감히 내놓을 수 없는 주장이다. 2004년 고속철도 개통 이후 한국철도는 꾸준한 성장을 해왔다. 철도 규모를 짐작 할 수 있는 영업키로는 2006년 3392킬로미터였지만 2021년에는 4128킬로미터로 대폭 늘었다. 2017년 강릉선 개통을 시작으로 수인선, 중앙선, 중부내륙선을 비롯해 광역 전철망의 연장 개통 등으로 인력 소요는 계속 늘고 있는 실정이다.

코레일이 지난 5년간 신입사원을 대폭 채용하지 않았다면 확장되는 철도망에서 제대로 된 안전확보나 서비스 제공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대규모 신규 인력을 채용하게 된 계기도 그동안 경영정상화 명목으로 인력충원에 소극적이었던 정부 당국의 방침 때문이다. 늘어나는 일들을 부족한 인력으로 채우다 보니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등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다. 여기에 베이비 붐 세대의 정년 도래로 많은 숙련 인원이 빠져나가게 되면서 시급하게 인력을 충원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이었다. 누구라도 신입사원은 저연차 비숙련 처지가 된다. 이런 사원들을 전문가로 양성하는 것도 기업의 역할이다.

<한국경제>의 지적이 타당함을 가지려면 코레일이 정부가 정한 정원을 심각하게 초과하는 인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의하면 코레일 정원은 3만2461명이고 현원은 3만151명이다. 문재인 정부 때 철도공사 인력을 대폭 채용하지 않았다면 한국 철도는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부실 철도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철도 인력 충원은 진보냐 보수냐는 정권의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철도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전제 아래 진행되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이어서 지난 5년간의 영업손실과 적자를 이야기하며 방만 경영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저널리즘 정신을 망각한 언론들이 취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접근 방식이다. 과다한 인력 → 영업손실 → 적자 → 방만 경영의 늪 → 공기업은 문제 → 대안은 경쟁체제 또는 민영화라는 공식이 등장한다.

한국철도의 영업손실과 적자는 소위 경쟁체제 구축을 통한 철도 효율화 명목으로 SR(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가 출범하면서 깊은 늪에 빠졌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승객 감소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음은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가장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명절 기간조차 창가 쪽 좌석만 판매하고 해외 입국자 격리 전용칸을 운영하는 등 선제적으로 정부의 방역정책을 수행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한 시민들의 이동 자제로 수요 자체가 하락하는 현실에서 영업손실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도 같은 상황이었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철도를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2020년 독일 연방정부는 노사정 대표로 구성된 합동위원회를 통해서 코로나19의 불가피한 상황에 따라 2024년까지 한시적으로 독일철도공사(DB)의 철도 부채한도 증가를 허용했다. 프랑스는 교통법에 따른 "순금융부채/엉업이익 비율"에 따른 프랑스철도공사(SNCF)의 부채 관리기준을 1800%에서 600%로 강화하고자 했으나 코로나 19로 2027년까지 기준 적용을 유예했다. 이처럼 철도공사의 경영 부담을 완화해 주는 것과 별도로 직접적인 재정지원도 이루어졌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슬로바키아, 이란, 베트남 등 많은 나라에서 영업손실에 따른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세금을 감면했다. 이탈리아는 시설사용료를 감면하는 법령을 발표해 2.7억유로(3,644억원)에 이르는 철도공사의 부담을 경감해주었다.

철도가 코로나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가 싶은데 부실 방만 기업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새 정부가 점령군이 되어 공기업 사장들을 대폭 물갈이하고 경쟁체제와 민영화로 가는 기초공사를 하려 한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저널리즘의 제일 사명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저널리스트는 권력의 질주를 막고 강자의 폭주를 제지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켜내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관계자, 정부 당국 등 익명을 등에 업고 권력의 나팔수를 자임하는 언론은 공동체에 겨누어진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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