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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삶이냐, 1%를 위한 돈이냐

[해외시각] 마이클 허드슨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1

<프레시안>은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4월 3일에서 5월 16일까지 미국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캔자스시티 미주리대 명예 교수)의 인터뷰("세계화는 끝났다. 미래의 승자는 중국/러시아다")를 비롯해 4편의 글과 인터뷰("독일, 지난 100년간 세 번째 미국에 패배하다", "달러가 유로를 집어삼키다", "재난 자본주의'의 극치, 우크라이나전쟁")을 소개했다.

이처럼 허드슨 교수의 발언을 집중 소개한 것은 그가 서방 경제학자로서는 드물게 미국 주도 금융자본주의의 약탈적 성격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서방과 비서방 간 경제전쟁으로서 우크라이나전쟁의 본질적 성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즉 우크라이나전쟁은 미국 등 서방의 금융적 약탈로부터 자립적 경제를 수립하려는 중국, 러시아 등 비서방의 투쟁이 빚어낸 산물이라는 것이다.

허드슨 교수는 지난 5월 새 책 <문명의 운명 :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를 통해 앞으로 인류는 1% 부자들만을 위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에 계속 얽매일 것인지, 아니면 99% 국민들의 삶의 향상을 위한 중국식 혼합경제(산업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를 추구할 것인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전쟁의 향방이 인류의 경제적 삶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책의 제목을 '문명의 운명'이라고 지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문명의 운명> 발간과 관련한 허드슨 교수의 장문의 인터뷰를 9일부터 4차례로 나누어 소개할 예정인데, 이에 앞서 마이클 허드슨이란 어떤 인물이며 현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관해 어떤 학문적 업적을 남겼는지 알아본다. 

달러패권과 금융의 지배

허드슨 교수는 1972년 첫 저서 <수퍼 임페리얼리즘 ; 미 제국의 경제전략>을 통해 1971년 8월의 달러 금태환 정지가 달러헤게모니의 종말이 아니며 이후로도 달러본위제에 의해 미국의 달러패권은 한동안 계속될 것임을 밝혔다. 그는 또한 2006년 5월 잡지 <하퍼스>에 발표한 글을 통해 미국의 무분별한 불량 주택 대출로 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을 예측했다.

그는 1994년 이후 하버드대 피바디박물관과 함께 청동기시대 근동지역 경제사 연구를 통해 5권의 고대 근동 경제사 좌담집을 펴내는 등 지난 5천년간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서양 경제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화폐 및 노동의 기원과 부채가 경제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했다. 그에 따르면 부채는 필연적으로 경제의 양극화를 초래해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이 때문에 고대 근동의 군주들은 주기적으로 변제 불가능한 부채를 탕감하는(clean slate)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부채 회수보다 경제 및 사회의 안정을 중시했던 이러한 전통은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채권자의 부채 회수를 우선하는 쪽으로 바뀌었으며 이후 유럽 등 서방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2011년 월가점령운동을 주도했던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2020년)가 펴낸 <부채, 첫 5천년의 역사>(2012년)는 바로 이러한 허드슨의 연구 결과를 대중적으로 풀어쓴 책으로 그레이버는 "마이클 허드슨은 확실히 가장 혁신적이며, 내 생각에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사학자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 중 허드슨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준 사람은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또한 레이건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을 역임한 폴 크레이그 로버츠는 "마이클 허드슨은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다. 어쩌면 세계에서 유일한 경제학자라고도 할 수 있다. 나머지 경제학자들의 거의 모두는 신자유주의자들이며, 경제학자라기보다는 금융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야바위꾼들일 뿐이다"라고 평가했다.(<카운터펀치> 2016. 2. 3)

허드슨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 등에 대한 자문을 통해 비서방 국가들이 미국의 금융 지배에서 벗어나 자립적 국민경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탈달러화, 탈동조화(de-coupling)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해 왔다. 즉 달러 패권을 바탕으로 세계에 대한 금융적 약탈을 자행하는 미국의 경제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달러화 사용 및 미국 경제와의 절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러시아에 강력한 경제 제재를 단행한 것은 역설적으로 탈달러화와 탈동조화, 나아가 비서방의 경제적 자립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한다.

▲마이클 허드슨 교수. ⓒGlobal University for Sustainability 유튜브 화면 갈무리

사회주의 노동운동가의 아들, 달러 패권의 비밀을 밝히다

마이클 허드슨은 1939년 3월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당시 미네아폴리스는 전 세계에서 트로츠키주의가 가장 강력한 도시로 알려졌는데, 아버지 카를로스 허드슨은 멕시코에 망명 중이었던 트로츠키와 함께 활동했던 사회주의 노동운동가였다. 트로츠키는 마이클의 대부였다고 한다. 카를로스는 1934년 미네아폴리스 총파업을 주도했고(노동운동 잡지 <Northwest Organizer>의 편집자), 1942년 사회주의자 단속을 위한 스미스법에 의해 투옥된 미네아폴리스17 중 한 명이었다.

허드슨은 시카고대학에서 독일철학 및 예술사를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후 출판업에 종사하다 1961년 루카치와 트로츠키의 저서를 출판하기 위해 뉴욕으로 왔으나 출판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아일랜드 출신의 마르크스 경제학자 테렌스 매카시를 만나 경제학에 빠져들었다. 매카시는 마르크스의 <잉여가치학설사>를 처음 영어로 번역한 사람으로 허드슨은 매카시를 사사하면서 이 책에 인용된 모든 고전파 경제학 저서들을(아담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에서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독파했다.

허드슨은 뉴욕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동안(19세기 후반 보호무역에 의한 미국의 산업화 과정을 분석한 논문으로 1968년 박사학위) 은행과 대기업 등의 통계분석가로 일하면서 미국 경제의 실상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1961년부터 3년간 신용금고(savings and loans)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신용대부조합 본부(Savings Bank Trust)에서 통계분석가로, 이후 석유재벌 록펠러그룹의 체이스맨해탄은행(1964-67년)에서 중남미 국가들의 국제수지를,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에서(1968-69년) 미국의 국제수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미국 국제수지 적자의 거의 대부분이 군사활동(베트남전쟁)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1968년 반전 입장의 좌파 잡지 <램파트> 기고를 통해 조만간 미국의 금 태환이 중단될 수밖에 없음을 예측했다. 미국은 이미 한국전쟁 때부터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연간 국방 예산을 4배 증액) 인해 국제수지가 악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달러의 금 태환 정지가 달러 패권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논증했다는 점이다. 그는 1972년 9월 첫 저서 <수퍼 임페리얼리즘 ; 미 제국의 경제전략>을 통해 미국과의 무역 흑자 등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인 외국의 중앙은행이 잉여 달러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미 국채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 태환 정지 이후 외국 중앙은행은 잉여 달러를 금으로 바꿀 수 없게 됐고, 그렇다고 미국 내 자산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외국이 아무리 달러가 많다 하더라도 세계의 패권 국가인 미국의 핵심 기업을 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1971년 이후 세계의 통화체제가 달러본위제가 되면서 어떤 나라든 자국의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려면 반드시 일정액 이상의 달러화 자산을 보유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전락했지만,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특권을 이용해 일본이나 독일(이후 중동 산유국과 중국) 등 국제수지 흑자 국가들이 (국채 매입 등의 형태로, 사실상 무기한) 미국에 맡겨 놓은 달러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남의 돈으로 대외 군사 활동 비용을 조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재정 적자까지도 감당하는 혜택을 확보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미국이 독일, 일본 등 서방국가들에 대해서는 채무국이었지만, 나머지 제3세계 국가들에(Global South) 대해서는 채권국으로서 금융적 약탈을 자행했다는 점이다. 즉 미국의 달러 빚을 진 국가가 그 부채를 갚지 못할 경우, 미국은 해당 국가에 대해 부채 회수를 명분으로 고금리, 복지 혜택과 임금 삭감 등 긴축을 강요하는 한편 은행을 비롯해 교통, 통신, 전력, 상수도 등 사회 인프라를 미국 등의 투자가에게 매각하도록(민영화) 함으로써 독점이윤(지대)을 실현한 것이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 등에서 바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수퍼 임페리얼리즘>이 발간될 당시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진보 학계보다는 경제 언론, 특히 미국의 정책당국자들이 더 컸다고 한다. 당시 진보 학계 등에서는 달러의 금 태환 정지를 미국 경제 패권의 동요로만 해석한 반면 미국 정책당국자들은 이 책에서 미국이 채무국이면서도 달러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비책을 발견했던 것이다.

허드슨은 책 발간 직후 한 모임에서 금 태환 정지 이후에도 달러 패권이 지속될 것임을 발표했는데, 당시 이 모임에 참가했던 저명한 핵전략 이론가 허만 칸이 그를 자신의 허드슨연구소에 채용하면서 미국 정책당국에 추천한 것이다. 이후 허드슨은 백악관과 CIA, 국방부와 국무부 관리들을 대상으로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한 방책을 숱하게 브리핑했다. 이 만남들을 통해 허드슨은 미국 대외전략가들의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허드슨의 <수퍼 임페리얼리즘>은 발간 직후 스페인, 러시아, 일본 등에서 번역 출판됐으나 일본에서는 미국의 압력으로 1975년 회수됐다(2002년 도쿠마쇼텐 재출판). 2003년 출간된 2판이 2008년 중국에 처음 소개됐고, 2021년 3판 역시 중국에서 출간됐다.

사실 허드슨이 <수퍼 임페리얼리즘>을 저술한 문제의식은 비서방이 자립적 국민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달러 패권을 앞세운 미국 주도 국제 통화체제와 국제 무역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이는 실현 불가능한 과제였다. 1973년 10월 1차 석유 파동을 계기로 제3세계 국가들의 자원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새롭고 보다 평등한 국제경제질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허드슨은 이에 호응해 1977년 <지구적 분절 : 신국제경제질서(Global Fracture :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를 펴냈다.(이 책은 1984년 주종환 교수에 의해 <미국의 경제전략과 제3세계>란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허드슨이 이 책에서 주장한 비서방의 경제적 자립은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과제였다. 비서방의 경제적 역량이 미국 중심의 서방에 비해 훨씬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중국 경제가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 반면 미국/유럽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이제 비서방이 탈달러화와 탈동조화를 통해 미국의 경제적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마련됐다고 허드슨은 평가한다.

경제 양극화의 주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경제학자로서 그의 강점은 풍부한 경제 현장 경험과 고대 근동 이래 지난 5천년간의 서양경제사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바탕으로 실제 경제 현실에 대응하는 경제 이론을 펼친다는 점이다. 특히 그는 경제학에 입문할 당시부터 자신의 관심은 부채 문제, 즉 부채가 어떻게 해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지, 보다 구체적으로는 금융 이익의 추구가 어떻게 실물경제를 위축시키는지를(금융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의 대립) 규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신용대부조합 본부에서 3년간 통계분석가로 일하면서 은행 대출의 대부분이(80%)가 공장 건설과 같은 산업 생산이 아니라 주택 등 부동산 구입에 쏠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러한 부동산 대출은 결국은 자산 거품으로 이어지고, 자산 거품이 붕괴되면 부채 디플레에 의해 실물경제가 위축될 것임을 예측했다.

또한 체이스맨해탄은행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국제수지를 분석한 결과 이미 1960년대부터 이들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의 추가 대출을 받아야만 겨우 이미 빌린 원금의 이자만을 갚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즉 외채를 바탕으로 자국의 산업 능력을 발전시켜 외채를 갚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농산물과 원자재 위주의 개발도상국과 산업능력이 있는 선진국 간의 자유무역은 필연적으로 개발도상국의 대외의존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는데도(자유무역 제국주의) 서방의 경제학에서는 양측이 모두 이득을 얻는다는 허구의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외채 대출을 통해 대미 경제 종속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1969년부터 뉴욕의 뉴스쿨에서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에 관한 강의를 맡았는데, 기존 경제학 교재와 체이스맨해탄은행 등에서 통계분석가로서 자신의 현장 경험에서 알게 된 실제 경제 현실이 너무도 다르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특히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들이 서방의 외채를 갚을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서 이들 국가의 정상적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부채를 탕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주장은 너무나 과격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그는 3년 만인 1972년 대학 강단을 떠났다.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모든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경제적 상식으로 굳어져 있던 터였다.

이미 이때부터 허드슨은 금융자본이 실물경제에 부과하는 부채의 부담이 실물경제를 위축시키고 국민의 생활수준을 저하시킨다는 확신을 품고 있었지만, 당시 뉴스쿨 경제학과의 학과장이었던 로버트 하일브로너는 착취의 핵심은 사용자에 의한 노동자의 임금 착취라며 이러한 허드슨의 주장을 일축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금융자본의 착취적 성격은 좌우를 막론하고 기존 경제학계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허드슨은 1970년대 말부터 유엔교육조사연구소(UNITAR)의 경제고문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교역 및 부채 문제를 계속 연구했고, 1980년 멕시코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중남미의 외채 위기를 예견하면서 해법은 부채 탕감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의 주장은 커다란 반발에 직면했지만, 실제로 1982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차례로 디폴트에 직면했고 결국 미국은 브래디 플랜을 통해 이들 국가의 외채를 일부 탕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허드슨은 1980년부터 고대 이후 화폐 및 노동의 기원과 부채가 경제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했고 1984년 그의 연구 결과가 일반에 알려지면서 하버드대학 고고인류학과 소속 피바디 박물관의 바빌로니아 경제사 연구위원으로 위촉됐다. 이후 허드슨은 이러한 경제사 연구 업적을 바탕으로 장기경제추세연구소(ISLET)를 설립했고 1994년부터 2015년까지 고대 근동경제사에 관한 5권의 좌담집을 편집, 출간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하이만 민스키 등에 의해 현대화폐이론(MMT : 통화 및 신용 창출을 기존처럼 민간 상업은행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 골자)이 제기됐고, 이 무렵 허드슨은 MMT 이론의 본거지인 캔자스시티 미주리대(UMKC)의 연구교수로 부임했다.

1980년 이후 대처와 레이건 등에 의해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가 미국 등 세계를 석권하면서 허드슨은 1980년대 중반부터 금융자본의 득세가 실물 경제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것임을 경고하는 책을 쓰려 했으나 어떤 출판사도 그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금융자본이 민영화와 금융화에 의해 주택 등 부동산과 주식, 채권 등의 가격을 크게 올리면 그 혜택은 상위 1%가 독점하는 반면 생산과 소비 등 실물경제에 돌아갈 재원이 고갈돼 산업 생산이 위축되고 생활수준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그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의 일반 가정은 주거비용(집세 또는 주택 할부금)으로 소득의 35-40%, 학자금 및 신용카드 대출 이자에 10%, 의료보험 및 각종 세금으로 15%, 사회보장 및 메디케어 납부금으로 7.5% 등 소득의 70% 가까이 지출하느라 소비 여력이 거의 없다고 한다. 소비가 위축되면 실물 경제도 위축딜 수밖에 없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제임이 입증됐으며 이후 그는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기고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허드슨은 <하퍼스> 2006년 5월호 표지 기사를 통해 금융위기 도래를 예측했는데, 이와 관련파이낸셜타임스는 "일부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금융위기를 예측할 수 있었나" 기사에서 허드슨을 금융위기를 예측한 8명의 경제학자 중 하나로 꼽으면서 "2006년 마이클 허드슨은 '부채 디플레가 실물경제를 위축시키고, 실질 임금을 감소시킬 것이며, 미국의 부채경제를 일본식 불황, 또는 그보다 더 악화된 상태로 이끌 것'이라고 썼다. "중요한 것은 허드슨 등 일부 분석가들이 주택 대부 붐의 종말과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한 것은 물론 이에 따라 미국이 불황에 빠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2009. 9. 8)

금융자본의 약탈이 산업 생산 및 생활 수준을 위축, 악화시킨다는 그의 주장은 <거품과 그 이후(The Bubble and Beyond, 2012년)>, <숙주 죽이기(Killing the Host, 2015년 : 기생충에 불과한 금융자본이 몸체인 실물경제를 잡아 먹는다> 등 그의 저서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캐나다와 라트비아, 그리스 등의 경제고문을 지냈으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는 주로 중국과 러시아 등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또한 중국 우한 화중과학기술대 명예교수와 베이징대 마르크스연구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데이비드 하비, 사미르 아민 등과 함께 2018년 설립된 홍콩의 지속가능 글로벌대학(全球大學 : Global University for Sustainability. Global U)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중국 사상가 원테쥔이 본 허드슨

이 책 <문명의 운명>은 위의 '지속가능 글로벌대학(全球大學)'의 요청으로 지난 2020년 9-12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10회 강연을 책을 묶은 것이다. 이 강연은 2021년 4-8월 70개 주제로 나눠 유튜브 등으로 방영됐는데 첫 회 18만 8천명을 비롯해 평균 3만명이 시청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중국의 사상가 원톄쥔은 다음과 같이 허드슨의 학문적 업적과 중국 등 비서방의 경제적 과제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국의 금융 및 군사 헤게모니가 촉발하는 긴장이다. 미중 대결은 세계의 가장 중요한 분쟁으로 현재 세계는 국제적 전환의 과정에 있다. 미중 대결의 핵심은 중국의 산업경제와 미국의 금융화된 지대 추구 경제 중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할 것이냐이다.

경제적 지대란 '고유한 비용 가치를 초과하는 시장 가격' 즉 불로소득(unearned income)으로 19세기 고전경제학에서는 지주, 독점세력, 채권자(의 지대 추구)로부터 시장의 해방을 추구했다. 반면 1980년 이후 서방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서는 이에 대한 반동을 추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란 한마디로 금융이 노동과 산업은 물론 정부보다 우위에 서는 체제다.

역사적으로 산업국가가 부와 권력을 성취하기 위해서 정부는 지주계급의 지배를 막고 지대 추구 세력을 억제해야 한다. 산업적 번영을 위해 정부는 공공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생활비용과 기업의 사업비용을 줄여줘야 한다.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공공서비스는 화폐와 신용의 공급이다. 19세기 고전경제학에서는 화폐와 은행은 공공재이어야 했다.

오늘날의 반고전파 경제학에서는 금융서비스가 생산활동으로 분류돼 GDP에 포함된다(금융 이익과 기타 경제적 렌트도). 이로 인해 금융조작에 의한 부의 창출(wealth creation)로 실제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이 일어난다. 그러나 실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지대 부문일 뿐이다. 이는 실질적 경제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며 단지 채무자, 임차인, 소비자의 소득을 채권자, 지주, 독점세력에게 이전시킬 뿐이다. 이는 공공 부문을 사영화함으로써, 독점자본이 지대를 추출할 수 있게 한다.

중국은 정부의 경제계획과 민간 부문의 이윤 동기를 결합한 혼합경제와 고전적 산업정책을 추구함으로써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 등 서방경제는 극소수의 지대 추구 세력이 경제를 통제하는 새로운 중앙계획가가 되어 부채와 높은 생활 및 사업비용에 시달리는 노동과 산업을 착취하고 있다. 탈산업화라는 미국적 질병은 산업 생산의 비용 증가에 의한 것이며 금융화된 독점자본이 경제적 지대의 끊임없는 확대를 추구한 탓이다.

이러한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외교적 압력에서 벗어나려면 다음과 같은 대응이 필요하다.

1. 경제 통계에서 실제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 부문과 소득의 이전에(채무자, 임차인, 소비자의 소득을 채권자, 지주, 독점세력에게) 불과한 금융 지대 부문을 분리해야 한다.

2. 가장 성공적인 경제는 혼합경제이다. 화폐와 신용, 토지, 공공서비스(교통, 통신, 전력, 수도, 교육, 보건 등), 자연자원 등은 정부가 통제하면서 국민(노동자이며 소비자)과 기업에 실제 비용만 부담시키든가 아니면 정부 보조까지 더해 제공함으로써 민간 부문의 생활비용과 사업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3. 비생산적인 채무를 줄이기 위해 모든 경제적 지대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세를 부과해 금융화를 방지해야 한다.

허드슨 교수에 따르면, 미국 외교의 핵심 목표는 지대 추구 과두세력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세계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미국예외주의란, 미국은 국제법을 무시할 수 있고, 다른 나라에 미국식 정책을 강제할 수 있으며, 외국의 경제에서 지대 추출이 가능한 부문(은행, 광산개발권, 첨단기술 독점)의 통제권을 미국이나 서방의 다국적 기업에 양도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인 미국은 달러화된 국제결제 시스템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미국의 세계적 군사 활동 비용을 대주도록 강제(각국 중앙은행은 자국 보유 달러로 미 국채를 사거나 미국 은행에 예치)하는데 이것이 바로 빚에 기초한 달러 헤게모니의 버팀목이다. 이러한 달러 함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중국은 다른 독립적 국가들과 함께 새로운 국제결제 시스템을 개발하고, 무역과 투자 관계에 대한 국제법의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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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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