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실시된 지방선거의 전국 투표율은 50.9%이다(광주 37%, 대구 43.2%, 경기 50.6%). 2002년 지방선거 투표율 48.9% 이후 가장 낮았다. 이처럼 낮은 지방선거 투표율은 이념, 계급계층, 세대, 성별, 지역, 남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권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유권자들이 국민의 다양한 이해요구를 실현하고 정치 효능감을 높일 새로운 정치세력 및 정치구조를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낮은 투표율의 의미와 정치개혁
이는 2016-2017 촛불 민주주의 항쟁 이후 유권자가 보인 대리-대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거부인 동시에 직접 민주주의 정치 실현의 요구이자, 중앙 중심의 엘리트 패권 정치에 대한 불신과 거부인 동시에 생활권 중심 자치 권력에 대한 점증하는 요구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로 대리-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직접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과 생활권 지역에서 주권자로 자기 결정권을 실현할 자치분권, 참여자치, 생활정치 체제로의 정치 교체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금융화폐 버블 붕괴, IT 버블 붕괴, 부동산 버블 붕괴,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기존 시스템이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시스템을 일부 고쳐서 쓰는 방식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농업 사회가 왕정과 봉건 사회 시스템으로 유지되고 발전하였다가 산업 자본 사회가 되면서 대의 민주주의 시장 경제 시스템으로 전환되었듯이, 현재의 사회를 지탱하는 거의 모든 시스템을 새 것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위기, 불평등 위기, 기후변화 위기, 패권전쟁 위기 등을 극복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AI기반 X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면서 새로운 지식, 기술, 정보를 누가 소유하고 향유할 것인가를 두고 전쟁 아닌 전쟁을 하고 있는 시대전환 상황에 살고 있다.
생산과 교환, 노동과 성과 관리, 화폐 금융 자산 운용, 효율성과 계량화 등으로 유지하고 있는 산업 자본주의는 결과적으로 불평등과 빈부격차, 저성장, 실업, 경기침체, 인플레이션, 기후위기, 패권전쟁 등의 총체적 복합 위기로 인류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총체적 복합 위기를 맞이한 산업 자본주의와 소수의 자본과 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디지털-AI기반 X차 산업, 지식과 정보, 소통과 공감, 네트워크와 연대 등에 기초하고 자산과 사회 자본 축적의 동력이 되는 인지 자본과 사회 자본의 융합을 이루는 공정과 공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시스템 체인지와 사회전환을 이뤄야 한다.
국민 주권 강화를 위한 직접 민주주의 헌법 개정
새로운 한국 사회 시대 전환의 정치 개혁 안으로는 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 등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 비례성 강화·다당제·연합정치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지역당 설립을 위한 정당법 개정, 읍면동장 주민직선제를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의 정치활동 자금 조달을 위한 정치자금법 개정 등이 있다.
대의 기능과 합의 기능을 전제로 한 대의제 기반의 현행 헌법이 대의제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전면적 개편을 요구받고 있다. 대의 기관의 무능과 부패,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며 엘리트기득권화 된 정당, 이익 단체와 압력 단체 및 자본에 휘둘리는 정치 행태, 주권자인 국민의 직접정치 참여 요구의 증대 등으로 대의제에 기반한 헌법 체계가 아니라 직접 민주제에 기반한 헌법 체계로 바꿔야 한다.
현행 헌법 제72조를 보면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현행 헌법은 국민투표 대상을 헌법개정안과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으로 한정하고 있다. 국민이 직접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여 국가 안위 및 국민 생활에 필요한 정책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를 도입해 다양한 국민투표가 실행될 수 있어야 한다. 선례로 1954년 헌법 개정 당시는 50만 명 이상의 민의원 선거권자가 헌법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었다.
국민발안제는 일정한 수 이상의 선거권자가 헌법개정안, 법률제개정안, 국가 중요정책에 대하여 입법부나 행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직접발안제와 간접발안제 두 가지가 있다. 직접발안제는 법령 제·개정 등의 탄원이 있을 경우 입법부나 행정부의 논의를 거치지 않고 바로 투표에 부치는 발안제이고, 간접발안제는 입법부 등의 논의를 거친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에는 규정되지 않은 제도인 국민발안제는 직접민주주의의 중추핵심 내용이다. 지방자치법 제19조는 '주민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하거나 폐지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일부 주민발안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민발안제는 1891년 스위스연방공화국 연방헌법에서 처음 제정되었다.
국민소환제는 일정한 수 이상의 선거권자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 중에서 부적격자를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투표에 의하여 파면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에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가 없다. 현재의 정치 불신이 특권화 된 불량 국회의원으로부터 많이 기인하는 만큼, 선거권자에 무한 책임이 있는 자인 선출직 국회의원은 책임 정치의 구현이라는 면에서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례성 강화, 다당제, 연합정치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선거제도가 정당 구도를 만들고, 정당 구도가 행정부 형태를 규정하며, 행정부 형태가 행정부와 입법부 간 권력 관계를 많은 부분 결정한다. 지역주의와 결합한 우리의 소선거구 1위 독점대표제는 각기 정당이 국민의 지지만큼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고 민의를 왜곡하여 대표하고 있다. 국가 사회에는 이념과 정책, 계급계층, 지역, 성별, 세대별 등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존재하므로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정치 세력인 다양한 정당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정당의 구조화를 위한 선거제도에 있어 핵심은 비례성이 높은 정당명부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논의 되고 있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소선거구제 보다 비례성은 조금 높아질 수 있지만, 지역주의 풍토가 강한 상황에서는 금권 부패 정치와 지역주의에 편승한 사익집단 편취 정치가 우려되며 소수대표성 문제도 내재하고 있다. 정당명부비례대표제에는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는 전면비례대표제와 비례성과 지역대표성을 결합한 혼합형비례대표제가 있다. 비례대표-소선거구제 연동제인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비례 대표성에 기반하고 지역 대표성을 결합한 합리적 선거제도이기에 우리 공직선거법 개정 방향이다. 관련 현안으로는 비례위성정당 설립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것이 있다. 비례성 강화 선거법 개정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실현할 다당제를 구조화하고 각 정당을 이념과 정책 정당으로 만들어 합의적 연합정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지역당 설립을 위한 정당법 개정
정당법 제3조(구성)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 제4조(성립) ①정당은 중앙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함으로써 성립한다. ②제1항의 등록에는 제17조(법정시·도당수) 및 제18조(시·도당의 법정당원수)의 요건을 구비하여야 한다.
제17조(법정시·도당수) 정당은 5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 제18조(시·도당의 법정당원수) ①시·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법정당원수에 해당하는 수의 당원은 당해 시·도당의 관할구역 안에 주소를 두어야 한다.
위 사항은 우리 법이 규정한 정당 설립 조건이다. 정당설립 요건을 과도하게 높게 설정해 지역정당 설립을 불가능하게 한다. 헌법 제8조 제1항 정당설립의 자유(①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및 제21조 제1항과 제2항 결사의 자유(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등을 침해하고 있어 위헌적 요소가 강하다.
직접민주주의와 자치분권강화가 중요한 시대적 과제인 데 지역정치 활성화와 지역주민의 참여자치 요구를 고려할 때 지역정당을 설립할 수 있도록 정당법 자체를 폐지하거나 전면 개정해야 한다.
읍면동장 주민직선제를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
현재 일부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읍면동장 주민추천제는 지역주민이 직접 뽑은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이다. 주민추천제 하에서는 연고관계 및 이해관계에 따라 주민추천위원회가 구성될 여지가 많다. 읍면동장에 응모한 공무원과 주민의 학연, 지연, 이해관계 등에 의하여 공정성, 투명성, 대표성 등에서 여러 형태의 갈등 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 읍면동 주민자치에서 중요한 것은 읍면동을 지방자치단체로 지방자치법에 법제화 할 수 있느냐이다.
지방자치의 실질적 의미는 주민이 일상의 생활권에서 자치권을 발휘하는 것이므로 일상생활의 주도적 담보 공간인 읍면동을 지방자치법 안의 지방자치단체로 규정하고 주민이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지배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읍면동장은 선거권이 있는 읍면동 주민이 직접 선출하도록 하고, 주민이 읍면동 행정기관의 인사권과 주민조세권 및 제정운영권, 읍면동 주민총회를 통한 사업 및 예산 수립과 집행권한을 가져야 한다.
일상적인 사업 집행은 통리 주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통리장의 당연직 위원과 읍면동장이 위촉한 위촉직 위원 등으로 주민자치집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집행하면 될 것이다. 풀뿌리민주주의의 핵심 기본단위인 읍면동을 지방자치법 안의 지방자치단체로 규정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의 정치활동 자금 조달을 위한 정치자금법 개정
현행 정치자금법은 투명한 정치와 공정한 정치를 목표로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여 제안되고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정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정치 불신을 조장하여 정치자금 불법의 한도를 지나치게 확대함으로써 정치개혁을 방해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 활동을 정당 정치 활동에 국한함으로써 다양한 정치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비영리 법인과 법인격을 가지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이른바 시민단체 활동 등을 광의의 정치 활동으로 규정하고 정치자금법상 정당에 준하는 지원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비영리 법인과 법인격의 시민단체에게 년 10만 원을 후원하면 전액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치분권의 시대에 부응하며 지역주민의 정치활동을 활성화하고 자치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에 정치후원금을 일상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광역자치단체인 시·도 및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 등은 일상적인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복합적이며, 중층적인 위기에 놓여 있다. 일본이 여러 지표에서 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시대의 위기를 인식하고 시대전환을 해야 할 절실한 상황이다. 시민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전환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요구를 인지하고 해결해나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의 개혁과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시대전환의 목소리들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