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에 만난 다섯 명의 도시가스 안전 점검노동자들
12년 전 일입니다. 도시가스점검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소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의뢰인은 다섯 명, 모두 4~50대의 여성이었습니다. 이들은 혼자서 한 달에 3천 세대의 가구를 방문해서 도시가스 검침을 하고, 고지서를 전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분기에 한 번씩 가스가 새는지 점검하는 일도 했습니다. 하루 평균 150세대 이상의 가구를 돌아다니며 받는 돈은 최저임금, 그마저도 퇴직금이 포함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송을 했습니다. 당시 도시가스점검 노동자들은 서울도시가스로부터 요금 수납 및 점검 업무를 수탁한 업체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 업체가 폐업하고 이분들의 소속이 고객센터로 바뀌는 과정에서, 업체는 퇴직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업체가 내건 이유는 이미 월급에 퇴직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매월 퇴직금을 분할해서 월급에 포함해 지급했기 때문에 더는 지급할 퇴직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도시가스점검 노동자들의 서명이 담긴 계약서를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된 돈을 월급에서 공제하면 임금은 최저임금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쉽지 않았습니다. 1심에서 전부 승소했지만, 2심 법원은 계약서가 효력이 있다며 회사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상고한 지 3년이 지나서야 대법원은 퇴직금을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고 결국 5년에 이른 소송 끝에 못 받은 퇴직금을 다 받을 수 있었습니다. 끝내 이겼지만 안타깝게도 대법원 판결 직전 도시가스점검 노동자 중 한 분은 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제대로 환산되지 않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값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소송을 하지 않았더라면 도시가스 점검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되게 일하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적은 금액으로 일하는지 몰랐을 겁니다. 반기에 한 번씩 도시가스 점검하겠다는 연락이 올 때마다 저의 의뢰인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덜 수고스럽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맞벌이 부부가 점검 시간에 집에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제 의도와 무관하게, 점검 노동자들은 평일 저녁이든, 주말이든 가리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각에 맞추어 일부러 찾아오는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저의 의뢰인들, 다섯 명의 도시가스점검 노동자입니다. 이들은 매 재판 때마다 근무복장으로 법정에 나타났습니다. 서로 의가 좋았고, 참 따뜻했습니다. 본인들의 부당함에 맞서 싸웠고, 여성 노동자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따뜻하지만, 당당한 엄마들, 그리고 언니들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동시에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부당함이 슬펐습니다. 업무강도로 치면 최고임금을 받아야 마땅할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받고 힘들게 일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실제로 제 의뢰인뿐만 아니라 도시가스점검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입니다. 노동 강도를 생각하면 최저임금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021년 서울도시가스 소속 점검 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임금은 10억 원에 이릅니다. 서울시 5개 공급사 점검 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임금을 모두 합치면 수십억 원에 달합니다.
그 사이 서울도시가스는 주주들에게 67억 원을 배당했습니다. 그래서 도시가스 점검 노동자들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서울도시가스분회원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서울시의 관리감독을 요구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도시가스의 관리감독관청으로서 도시가스 요금과 점검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확정하는 기관입니다. 2022년 5월 1일에는 도시가스 요금도 인상하였습니다.
서울시가 생각하는 '여성노동자'의 위치
2022년 5월 24일, 노동조합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에서 "도시가스 요금 인상하고 주주배당으로 펑펑! 점검원 임금은 서울시 산정수수료보다 적게! 관리감독 책임방기 서울시 규탄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집중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분회장을 맡고 있던 점검 노동자는 서울시 담당부서 기후환경본부 녹색에너지과에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시 청사 안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출동해 있던 서울 남대문 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은 분회장의 백팩을 잡아 던지고, 밀어 넘어뜨렸습니다. 그로 인해 분회장은 오른팔과 머리에 부상을 입고 인근 적십자병원에 긴급후송되었고, 뇌진탕 등 상해 진단을 받았습니다. 서울시청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합원들도 경찰 등에 의해 사지가 들려 강제로 끌려 나왔습니다.
서울도시가스 점검 노동자들이 서울시에 면담을 요청한 이유는 서울시가 이들의 임금수준과 복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에는 서울지역 도시가스 공급사들의 인·허가권이 있고, 서울시는 매년 안전점검·검침 등을 담당하는 고객센터의 운영비 및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산정합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산정한 임금을 고객센터 운영업체들이 모두 지급하지 않았고, 진정인들은 서울시에 수차례 관리감독을 촉구했습니다. 이 사건이 벌어진 날에도 점검 노동자들은 서울시에 관리감독을 촉구하며 면담을 요구하였을 뿐입니다.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복장으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서울시 청사에 출입하였을 뿐입니다. 4, 50대의 여성인 도시가스 안전 점검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오직 대화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관들, 서울시 청원경찰들은 점검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 점검 노동자들이 여성이 아니었다면 그때에도 경찰관들은 함부로 대했을까. 여성이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았던 것은 아닐까. 서울시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경찰관, 청원경찰마저 도시가스 안전 점검 노동자들을 하찮게 대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소송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습니다. 헌법,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을 위반한 경찰과 서울시를 상대로 말입니다. 이번에도 제 의뢰인은 당당한 도시가스 점검 노동자들입니다. 끝내 이겨서 못 받은 퇴직금을 받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경찰, 서울시의 인권 침해를 확인하고 체불임금도 모두 받아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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