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쟁의 여파로 경제가 악화되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 푸틴의 위치는 여전히 공고해 보인다. 지난 5월 러시아의 <타스>통신은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브치움이 실시한 조사에서 푸틴 대통령이 81%의 지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물론 투표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이 일고 있는 러시아에서 정부 기관의 여론조사와 언론 보도를 100% 신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음에도 내부에서 별다른 동요가 없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푸틴은 왜 건재한 걸까? 러시아 사람들은 왜 푸틴을 좋아하는 것일까? 러시아에서 20여 년을 살았고 한국에서도 그만큼의 시간을 지내온 러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 벨라코프 일리야는 최근 출간한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일리야 눈으로 '요즘 러시아' 읽기>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보여줬다.
일리야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혼란스럽던 러시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는 '야생 자본주의'시기였다고 한다.
"엄마는 우체국에서 근무했다. 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바로 다음날 아침 소련 화폐는 사용할 수 없고 오늘밤 12시부터 새롭게 발행한 러시아 루블만 사용해야 한다고 명령서가 내려왔다. 새벽에 새로 찍은 화폐를 각 도시의 우체국에 배달했다. 방송에서는 소련 화폐를 가지고 우체국으로 가면 새 화폐로 환전해주겠다고 알렸다.
1억 4000만 명이 한꺼번에 도시마다 몇 군데 있지도 않은 우체국으로 몰려가는 그림을 상상해보라.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러시아 우체국 직원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건장한 남성들이 빨리 환전해 주지 않는다며 분노에 휩싸여 삽을 들어 유리창을 깨고 고함을 질러댔다.
조폐창에서 우체국까지 배송할 트럭이 턱없이 부족했고, 운전할 사람도 많지 않았다. 전 국민이 일시에 모든 돈을 환전할 시설과 시스템도 없었다. 당시에 죽은 이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다. 너무 많아서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 집권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1999년 하야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이듬해 3월에 열린 선거에서 푸틴은 52.9%의 득표율로 러시아의 대통령이 됐다.
일리야는 "늙은 데다 항상 술에 취한 말투로 사고만 치고 다니는 옐친 대통령에 비해 푸틴은 정반대 지도자였다"며 푸틴은 체첸 전쟁을 끝내고 불평등의 상징이던 '올리가르히'를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고 전했다.
올리가르히는 소련 붕괴 이후 국가의 자산을 독점한 사람들이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부는 국가 자산을 인구수로 나눈 만큼의 가치가 있는 바우처를 전국민에게 지급했다. 당시 이 바우처가 기업의 지분이라는 점을 모르던 사람들은 시장에 바우처를 내다 팔기 시작했고, 이 바우처를 엄청나게 모은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이 올리가르히다.
"올리가르히는 국가 기간산업의 주인이 되어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부자가 됐다. 겨우 7명이 러시아 전체 재산의 반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석유와 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을 물론 모든 인프라를 장악했으니 돈이 안 벌릴 수가 없었다.
올리가르히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이 잘 살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살던 어린 시절, 정전으로 공부를 못했다고 핑계를 댈 정도였고 물이 안나와서 씻지 않아도 됐다. 민영화된 쓰레기 처리 회사가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났다. 그러자 팔뚝만한 쥐들이 들끓으며 사람들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푸틴은 집권하자마자 올리가르히를 손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 때 러시아 최대의 민영기업이었던 석유 회사 유코스의 오너를 숙청한 것인데, 이 회사가 순식간에 파산하고 국유화가 되면서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을 더욱 신뢰하게 됐다는 것이 일리야의 설명이다.
푸틴 대통령 통치 기간 중 적잖은 경제 성장이 일어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첫 임기 때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 였고 경제규모의 경우 집권 첫해인 2000년에는 세계 23위였지만 7년 후인 2007년에는 11위로 상승했다.
"금융시장개혁, 건설분야 개혁, 부동산 시장 안정화 등 개선되지 않은 분야는 하나도 없었다. 식료품 부족은 옛말이 됐고 너도 나도 핸드폰을 손에 쥐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일상 속 도구가 돼 갔다. 나라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업적이 푸틴과 러시아 정부의 능력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다. 2000년대의 세계적인 호황과 유가 폭동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현명한 지도를 강조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 반발하는 푸틴의 모습도 러시아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푸틴은 첫 임기였던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친분을 쌓으려 노력하며 러시아를 나토에 가입시키려고 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이가 바로 푸틴이었다.
푸틴이 반서(反西) 감정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는 두 번째 임기 때였다. 2007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 안보 회의에서 푸틴은 처음으로 미국에 맞섰다. 그는 '세계의 경찰'을 자처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강하게 비판했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었다. 2002년 미국이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nti-Ballistic Missile Treaty)을 사전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파기한데다 1990년대에 약속한 나토의 동진 금지 약속을 어기고 구소련 발트 3개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비롯해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을 적극 찬성했기 때문이다.
푸틴의 미국 비판은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러시아 사람들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강한 지도자를 환영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1990년대 내내 국제사회에서 온갖 망신과 굴욕을 당했던 러시아 국민들은 이제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 수 있게 됐다"
푸틴은 독재자? 소련 때에 비하면
푸틴은 혼란스러웠던 러시아를 안정화시키고 경제 발전을 가져왔지만 집권하는 동안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였다. 2011년 러시아 국회의원 총선거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고 실제 부정행위가 발각되기도 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언론에서 이에 대한 지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제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려는 순간 불거진다. 2019년까지 러시아는 겉으로는 정말 자유로운 나라처럼 보였다. 인터넷에서 댓글로 푸틴을 욕하거나 코미디로 풍자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크렘린궁 앞에서 푸틴을 반대하는 시위를 열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푸틴 반대파가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정부 인사의 비리나 횡령을 고발해도 언론사들은 침묵한다. 언론은 양비론을 펼치거나 오히려 반대파를 비난하고 푸틴에 대한 비판을 삼가는 등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순간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독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법률까지 만들었다. '권력비판금지법'이다. 2019년 3월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법인데 이 법은 대중들에게 겁을 주려고 만든 법이라서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법으로 사람들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푸틴에 대해 러시아의 많은 사람들은 독재자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일리야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독재의 전형은 소련 시절이다. 그 시절은 현재 러시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러시아 사람들에게 독재를 왜 참고 있냐고 물어보면 '우리가 독재를 겪어봐서 아는데 지금 이 상황은 절대 독재가 아니다'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역사를 통해 형성된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도 푸틴에 대한 지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리야에 따르면 러시아 사람에게는 '자유'라는 개념과 '무질서'라는 개념이 동일하다고 한다.
소련 붕괴 이후 옐친 대통령이 등장했는데, 이 정권은 혼란을 수습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정권에서 '자유'라는 말을 계속 쓰다보니, 러시아 국민에게 자유란 "무질서와 불평등, 비리와 횡령, 권력 남용과 다름없는 말"이 됐다는 것이다.
"푸틴은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를 무질서 그 자체로 봤다. 소련 시절의 잘 구축된 사회복지시스템을 모두 포기하고 국민들이 각자도생하도록 내팽개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현재 러시아가 조우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1990년대 러시아는 정말 큰 실수를 했다. 좋은 것을 모두 파괴했다'고 말했다.
푸틴은 이제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따라서는 안된다며 질서를 지키려면 미국식이 아닌 우리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서방 국가는 무질서하고 경찰의 권력 남용에 사람들은 희생되고 있으며 인종 차별, 금융 불안전, 이민자 난입, 동성끼리 결혼하는 도덕적 타락 등의 문제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이게 다 민주주의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전통적인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일리야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에서 강한 지도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 역시 푸틴 지지의 주요 기반이라고 진단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에서는 강한 지도자, 완전한 권력을 갖고 있는 황제인 '차르', 나라의 아버지로서 지도자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러시아가 생긴 9세기부터 역사를 보면 국민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들은 모두 강력한 절대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고위직으로 보는 경향이 큰 것 같다. 권력을 가졌지만 국회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 국민의 의지만 있다면 탄핵까지 가능하다.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을 절대 권력을 가진 '아버지'로 본다고 할까. 아버지도 사람인지라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정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러시아는 한국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다"
러시아와 한국은 연결돼있다
일리야는 푸틴이나 현재 러시아 정부를 지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 귀화를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참정권'이 욕심났다고 말할 정도다.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었고 그러려면 외국인보다는 '국민'이 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국민이 되면 의무와 함께 권리도 생긴다. 특히 참정권이 탐났다. 한국은 정치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된 나라다. 선거 때가 되면 투표를 통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하면 되지 않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참정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선거는 정치 쇼에 불과하다. 푸틴이 헌법을 바꿔 가며 20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게 증거다"
그럼에도 일리야가 이 책을 통해 러시아의 역사, 그리고 그로 인해 조성된 사람들의 생각과 푸틴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를 자세하게 진술한 데에는 러시아와 한국이 여러 측면에서 연결돼있고 교류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책을 준비하던 2022년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켰다. 유럽을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은 원죄가 러시아에 있고, 푸틴이 전쟁 범죄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경제적인 배경을 떠나 독자 여러분들이 조금 다른 러시아를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 러시아와 한국은 언젠가는 다시 협력하고 교류해야 할 나라다. 미리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다리를 조금씩 놓아 보려고 한다"
이번 글에서는 주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의 역사를 다뤘지만, 일리야는 책에서 러시아 사람들이 잘 웃지 않는 이유,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시차 문제 등 그동안 러시아에 대해 한국인들이 잘 몰랐던 이야기들을 흥미로우면서도 탁월한 통찰력으로 풀어놓았다. 코로나 19로 여전히 해외여행이 어려운 가운데,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와 함께 일리야 가이드가 소개하는 러시아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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