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 교육부의 첫번째 임무다.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들 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부에 채찍질 중이다. 수도권 집중에 상관 없이 대학에 반도체 관련 첨단학과를 신설하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반도체 인재양성에서 대학교육은 분명히 장기적으로 중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한국의 반도체 현장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의 처우는 미국이나 대만은 물론 베트남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한국의 박사급 과학기술인력 대부분은 미국, 중국, 싱가폴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학과를 늘리는 건 밑빠진 독에 물붓기 혹은 경쟁국을 도와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현장을 무시한 정책은 언제나 퇴보를 불러온다. 송강호와 손흥민에게 보여준 대통령의 태도와 누리호 연구원들에게 보여준 태도의 차이에서, 우리는 또다시 과학기술현장에 무지한 권력자를 마주한다. 누리호 발사성공 이후 올라온 항우연 연구원의 성토는,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인재들에 대한 국가권력의 무지에 대한 분노가 녹아 있다. 현장의 엔지니어가 불행한 국가에서, 결코 최첨단 기술이 탄생할 수 없다. 현장의 엔지니어들에게 지원해야 한다. 그들을 도구가 아닌 VIP로 대접해야 한다. 현장에 투자하면, 미래는 따라올 수 밖에 없다. (필자)
손흥민이 매년 광고로만 벌어들이는 수익은 200억, 그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 되어 한국에 돌아오자 대통령 윤석열은 친히 경기장을 찾아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영화 브로커로 칸 영화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자, 대통령 윤석열은 영화인들을 용산 청사로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대통령 윤석열은 누리호 발사현장을 찾지도, 연구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지도 않았다. 윤 대통경은 누리호 연구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피자와 커피차를 향우연에 내려보냈을 뿐이다.
현장연구원의 불행은 곧 과학기술경쟁력의 추락
누리호 발사 성공 다음날, 블라인드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엔 ‘누리호 성공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이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쓴 연구원은 국민들이 모르는 항우연 연구원의 열악한 현실을 7가지로 나누어 고발했다. 첫째, 열악한 연구원 월급이다. 카이스트 박사 졸업기준 연봉 5200~5300 정도인데, 성과급을 합쳐도 정부출연연구원 중 거의 최하위에 속한다고 한다. 게다가 지난번 나로호 발사 실패로 삭감된 임금은 복원되지 않았다. 둘째, 우주산업 육성을 빌미로 연구원의 기술을 민간에 거의 무료로 이전하도록 강요한다. 그외에도 시간외 근무 수당은 지급되지 않고, 주 52시간 근무도 지켜지지 않으며, 휴가, 출장 등에서 심각할 정도의 행정편의주의가 팽배해 있다. 특히, 문재인 정권에서 문미옥 전 차관에 의해 무리하게 추진된 정출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주요 부서엔 핵심인력이 태부족이다. 이 게시물은 인터넷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지만, 대통령 윤석열이 시행한 보상은 커피차 뿐이었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시대의 일이다. 그 중심엔 원자력연구소와 KIST로 상징되는 정부출연연구소들이 있었다. 과학기술연구개발의 축이 기업과 대학으로 넘어가는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정출연의 존재가치는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주도의 장기적인 연구개발과 과학기술인력의 훈련소라는 측면에서 정출연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문제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회나 프라운호퍼연구회 같은 정출연과는 달리, 한국 정출연은 그 시작부터 제도적으로 정치권력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독일 연구회제도를 따라하겠다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NST를 만들었지만, 지난 20여년간 NST는 소속부처와 조직이 정권마다 바뀌며 한국사회에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정출연은 과학기술관료들에게도 골치덩어리다. 연구개발비의 거의 절반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과학기술경쟁력엔 거의 기여를 못하는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조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정출연의 문제는 두 가지다. 첫번째 문제는 오랫동안 과학기술부의 영향력 속에서 정권의 입맛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다보니 연구원 대부분이 연구에 대한 열정보다 생존본능이 더 강해져 스스로 ‘관료주의의 함정’에 빠져버렸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연구와 관료주의는 가장 상극 중의 상극으로,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회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관료주의다. 두번째 문제는 ‘정치권력에 대한 종속성’이다. 박정희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성공했던 지점이 바로 정치권력이 주도하는 하향식의 정책이었다면, 실패하게 된 지점 또한 그로 인한 과학기술정책의 정치적 종속에 있다. 정출연의 리더 대부분은 연구개발의 전문성보다는 정권과 관료에 충성하는 이들로 임명되며, 이들에 의한 사내정치가 정출연을 망치는 주범이다.
윤석열 정부 또한 박정희가 만들어낸 과학기술정책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취임한지 두달 밖에 안되었지만 그가 보여준 행동과 발언만으로도 윤석열 정부에 과학기술현장을 이해하는 브레인이 없다는건 분명해 보인다. 만약 그런 보좌진이 있었다면, 누리호 발사성공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이렇게 황당하게 날려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김지희 박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현 정권을 지지하고 있는 한 명의 연구원으로”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그는 “연구를 알고 현장에 대한 애정과 비전이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혼란”이라면서, “누리호 기술이전 역시 착취처럼 행해져서는 안된다. 성공한 연구자들에겐 확실한 포상과 명예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대통령의 과학기술현장에 대한 철학의 부재가, 누리호 뿐 아니라 한국의 생존이 걸린 반도체 문제로까지 이어진다는데 있다.
반도체학과로는 반도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정치행보를 시작했다. 과학기술현장은 그런 그의 행보를 주목했고, 분명 기대심을 가졌을 것이다. 초대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반도체 전문가가 임명되었지만, 이종호 장관은 아직 이렇다할 현장중심의 개혁행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미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삼성으로 향하는 모습을 본 윤 대통령은 갑자기 교육부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인재양성에 국가의 사활이 달려 있다는 그의 인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학에 반도체학과를 더 많이 만들면 반도체 인력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의 인식은 나이브함을 넘어 퇴행적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2000년대 초반, 전국의 이공계 교수들이 갑자기 이공계위기론을 꺼내들고 정부를 압박했다.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의 비율이 줄어든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시작된 이공계위기론은 결국 노무현 정부의 이공계 진학 대학생에 대한 어마어마한 지원으로 귀결되었고, 그렇게 이공계에 입학해 공짜 컴퓨터에 공짜 여행을 다니던 학생들은 결국 의학대학원과 법학대학원으로 몰려들었다. 2010년경이 되자 이번엔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이 미달사태를 겪었고, 서울대 교수들이 정부에 대학원을 지원하라고 성토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국이 이미 김대중 정부 이래 BK21과 같은 제도를 통해 연구개발비에서 세계1위를 달성한 나라라는 데 있다. 연구개발비가 그렇게 많은데 도대체 왜 청년들은 과학기술자가 되려하지 않고 모두 공무원고시나 대기업만 쳐다볼까?
답은 해당 직종이 사회에서 받는 처우에 있다. 과학기술관련 연구직의 연봉은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높지만, 연구원들이 훈련받는 기간이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형편없을 정도로 낮다. 게다가 연구직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IBS 같은 국가연구소에선 석박사 연구원의 연봉이 대졸 신입 행정직보다 낮게 책정되어 있을 정도다. 항우연 연구원이 블라인드에서 토로한 현실은 한국에서 과학기술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감내하는 상대적 박탈감의 표현이다. 연구직을 선택한 과학기술자 대부분은 부자가 되겠다는 야망보다는,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원한다. 하지만 정부는 연구원들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하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공대가 한국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로 통한 적이 있다. 실제로 벤처붐이 일던 2000년대 초반, IT기업의 대부분이 공대생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공대생의 취업문이 불안한 적은 없었다. 지금도 공대에 가고 싶어하는 학생은 많다. 그런데 왜 기업과 정부는 반도체 인력을 걱정할까. 역시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엔지니어들이 천국이라 부르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애플이나 구글 엔지니어의 연봉은 삼성 엔지니어의 두 세배에 이른다. 서울대나 카이스트를 졸업한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기회만 되면 미국으로 떠나려는 이유다. 삼성이 아무리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자를 고용하고 싶어도, 애플이나 TSMC가 제공하는 대우의 절반으로 그들을 고용하려 한다면, 인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을 방도는 없다. 한국의 박사학위 졸업자 대부분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싱가폴로 떠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 곳이 그들을 더 대접해주기 때문이다.
현장에 투자하라, 미래는 따라온다
반도체 관련 학과의 증설과 교육을 통한 반도체 인재양성은 장기적으로 분명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일분일초를 다투는 반도체 패권경쟁에서,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교육정책으로 반도체 경쟁력을 키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현장의 과학기술인재에게 투자해야 한다. 한국의 연구현장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연구원이 전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우를 받게 만들면 된다. 베트남 엔지니어의 연봉이 한국보다 높은 현실에서, 반도체 관련 고급인재들이 물밀듯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반도체 학과를 만들어 학부생을 배출해봐야, 그들이 모두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고 말 것이다. 엔지니어라는 직업엔 국경이 없다.
한국은 삼성을 필두로 하는 반도체 산업이 국가총소득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다. 그만큼 반도체를 비롯한 엔지니어 인력의 관리는 국가경쟁력의 초석이자 생존을 건 문제다. 한국사회의 불운은 단 한번도 과학기술현장을 이해하는 대통령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반도체연구소 방문으로 정치행보를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조차, 과학기술인력정책의 기초를 모르는 지경이니 과학기술관료들은 아마 속으로 숨죽여 웃고 있을지 모른다. 정치가 아무리 혼란스럽고, 관료사회가 아무리 복지부동이어도, 누군가는 국가의 엔진을 움직여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그 엔진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바로 과학기술인이다. 대통령은 과학기술현장으로 당장 달려가야 한다. 축구선수나 영화배우와 노닥거리며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다. 현장의 엔지니어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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