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우리나라 밥상을 흔들고 있다. 세계 주요 곡창지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 공급이 주러들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했고 식량과 사료를 확보해 밥상을 지키려는 각국의 총성 없는 식량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주요 밀 수출국이던 인도를 비롯한 카자흐스탄, 세르비아 등 식량 수출국은 자국 내 곡물 수출을 제한시켰고 당장 곡물을 수입해오던 나라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동네 빵집과 돼지농가가 밀과 사료 값 급등으로 타격을 받았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우리 밥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우리 밥상도 평온해지는 걸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전쟁이나 기후위기로 인해 국제 곡물 시장의 불확실성은 커졌고 이로 인한 식량전쟁은 더 자주 더 치열하게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무엇으로 밥상을 지킬 것인가. 편집자.
사라지는 농지 흔들리는 식량안보
곡물자급률 20%로 떨어져
세계 밀 공급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으로 인해 온 세계가 식량난을 겪고 있다. 그리고 지난 5월 13일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인 인도마저 기존 입장을 뒤집고 밀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인도는 공격적으로 밀 수출에 나서고 있던 터라 인도산 밀을 수입하려던 국가들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식량 관련 수출 제한 등에 나선 국가는 인도를 비롯해 30여 개국에 달한다.
사실 인도가 밀 수출을 줄일 것이라는 징후는 올 초부터 존재했다. 인도는 현재 '봄이 없는 해'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북서부는 현재 122년 만에 월 평균최고기온 최고치를 경신하며 4월에 섭씨 49도를 기록했다. 이번 폭염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인도의 밀 생산량이 올해 최대 절반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인도로부터 수입하는 밀의 양이 적지만, 곡물자급률이 2020년 기준 20.2%에 그쳐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 중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그 영향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1970년대 80%에 달하던 곡물자급률은 왜 이렇게 급락한 것일까?
통상적으로 식량안보를 달성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제시된다. 한 가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자급을 통한 식량 수급이다. 다른 한 가지는 자유무역 등 세계(곡물)시장을 통한 식량 수입이다. 우리나라는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UR 협정)을 시작으로 WTO, FTA, 현재는 CPTPP까지 참여를 준비하며 세계시장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식량 수입 비중을 점차 늘려왔다.
현재까지도,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식량 공급처의 다변화 전략을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들은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 생산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인구에 비해 땅이 작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은 정해져'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량안보'라는 개념은 농산물 수출국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UR 협정 당시 미국 농무장관이었던 존 블록은 "식량을 반드시 자급해야 한다고 여기는 개도국의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관념이다. 미국산 농산물은 언제 어디서든 싼값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식량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미국 농업기업대표단은 협정에서 식량안보를 '국내 생산이든 수입이든 상관없이 한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을 공급해줄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했다. 결국 수출국의 말을 믿고, '언제나, 어디서나 싼값으로' 식량을 수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국내의 식량자급 기반을 없애버린 결과가 지금의 곡물자급률 20.2%인 것이다.
사라지는 농지
식량자급 기반의 상실은 농지 면적의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농지는 1976년 220만ha에 달했으나 2020년 기준 30%가량 감소한 156만ha에 그친다. 더 큰 문제는 기후위기와 전쟁으로 수입을 통한 식량수급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1년에 전체 농지의 1%씩 농지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라진 농지 위에는 아파트, 도로,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1976년부터 40년간 가장 많이 증가한 지목은 도로, 대지, 공장용지로 그 비중이 전체 증가분의 50%에 이르며 각각 도로 21만ha, 대지 14만ha, 공장용지 10만ha에 달한다. 최근에는 '지역소멸'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추진되는 혁신도시와 충남과 충북에 집중되는 산업단지로 인한 농지의 감소가 눈에 띈다.
산업단지의 경우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취득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민간사업자에게도 농지를 수용하는 길을 열어주고, 지정되면 진천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32ha), 괴산 메가폴리스 산업단지(66ha)와 같이 대규모 농지전용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농지축소의 가장 큰 원인이다.
공익·공공의 이름으로 농지를 잠식하는 것은 산업단지만이 아니다. 2009~2016년 사업 용도별 농지전용 추이를 보면 해당 기간 농지 11만5544ha 중 40%가량인 4만3483ha가 공공시설을 위해 전용되었다.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농업진흥지역이다. 농업진흥지역은 과거 절대농지로 불리던 농지로 국가가 나서서 보전하겠다고 한 농지다. 문제는 국가 주도의 큰 사업일수록 편입·전용되는 농지에서 농업진흥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나
'세계시장의 발달,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나라 농지와 농민이 지금보다 줄어도 식량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우리가 가진 상식은 틀렸다. 작금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농지와 그 농지를 가꿀 더 많은 농민이다.
우선 농지 총량제를 도입해야 한다. 스위스는 윤작면적프로그램(FFF)이라는 제도를 통해 국가 전체 필요농지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칸톤(스위스 행정구역 단위)별로 할당하여 농지를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참고하여 식량자급을 위해 필요한 농지 총량을 정하고 이를 지역별로 할당하여 확보해야 한다.
또한 농지전용으로 발생하는 전용이익을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 현행 농지보전부담금은 부과율이 전용농지 개별공시지가의 30%인데다가 부과액에 상한제한이 있어 전용이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데 그치고 있다. 또한 공공사업, 공용시설 등에 대한 각종 감면조항이 있어 2017년 기준 1조1000억 원이 감면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담금 상한선과 각종 감면조항을 폐지하여 전용이익을 철저히 환수하고 해당 재원을 통해 신규농지를 확보해야 한다.
각종 개발의 편의성을 위해 시행되고 있는 인허가 의제조항 역시 폐지해야 한다. 1973년 '산업기지개발촉진법'에 의해 도입된 인허가 의제제도는 '통합적 결정'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농지가 별도의 인허가 절차 없이 전용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개별 법령에 흩어져 있는 농지에 대한 인허가 의제조항을 원칙적으로 삭제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익·공공의 이름으로 시행되는 각종 하향식 개발행위에 맞서 지역주민과 농민이 자신들의 땅과 농지를 지킬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마을 단위 공간관리를 위한 주민협약제도', '마을보호지구 지정'과 같은 상향식 이용허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끝으로 농지를 지킬 농민이 살 수 있어야 한다. 전체농지의 50%를 부재지주가 소유하고 있으며, 농민의 평균연령은 66세에 이른다. 이런 와중에도 정부는 또 다른 자유무역협정인 RCEP에 이어 CPTPP 협정을 추진하는 등 농산물 시장을 계속 개방하고 있다. 이는 경제성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민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에 맞서서 국민 대다수가 농지와 농민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누가 농사를 지었는지, 어떻게 길러냈는지 등을 꼼꼼히 살피는 것이다. 우리가 가까운 논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특정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눈에 드러나는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진정한 공동체의 '이익'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나라 농민과 농지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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