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전 서울대 교수 A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피해자는 2015년과 2017년 해외 학회에 참석했을 당시 A교수가 피해자의 머리와 다리를 만지고 억지로 팔짱을 끼는 등 추행하였다며 고소했다. 이 사건은 2019년 고소되어 2020년에 기소되었는데, A교수가 혐의를 부인하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면서 2022년 6월이 되어서야 재판이 열렸다. 첫 피해가 발생한 때로부터 7년이 지났고, 기소된 때로부터는 2년이 지난 후였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A교수는 피해자의 정수리를 눌렀지만 이는 지압을 해준 것이며 허벅지를 만진 것은 피해자가 화상을 입어 걱정된 마음에 붕대가 감긴 한 부분을 눌러봤을 뿐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A교수는 '부적절하다고 해서 추행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했고,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거나 번복된 부분이 있고 피해자가 당시 느꼈을 불쾌감은 인정되지만 이를 강제추행으로까지는 볼 수 없다고 판단이유를 설시했다. 이를 보도한 기사에, 피해자가 무고를 했다느니 무고죄 형량 강화를 해야한느니 하는 댓글이 상당수 달렸다.
지난 5월 대선 과정에서 대두된 성범죄 무고죄 형량 강화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한 지금,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잔뜩 위축된 상태다. 범죄사실이나 범죄성립에 있어 합리적 의심이 있다면 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형사법의 대원칙이니, A 교수에 대한 무죄 판결을 두고 옳고·그름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고인의 주장이나 무죄 판결에 설시된 판단이유, 이에 대한 보도를 두고 피해자가 교수를 무고한 것이라고 말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보면서, 비슷한 사건의 피해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첫 번째 든 생각은, '어떤 이유로 이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을까?'였다. 흔히들 생각하는 국민참여재판 모습은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배심원재판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민참여재판과 미국의 배심원재판은 다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 선정부터 재판진행, 판결까지가 하루에 이루어진다. 배심원들이 가질 수 있는 편견이나 외압 등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한정된 재정이라는 현실적 어려움이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국민참여재판의 운영구조상 배심원들이 수사를 통해 현출된 수사기록을 샅샅이 살펴보기 쉽지 않다. 극악무도한 흉악범이 아닌 이상 당장 눈앞의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피고인이 딱하게 여겨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배심원들의 판단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모든 사건이 그렇지만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주장이 부딪히는데 그 외 직접증거가 부족한 경우 그에 부합하는 정황증거들이나 그간 당사자들이 해온 진술을 꼼꼼히 대조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이런 부분이 소홀할 수밖에 없고 그날 재판의 인상에 의해 영향받는 부분이 일반 재판보다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강제추행을 주장하는 피해자가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는데 갖는 심적부담이 클 것은 당연하다. 통상 피해자가 특정되어 있는 성범죄 사건들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다. 이 사건 피해자가 어떤 경위로 동의했는지, 동의하는 절차가 제때 구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결과에 상관없이 이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것이 온당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첫 번째 든 생각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피고인의 주장이 비교적 소상하게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고'라는 단어를 꺼내든 댓글들이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해서 신고나 고소를 한 피해자가 무고를 한 것이 아니다. 무고는 상대를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수사기관에 고변하는 행위를 말한다.
A교수 사건에서 A교수가 저지른 일이 강제추행죄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법리적 판단이다. 피해사실이 성폭력이든 그 외 다른 피해든 피해자가 피해를 입고 기억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신고나 고소를 하였다면 그것은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다. 고소된 행위가 사실이고 다만 그것이 범죄로는 인정되지 않은 것뿐이라면,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겠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니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일을 피해라고 느껴 고소한 것이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별도로 책임져야 할 일도 아니다.
A교수는 스스로도 피해자의 신체에 접촉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무죄가 선고된 것은 배심원들이 '그 정도 행위가 강제추행 의도로 저질러졌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라는 강제추행 성립의 요건에 있어서 문제 된 행위의 구체적 태양이나 의도가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할 가능성을 무작정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판결을 두고 무고를 운운할 까닭이 없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고인이 말하는 의도를 사전에 믿어주어야 할 의무가 없고 자신이 입은 피해의 법적성격을 정밀하게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업무상위력 관계에 있는 교수와 학생 간에 벌어진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두고 강제추행죄의 고의를 판단함에 있어 판결의 해석이 온당한지, 7년 전 일어난 사건의 피해를 두고 수사와 재판으로 3년이 소요된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진술의 일관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성범죄를 둘러싼 무고죄 형량 강화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처럼 다른 범죄와 달리 성범죄의 경우 없는 사실에 기초한 신고나 고소 보다는 존재하는 사실에 기반한 고소가 훨씬 더 많다. 자기에게 일어난 어떤 사실에 근거한 고소를 하면서도 이를 둘러싼 해석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받기도 하니,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혹여 무고에 연루될 부담을 안고가는 범죄영역이 성범죄다.
딱히 성범죄에서의 무고율이 더 높은 것도 아닌데 유독 성범죄에 대한 무고죄를 특별히 엄격하게, 특별히 위중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들의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아울러 증거불충분하여 합리적 의심이 든다면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은 지켜져야겠지만, 피해자들을 향해 무턱대고 무죄가 선고되었으니 무고거나 잘못된 고소라는 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는 인식의 고양이 필요하다.
*'이은의 변호사의 예민한 상담소'는 '성폭력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은의 변호사가 직접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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