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노동조합)하면 '가스통'을 떠올리던 한 부산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덤프트럭 몰듯 자기 주장만 밀어붙이고 시민을 겁주는 강경하고 무서운 집단만을 '노조'라고 생각했다. 그 소년은 자라나 노조가 전무하던 판교의 한 게임 회사에서 깃발을 들고 '노조'를 만드는 청년이 된다. 그리고 그 청년은 말했다. "노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네."
<노동조합은 처음이라>(빨간소금 펴냄)를 쓴 신광균 작가의 이야기다. 게임회사에서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겪은 고군분투를 매뉴얼처럼 정리한 이 책은, 한편으로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한 청년 노동자가 변화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울산이랑 가까우니 현대차와 화물연대를 미디어로 자주 접했고, 노조는 일명 '가스통' 정도는 터뜨려야 하고 덤프트럭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조직인 줄 알았다"며 "사실은 직접 노조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근거가 없는 일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자신의 과거 인식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노조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인식은 직접 노조를 만나며 '중립기어'로 변속하게 된다. 게임업계로의 이직이 그의 세계관을 바꾼 셈이다. 야근수당이 포함된 '포괄임금제'가 담긴 근로계약서를 보며 품은 의문이 출발이었다. 그는 "공공기관은 법대로 하기 때문에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을 다 줬다. 그런데 게임업계로 오니 근로계약서에 야근 수당이 포함돼 있었다. '제가 어떻게 야근을 할 줄 알고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며 "부당한 것 같은데 연봉은 올랐고 회사가 잘해주겠거니 생각했다.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이상하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2018년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근로자 대표로 신 작가가 뽑혔다. 하지만 거수기 역할도 하지 못했던 허울뿐인 '근로자 대표'로 회사의 요구사항에 합의하고 난 그는 '쓸데없는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당시 팀장님이 저에게 다른 법인 근로자 대표 이야기를 하시면서 '넌 뭐 안 하냐?' 라고 정말 장난식으로 말씀을 하셨다. 근데 저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고 그는 밝혔다.
그 길로 그는 노조 만들기에 나섰다. 노동자들에게 홍보물을 처음 나눠줄 때는 '갑자기 불러서 곱게 그만두든지 아니면 당장 나가!'라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직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노조를 만든 지 3일 만에 3백여 명이 넘는 이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처음 노조 조합원들을 만나던 날, '아버지가 노조에 반대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조합원의 질문에 '노조는 즐겁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 게임회사는 되게 열악했다. 지금은 돈을 많이 버는 사업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냥 게임을 만드는 게 좋아서, 혹은 내가 하는 일이 좋아서 이 업계에 오신 분들이 많았다"며 "게임은 즐거움을 주는데, 만드는 우리가 즐겁지 않으면서 즐거움을 준다는 게 모순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만날 야근하느라 내 아이가 어떻게 크는 것도 모르는 상황이 과연 괜찮느냐는 생각을 저뿐만 아니라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했던 처음 그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자고 동료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신 작가가 설립한 노조는 과거 IT 업계 대표적인 악성 노동제였던 포괄임금제 폐지를 이끌어냈다. 이후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저도 경쟁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 노력을 해야지 떼를 쓸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각자의 출발선이 다르다는 사실, 나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 생각보다 점점 더 많음을 깨달아가는 것 같다"며 "길을 가다 피켓을 든 사람을 보면 눈길이 한 번 더 가더라. 다리도 아프고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도 안 좋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기서 저러고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한 번 더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조에 대해 강경함과 진지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가지셨던 분이라면, 책을 읽고 '노조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네'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책의 에필로그('나는 귀족 (노조)일까')에도 썼지만, 노조를 좋게 생각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많은 것 중 하나 정도로, '중립 기어'를 한 번 박아줬으면 좋겠다. 못하면 욕하고, 잘하면 칭찬해주고. 지금은 그냥 다 욕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헛헛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래는 지난 2일 경기 판교에서 신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
'노조는 가스통 터뜨리는 사람들?'
프레시안 : 노동조합(노조)을 만들기 전에 노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책을 보면 '노조 하면 바로 파업부터 하자고 했을 정도였다'는 구절이 있다.
신광균 : 부정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다. 제가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울산이랑 가까우니 현대차와 화물연대를 미디어로 자주 접했고, 노조는 일명 '가스통' 정도는 터뜨려야 하고 덤프트럭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사실은 직접 노조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근거가 없는 일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프레시안 : 노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는데, 노조를 처음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신광균 : 노조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과격한 이미지로 비치기는 하지만 노조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노조를 처음 만났다. 첫 회사는 공공기관이라 노조가 활발한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공공기관장의 메시지가 올라왔는데 '조금 아닌' 수준이었다. 노조에서 바로 이를 반박하는 메시지를 냈다. 속으로 '이렇게 해도 돼? 잘리는 거 아니야?'라고 걱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노조는 이런 걸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노조의 구조나 구체적인 활동에까지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기에, 굳이 얘기하자면 기존에 갖고 있었던 과격한 이미지를 중립적인 수준으로 바꾸는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
2011년 게임업계로 이직했다. 처음 이해가 안 됐던 내용이 바로 근로계약서였다. 공공기관은 법대로 하기 때문에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을 다 줬다. 그런데 게임업계로 오니 근로계약서에 야근 수당이 포함돼 있었다. '제가 어떻게 야근을 할 줄 알고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당시 계약서를 작성해주셨던 분이 인사팀 막내셨는데 그런 질문은 아마 처음 받아보셨을 것 같다. 결국 그분도 대답을 못 했다. 일단은 부당한 것 같지만 연봉은 올랐다. 막연히 회사가 잘해주겠거니 생각하고 넘겼다.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왜 노동자 입장은 전혀 반영이 안 될까
프레시안 : 회사에 입사하고 시간이 흘러 회사가 굴러가는 방식을 파악했을 것 같다. 그때쯤 회사 내 프로젝트가 끝나면 개발자들이 권고사직을 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신광균 : 5~6년 차가 됐을 때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저는 게임을 직접 만드는 개발자는 아니고 사내 정보 보안을 담당하는 스태프 부서에 속해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부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는데, 포괄임금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들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이해가 안 됐던 건 특정 개발 프로젝트가 드롭(편집자 주. 게임이 출시를 준비하다가 취소된 상황을 말함)됐을 때 개발자들이 우수수 나가는 관행이었다. 예를 들어 옛날 삼성전자가 핸드폰 '옴니아'를 개발하다가 실패했다고 그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사람들을 다 자르진 않는다. 그분들이 모여 다시 '갤럭시'를 개발하지. 근데 왜 게임회사는 사람을 마구 해고할까. 심지어 회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나가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인원을 또 뽑았다.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그런 의문이 있었다.
프레시안 : 두 가지 문제의식을 느낀 건가. 첫 번째는 야근 수당이 다 포함된 포괄임금제, 두 번째는 프로젝트가 드롭 될 때 개발자들 권고사직.
신광균 : 그렇다. 두 가지 지점에서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개 직원이 뭘 할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그 회사를 퇴사했다. 하지만 다른 회사로 이직했는데도 똑같았다. 2018년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근로자 대표를 뽑았다. 일하는 분들이 선거로 뽑았으니까 의견을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별로 큰 의미도 없었다. 그저 회사 요구에 사인하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프레시안 : 근로자 대표를 뽑으면서 뭔가 회사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거수기 역할만 한다고 느낀 건가.
신광균 : 심지어 저는 2순위 근로자 대표여서 거수기 역할도 못 했다. 그런데 제가 보안팀에서 여러 법인을 겸직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다른 법인 근로자 대표들과 소통의 창구 역할을 했다. 다른 법인 근로자 대표들이 제게 어떤 부분이 부당하다는 식으로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 당시 제 팀장님이 저에게 다른 법인 근로자 대표 이야기를 하시면서 '넌 뭐 안 하냐?'라고 정말 장난식으로 한마디 툭 던졌다. 근데 저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프레시안 : 거수기 역할조차 못 하는 허울뿐인 '근로자 대표'였지만, 책임감이 있었다.
신광균 : 쓸데없는 책임감이다.(웃음) 팀장님의 장난스러운 한 마디에 마음이 계속 무거워진 참에 직장인 익명 어플 '블라인드'에 우리 회사 노조를 만들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그래. 내가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노조 만들기를 시작했다. 이미 물밑에서 준비하시는 분들이 계셨고 저는 좀 늦게 동참하게 되었다.
프레시안 : '쓸데없는 책임감'이라고 표현했지만 연대 의식이 있으니까 이렇게 노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살펴보면 선전물을 나눠주기 전 상황이 이렇게 묘사돼있다. '갑자기 불러서 곱게 그만두든지 아니면 당장 나가! 라고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노조를 하겠다고 했나.
신광균 : 사실은 노조에 대한 강성한 이미지 때문에 좀 두려웠다. 하지만 확 하겠다고 질러버려야 뒤로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깊게 관여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웃음)
"노조는 즐겁게 살기 위해 하는 것"
프레시안 : 처음 노조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가 노조에 반대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조합원의 질문을 받았다고? 저자는 '노조는 즐겁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광균 : 게임회사라는 특성이 좀 있다. 과거 게임회사 업무 환경은 되게 열악했다. 지금은 돈을 많이 버는 사업이지만, 그때만 해도 업무 환경이 안 좋아도 그냥 게임을 만드는 게 좋아서, 혹은 내가 하는 일이 좋아서 이 업계에 오신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저희가 노조 활동을 하면서 회사가 다시 그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과거로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잖나. 게임은 즐거움을 주는데, 만드는 우리가 즐겁지 않으면서 이용자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게 모순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만날 야근하느라 내 아이가 어떻게 크는 것도 모르는데, 이 상태로 일하는 게 과연 괜찮느냐는 생각을 저뿐만 아니라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것 같다. 우리가 노조 활동을 통해 게임 회사에 입사하던 처음 그 마음가짐에 맞는 회사를 만들자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프레시안 : 처음 노조를 만든 게 언제였고 당시 업계 분위기는 어땠나.
신광균 : 2018년 9월경 노조가 처음 만들어졌다. IT 업계 중 네이버에 저희보다 먼저인 같은 해 4월에 노조가 생겼다. 네이버에 노조가 생겼다고 했을 때는 조금 먼 얘기처럼 느껴지긴 했다. 어떤 분은 '게임 회사에 노조가 생기면 장을 지진다'고도 했다. 그러다 같은 해 9월 3일 넥슨에서 노조가 생기니까 '신기하다. 이게 되네'라는 생각이 퍼졌다.
프레시안 : 회사 직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신광균 : 저희는 온라인으로 조합원 가입을 받았는데 링크가 오픈되고 신입 노조원들이 그야말로 쭉쭉 들어왔다. 3일 만에 3백여 명이 되는 동료들이 조합원에 가입했다. 여론이 한쪽으로 다 몰리는 경우가 어려운데, 노조가 생기고 첫 일주일 정도는 100대 0 수준으로 노조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프레시안 : 노조원들과의 첫 통화를 기록해두었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통화가 있나.
신광균 : 노조를 하면서 걱정했던 것이 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노조원들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당시는 정액으로 조합비 2만5000원을 냈다. 보험 하나를 들어도 약관을 꼼꼼하게 따지는데 몇 퍼센트씩 민주노총에 가는지, 조합비를 어디에 쓰는지 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아무도 그 부분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게 참 고마웠다. '알아서 잘하겠지' 하며 믿어주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퇴근하고 집에서 전화를 돌리다 보니 밤 10시 가까이 되었는데, 전화를 받은 조합원도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저한테 '너무 수고하신다'고 하더라. 그분도 일하면서 누가 누구한테... (웃음) 다들 '나 대신 나서줘서 너무 고맙다'고 응원해줬다. 힘들기는 했지만 노조원들과 전화하면서 '힐링'했다.
프레시안 : 결국 노조를 만들고 문제라고 느꼈던 두 가지 지점을 모두 해결했다.
신광균 : 과거 당연한 프로세스처럼 기계적으로 해왔던 권고사직을 없애고 해당 팀원에게 다른 업무를 부여할 수 있게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포괄임금제 폐지의 경우는 사회의 분위기도 있었고, 그에 맞춰 내부의 요구도 있었다. 소위 '아다리'가 맞은 결과였다. 회사에서도 사람을 갈아 넣어서 무조건 시간으로 때울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판단을 한 것도 같다.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과연 내 경험과 사고를 통해 나온 결론인지 고민해달라"
프레시안 : 지금 게임업계의 노조 현황은 어떤가.
신광균 : 사실 도미노처럼, 들불처럼 노조가 번질 줄 알았다. 판교에 있는 회사만 해도 수백 개가 넘는데 큰 회사들에도 노조가 생기지 않았다. 2018년에 4개 정도 생기고 그 뒤로 몇 년간 생기지 않다가 작년에 5개 정도 노조가 생겼다. 큰 규모의 회사들이 노조가 생기기 전에 대부분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노조가 결성될 가장 큰 동력원을 선제적으로 폐지하면서 김을 확 빼버린 셈이다.
프레시안 : 노조 활동을 하고 삶이 바뀌었나. 어떤 면이 가장 크게 바뀌었나.
신광균 : 크게 봤을 때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일의 내용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출근하고 퇴근하고 일상은 비슷하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가장 크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저도 경쟁만이 옳다고 생각했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보며 노력을 해야지 왜 떼를 쓸까,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각자의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 환경적 요인 등 내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점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다.
그리고 노조를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보니 시야가 넓어졌다. 길을 가다 피켓을 든 사람을 보면 눈길이 한 번 더 가더라. 다리도 아프고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도 안 좋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기서 저러고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됐다.
프레시안 : 저자처럼 노조를 처음 만들려고 하는 젊은 노동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신광균 : 처음이 힘들지, 막상 해보면 회사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기왕 하실 거면 첫 줄에 서는 게 가장 안전하다. 오히려 깃발을 드는 쪽이 안전하다. 저희 세대는 학교에서 노동권을 그리 자세히 배우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텐데, 제 책을 기초 매뉴얼처럼 참고해주시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 회사에 노조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꼭 노조를 만드시는 분이 아니더라도 노조에 대해 강경함과 무서운 이미지를 가지셨던 분이라면, 책을 읽고 '노조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네'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신 분들이 전체 노동자의 85% 이상이니 그 분들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바라보실 수 있다.
책의 에필로그('나는 귀족 (노조)일까')에도 썼지만, 노조를 좋게 생각해달라는 게 아니다. 그냥 다른 많은 것들 중 하나 정도로, 생각에 '중립 기어'를 한 번 박아줬으면 좋겠다. 못하면 욕하고, 잘하면 칭찬해주고. 지금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다 노조를 욕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과연 내 경험과 사고를 통해 나온 결론인지, 아니면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만 생각해달라. 그럼에도 부정적이면 어쩔 수 없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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